돈 없고 직장 없는 20대 중반의 독립 실행기
화려한 싱글라이프
잡지나 인터뷰에 나오는 싱글의 라이프는 어쩐지 멋지고 눈부셔 보인다. '여성의 싱글 라이프'라고 하면 어쩐지 전문직에 종사하고 돈을 많이 버는 여성의 삶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아직 부모님 집에 얹혀 있을 때도, 독립해서 살고 있는 나의 미래를 상상할 때 떠올랐던 것은 운치 있는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신축 오피스텔이었기 때문이다.
헛된 상상인 김에 더 풀어보자면, 깔끔한 화장실에 회색과 하얀색의 호텔식 수건을 20개 정도 쌓아두고 샤워용품을 깔 맞춰 구비 해 놓고 싶었다. 방 곳곳에는 풍성하게 꽂혀있는 생화와 유명한 조향사의 디퓨저가 놓여 있고, 대리석으로 마감된 부엌 선반 위에 나무로 된 트레이와 빈티지한 느낌의 고목 도마가 있을 것이다. 퇴근 후에는 욕조에서 목욕을 마치고 바디 타월을 두르고 나와, 야경을 보면서 와인 한잔을 할 것이다. 내 무릎 위에는 고양이가 하루 종일 자리를 비운 나에게 마구 얼굴을 비벼대며 골골거리고 있겠지.
그러나 누구나 꿈꾸는 이 화려한 싱글 라이프는 무직의 20대 중반에게는 상상만으로 그쳐야 할 가슴 아픈 꿈이기도 했다. 나는 2년 동안 돈을 모으기 위해서 일했던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쉬며 다른 진로를 탐색 중이었으며, 내 꿈과 현실의 괴리 때문에 약간 우울증에 걸려있는 평범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부모님은 2년 동안 괜찮은 연봉을 받으며 회사를 다니던 나를 무척 대견스러워했다. 원래도 하고 싶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이 없는 분야의 일을 하며 불안해하는 나에게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냐고 물어봐 준 적은 없었지만..
벌레로의 변신
사회 초년생에게 폭력적으로 가해지는 직장 스트레스에 찌들어 히스테리를 부리는 나를 엄마는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대했을 뿐이다. "원래 먹고사는 게 다 힘들어." 부모님은 나를 그렇게 달래며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를 계속 다니면서 돈을 모으라고 조언했다. 가끔 부모님을 위한 선물이나 저녁을 사는 내 씀씀이에 행복해하시며 네 덕에 호강한다고 하시는 부모님도 회사를 쉽게 그만두지 못하게 만드는 것들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그 회사를 때려치우고 하루 종일 집에 틀어박혀서 디자인을 하고 싶다니 글을 쓰고 싶다니 하는 딸을 부모님은 못 견뎌하는 내색이었다. 가끔 기분을 전환시키려 친구들과 나갔다 들어올 때면 돈을 벌지도 않으면서 모아둔 돈을 펑펑 쓰며 돌아다닌 다는 둥의 잔소리를 반복하곤 했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이 머릿속에 맴돌기 시작한다.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따뜻하고 포근한 가족이라는 환상은 어느 가정에서는 깨어지기 쉽기 마련이다. 어느 가족 구성원에게나 가족이 암묵적으로 요구하고 기대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 책임을 져버릴 때,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시선과 모진 대우이다. 내 작은 가치관 속에서 가족이라는 것은 내가 힘든 시기를 보낼 때 나를 다독이고 감싸주는 사회의 유일한 공동체인 줄 알았었다. 하지만 결국 집단 내에서의 한 인간의 가치라는건 그들과의 공통성을 바탕으로 정상적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때 주어지며, 인간성과 자존감 또한 집단이 원하는 기능을 할 때 주어지는 것이다.
여하간 그때의 나는 내가 봐도 한심한 것이 사실이었고, 하루 종일 집에 있는 마당에 돈도 없어 독립도 못하는 주제의 내가 부모님에게 맞서 봤자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최대한 마찰을 피하려고 노력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더 지난 후, 부모님은 여전히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는 듯 했다. 그러던 와중 비로소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조금 생기를 되찾은 나에게 어떤 시련이 닥쳐왔다. 우울했을때 기분을 조금 전환시키기 위해서 배웠던 담배를 들켜버렸던 것이다.
보수적인 집안이니만큼 엄마는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엄마는 잠시 망연자실 해 있다가 아빠에게 나의 비행(?)을 이르셨고 그때부터 아빠는 나의 통금 시간을 8시로 정하고 집에 감금하려는 등 성인 자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방침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제 막 바깥으로 나아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했던 나에게 이 방침은 납득할 수 없는 것이었고, 그동안 받았던 정신적인 폭력에 신경쇠약에 걸려버린 나는 아빠에게 맞서 대항했다. 결과는 신체적 폭력으로 되돌아왔다.
<변신>에서 갑충으로 변한 그레고르 잠자는 여동생의 바이올린 연주에 매혹되어 감금된 방에서 기어 나온다. 가족과 이웃에게 끔찍한 혐오감을 준 그레고르 잠자(갑충) 에게 아버지는 사과를 마구 던진다. 그중 사과 하나는 그레고리의 몸에 박혀버린다. 카프카의 소설을 읽으며 그저 스토리라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과는 달리 나에게 뒤통수를 가격하는 것 같은 어떤 깨달음이 있었다. 그레고르 잠자의 등에 박힌 사과는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이다. 결국 그 사과는 썩어 들어가기 시작해서 다른 몸도 함께 썩기 시작한다. 그 사과는 가까운 이에게는 던져서는 안 되는 어떤 금단의 공격이었던 것이다.
그레고르는 결국 자기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것을 그다지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 이 가느다란 다리로 기어 다닐 수 있었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약간의 쾌감까지 느껴졌다. 물론 전신이 아프기는 했지만 그것은 이내 가라앉았고, 마침내 통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느꼈다. 등에 박힌 썩은 사과도, 부드러운 먼지에 싸인 염증조차도 전혀 고통스럽지 않았다. 교회의 종소리가 새벽 세시를 칠 때까지 그는 이처럼 허전하고 고요한 명상에 잠겨 있었다. 그때 그의 머리가 자기도 모르게 밑으로 푹 수그러졌다. 그리고 그의 콧구멍에서는 마지막 숨소리가 가늘게 새어 나왔다.
나는 사과를 등에 맞은 그 순간 앞으로 이 곳에서 단 며칠도 살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 방에서 썩어가는 몸을 지켜보기는 싫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던, 나 혼자 해내던, 박힌 사과를 어떻게든 빼어내어 내 상처를 치료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꿈꿔왔던 독립과는 하늘과 땅 같은 차이가 있었지만, 나는 그 일로 인해 20대 이후로 계속해서 꿈꿔왔던 독립을 하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2년간 회사를 다니며 모아놓은 돈이 조금 있었지만 그 적금 통장을 깨는 것은 나와의 약속에 있어서 금지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나는 우선 통장에 있는 200여만 원을 가지고 집을 나와야 했다. 3일간 동네 부동산을 모조리 돌아다니며 조금이라도 싼 곳을 찾아 헤맸지만 그나마 싼 집은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5만 원. 4평이 될까 말까 하는 그 반지하 원룸은 묻지 마 살인의 피해자가 되기에 딱 좋아 보였다. 부동산 중개업자는 내 표정을 보더니 한숨을 푹 쉬며 "이 근처에 이 가격보다 싼 곳도 없고 있어도 여자가 살기에는 너무 위험해요." 라고 말했다. 나는 그날 내가 여자라는 것은, 그저 안전하게만 살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을 깨달았다.
내가 꿈꿨던 독립과는 너무나 멀었던 이 현실에 나는 조금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피 x팬의 좋은 방 구하기 카페에 들어가면 각종 원룸, 전세, 하우스 셰어 등의 정보가 많이 올라왔는데, 나는 그중 상수동에 있는 투룸의 세입자가 하우스메이트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 무작정 연락을 넣어 찾아가 만난 그 언니는 부드러운 인상이었고, 집에서 밥을 잘 해 먹지 않고 홍차를 좋아하는 등 라이프스타일이 나와 잘 맞는 사람이었다. 방은 좀 좁고 해가 들어오지 않았지만 상수동은 내가 항상 살아보고 싶었던 동네 중 하나였고, 다른 것 보다 같이 사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 언니와 잘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하우스메이트로 들어가겠다는 약속을 했고, 그 다음날 바로 계약서를 썼다.
TIP
1. 하우스 셰어를 구할 때, 집이 역 근처인지 아니면 너무 외진 지역인지 확인한다.
2. 낮에 가서 해가 잘 들어오는지 본 후 저녁에 또다시 가서 밤에 시끄럽지 않은지 확인한다.
3. 막상 독립을 하게 되면 기본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서 구매해야 할 물건이 정말 많다. 식기, 컵, 청소용품, 청소기, 세탁기, TV 등등.. 그러나 하우스 셰어를 하게 되면 기본 생활용품은 세입자가 공동사용을 권하므로 당장 들어갈 돈이 훨씬 절약된다.
4. 하우스 셰어를 할 때, 세입자가 같이 살며 이것저것 함께하면서 친목을 쌓고 싶어 하는 타입인지 아니면 정말 공간만 함께 사용하고 개인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려는 타입인지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 본인의 스타일과 맞는 세입자와 함께 해야 트러블이 없다.
5. 계약기간은 보통 3개월이 최소기간이다. 하지만 계약할 때 가능하다면 1개월간은 시험시간으로 계약 없이 지낸 후, 둘 다 괜찮다면 3개월 연장 계약을 하는 것이 좋다.
6. 하우스셰어도 보증금을 받는다. 그리고 하우스메이트가 직장인이며 꾸준한 수입이 있는 사람을 선호한다. 보증금은 천차만별인데, 보통 보증금이 올라갈수록 월세가 싸진다.
7. 계약서에 포함된 중개대상물 확인서를 꼼꼼히 읽어야 입주 전 파손된 물건에 손해배상을 떠맡는 문제가 안 생긴다.
8. 세입자가 계약 관련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꼭 계약서를 써서 사본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