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밥, 사테, 칠리크랩)
내 인생에서 여행은 기억나지 않는 음식 이름, 선명하게 기억나는 음식 이름 이렇게 두 가지로 나뉜다.
회사에서 보내준 3박 4일의 중국 연수.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해외여행으로 몇 주 전부터 설레었다.
‘중국은 지금 덥나? 어떤 옷을 가져가야 하지? 옷 사야 하나?’
‘혹시 모르니까 소화제, 두통약도 챙겨가야 하나?’
‘신발은 어떤 걸 가져가야 하지?’
중국 연수 하루 전. 짐을 싸면서 나의 머릿속은 음식에 대한 걱정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중국 음식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었던 나는. 당연히 맛있을 줄 알았다. 단순히 외국 음식은 고급스러울 거 같다는 이유 하나로…
중국 연수 당일. 공항으로 들어가기 전에 회사에서 예약해 둔 해장국집에 들어가 콩나물 해장국을 먹었다. 태어나서 처음 떠나는 외국 여행으로 긴장하고 있었던 나는. 입맛이 없어 해장국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식당을 나왔다.
설렘 반 긴장 반으로 중국 공항에 도착한 나. 아침을 적게 먹어서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가이드를 만나 허기를 달래기 위해 버스를 타고 식당에 갔다.
‘너무 배고프다. 식당 가면 많이 먹어야지.’
식당에 도착한 후 버스에서 내려 식당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태어나서 처음 맡아본 쾌쾌한 냄새, 썩은 음식 냄새, 눈가를 따갑게 하는 매운 냄새 등 다양한 향신료 냄새가 나의 모든 감각을 마비시키기 시작했다.
‘으윽! 이게 무슨 냄새야. 숨을 못 쉬겠어.’
손으로 코를 막고 간신히 테이블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중국의 대표 맥주인 ‘칭다오’ 세병이 올려져 있었다.
‘맥주는 시원하게 마셔야 하는데 미리 꺼내놔서 미지근해.’
배고픔, 거북한 향신료 냄새, 미지근한 맥주로 나는 점점 더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음식은 맛있겠지?’
첫 번째 음식인 두부 요리가 우리 앞에 놓이고 한입 베어 무는 순간 나는 그대로 음식을 휴지에 뱉고 미지근한 맥주를 원샷하며 입가심했다.
‘이게 뭐야! 맛이 왜 이래? 왜 음식으로 장난하지? 토할 거 같아.’
이렇게 중국 음식은 맛있을 거라는 나의 환상은 와르르 무너지고 3박 4일의 여행 내내 코를 막으며 관광하고 미지근한 ‘칭다오’ 맥주로 끼니를 해결했다.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중국 여행 당시 먹었던 음식 이름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그로부터 칠 년 후 첫 번째 해외여행의 차가운 맛은 어느새 잊혔고 미지근한 맛으로 무장한 두 번째 해외여행을 가게 되었다.
삼십 대 초반. 신랑과 결혼하고 그때는 나름 핫했던 코사무이로 신혼여행을 갔다.
코사무이에 도착하기 삼십 분 전. 비행기 안에서 문득 음식에 대한 두려움이 서서히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옅은 두려움이 깔린 목소리로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여보. 코사무이 음식은 맛있겠죠?”
“대충 알아보니까 맛있대요. 그리고 우리에게는 가이드가 있잖아요. 음식이 맛없으면 가이드한테 우리의 음식 취향을 이야기하면 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코사무이에 도착한 우리는 마중 나온 가이드를 만났다. 가이드는 숙소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음식에 대해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혹시 음식에 대한 특이사항 있으세요? 말씀해 주시면 제가 참고할게요.”
그때 남편이 비행기 안에서 음식을 걱정했던 나의 말을 기억하고 가이드에게 말했다,
“저의 아내가 향신료 향이 진하고 비린내 나는 음식을 못 먹어요.”
가이드는 신랑의 말을 참고하여 신혼여행 동안 한국 음식을 판매하는 식당에 자주 우리를 데리고 갔다.
외국에서 먹는 한국 음식의 김치찌개 맛은 칼칼하지도 밍밍하지도 않은 그 어중간한 보통의 맛이었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남편과 나는 코사무이에서 먹은 음식을 한 줄로 평가했다.
딱히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은 음식이 없는 뜨뜻미지근한 음식들.
신혼여행을 다녀온 지 육 년이 지난 지금. 코사무이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음식은…
'없다.'
‘여행이란 원래 이렇게 차갑고 미지근한 음식들이 가득한 곳인가?’라는 생각들이 나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던 중. 절친한 친구들과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가게 되었다.
우리의 첫 번째 해외 여행지는 일본의 오키나와.
여행 당일. 오키 나와 도착 1시간 전. 우리들의 첫 해외여행에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우리 수다도 무르익기 시작했다.
“배고프다.”
“우리 일본 도착하면 어떤 음식부터 먹을까?”
“맛... 있겠지?”
중국 여행으로 음식에게 크게 배신을 당했던 나는 설렘보다 걱정 가득한 마음으로 읊조렸다.
공항에 도착한 후 가이드를 만나 오키나와에서의 첫 식사를 하기 위해 이동했다.
돼지고기 스테이크 집에 도착한 우리는 음식에 대한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스테이크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그 순간 뜨거운 접시에서 지글지글 소리를 내는 스테이크가 우리 앞에 놓였다. 은은한 불향의 스테이크는 우리의 걱정을 조금 덜어냈다.
나이프로 스테이크를 자르고 한 입 입에 넣는 순간. 우리는 눈이 마주치며 외치기 시작했다.
“뭐야! 엄청 맛있잖아.”
“이거 5분 만에 다 먹을 수 있겠는데!”
그렇게 백 퍼센트 만족스러운 오키나와에서의 첫 번째 식사가 마무리되었다.
오키나와의 번화가에서 한 시간 관광을 마친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때쯤 출출해진 우리는 음식도 살 겸 구경할 겸 숙소 근처 마트로 향했다.
마트에는 우리가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검지 손가락 크기만큼 큰 초밥들이 놓여 있었다. 진열된 초밥들을 보면서 어느새 우리 입안에는 침이 가득 고였다.
나는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모둠 초밥을 손에 쥐며 친구들에게 말했다.
“애들아, 초밥 엄청 크다. 이런 초밥은 처음 봐. 우리 여기 초밥 다 먹어보자.”
그렇게 양손 가득 초밥과 간식을 사 온 우리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초밥을 뜯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연어 초밥을 들어 입 안에 넣는 순간 우리는 똑같은 말을 내뱉었다.
“우와! 엄청 달고 맛있어! 입 안에서 녹는다 녹아!”
삼박 사일의 오키나와 여행 중. 우리는 ‘해외 음식 중 맛있는 것도 있구나.’라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으며 입 그리고 마음에 백 퍼센트를 넘는 행복한 만족감을 가득 담았다.
눈과 입 그리고 마음이 호강하는 뜨거운 맛을 지닌 일본 음식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신랑과 나는 싱가포르 여행을 가며 두 번째 뜨거운 맛을 맛보게 되었다.
6시간 넘는 비행으로 조금은 지쳐 있던 신랑과 나는 숙소에 도착해서 휴식을 취한 후저녁에 유명한 사테 거리로 나갔다.
땀이 주르륵 흐르며 더운 공기로 지쳐있을 때쯤 숯 향이 우리의 코를 자극하며 사테 거리에 도착했다.
더위와 배고픔에 지친 우리는 생맥주 일 리터를 시키고 다양한 꼬치를 주문했다.
시원한 생맥주로 더위를 식히고 불향 가득 베인 꼬치를 먹으며 우리는 강한 탄성을 내뱉었다.
“우와! 맛있어요! 엄청!”
그렇게 우리는 사테 거리를 시작으로 칠리크랩, 생선 껍질 튀김, 카야 토스트 그리고 타이거 맥주까지!
친구들과 함께한 오키나와 음식이 입과 마음에 백 퍼센트 만족감을 안겨준 여행이라면 싱가포르는 눈까지 호강할 수 있었던 고급스러운 뜨거운 맛을 간직한 삼백퍼센트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