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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Nov 24. 2022

네가 안 오면 내가 갈게

'기다림'

 "산모님, 오늘 집에 못 가겠는데요?"


결혼을 준비하면서부터 나의 호칭이 계속 바뀌었다. 결혼을 준비할 때에는 '신부님'으로 불렸다가, 임신을 하고 나서는 '산모님'으로 불렸다. 그리고 지금은 '어머님'이라 자주 불린다. 어린이집에서도 아이와 관련된 모든 공간에서...


 그중, 가장 아련한 건 '산모님'이 아닐까 싶다. 열 달 아니, 산부인과 검진을 가야만 들을 수 있는 호칭이다.

 "산모님"


 38주 차 검진, 임신은 총 40주 차이니 아이 출산 전 마지막 검진이었다. 이 검진만 끝나면 이제 40주 차쯤 진통이 오고, 아이를 낳을 것이다. 이건 내 계획이었다. 그러나 나는 검진이 끝나고 브런치 약속을 가지 못 했다. 양수가 새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다가 입원을 하였다.

 입원절차를 밟고, 분만대기실에 가서 누웠다. 양수가 새고 있어서 유도분만제를 넣어 아이의 출산을 돕는다고 하였다.

 "네." 이 상황에서 내가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주삿바늘을 통해 유도분만제가 몸속으로 들어갔고, 배가 서서히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처음 겪는 고통과 두려움에 조금 무서웠다. 그리고 아직 남편이 오지 않아서 혼자였다. 남편이 오기 전, 아이가 나올까 봐 무서웠고 언제 나올지 모르니 두려웠다. 배는 계속 아파오는데 선생님은 자꾸 아니라고 한다. 내 배는 계속 무언가 신호가 오는데 선생님은 오늘은 안 나올 것 같다고 한다.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졌다.

 다음 날, 아침 6시에 또 촉진제를 넣었다. 나는 지금 낳아도 될 것 같은데 선생님은 더 버텨보자고 한다. 양수가 새면 태아의 공간이 계속 줄어들기에 삼일 안에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데 나는 이제 하루의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대망의 날, 오늘은 낳던가 찢던가 둘 중 하나의 선택을 해야 한다. 6시에 또 촉진제를 맞아야 하는데 겁이 났다. 내가 또 이 가진통을 버틸 수 있을까 싶었고, 어차피 오전에 아이가 나오지 않으면 나는 수술대에 올라서야 한다. 선생님은 고개를 갸웃했다. 자연분만 못 할 확률이 높다며.

 나는 촉진제를 포기하고 그냥 수술을 하겠다고 울었다. 기다림의 시간을 줄이기로 했다. 나는 걸어서 수술실에 들어갔고 스스로 수술대에 누웠다. 차가운 수술대에서 마취주사를 기다리는 시간이 삼일의 시간보다 길었다. 


 삼십 분 후, 나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었고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나는 펑펑 울었다. 의사 선생님은 너무 사무적으로 나에게 말했다.

 "엄마, 배 꿰매야 하니까 그만 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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