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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문희 Jan 03. 2023

쓰는 직업

230102

  오늘은 조선일보 곽아람 기자의 신간 <쓰는 직업>을 읽었다. 2023년 새해 처음으로 펴든 책이다. 제목이 눈에 확 들어왔다. 저건 내 일 아닌가. 그리고 책머리를 펼쳐보는 순간 확신이 들었다. '러브 스토리'에 환장하는 나는 이 책을 결국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이 책은 러브 스토리다, 라고 회심의 첫 문장을 써놓고 보니 아무래도 어디선가 본 적 있는 말인 것 같아 한참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첫 문장은 아니지만) 캐럴라인 냅의 책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러브 스토리다." 냅은 열망했으나 벗어나고 싶었고, 욕망했으나 두려웠으며, 이별을 상상할 수 없었으나 작별을 고해야만 했던 술과의 이야기를 '러브 스토리'라 칭했다.
  냅의 이야기와는 결이 다르지만 나와 일 사이의 서사도 러브 스토리다. 사랑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대체로 지긋지긋하지만 때론 신선하고, 매일 헤어지고 싶으면서도 가끔 그립기도 하며, 1년에 360일쯤 만난 걸 후회하지만 나머지 5일 정도는 아, 네가 너라서 참 좋다 싶은... 끝내자니 아쉬워서 결국은 청산하지 못한 관계, 애증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그런 관계도 사랑이라는 걸.
  이 책은 일이 싫어 울고, 힘들어서 비명 지르고, 버거워 도망가면서도 순간순간 찾아오는 보람과 성장의 기쁨에 중독돼 20년을 버틴 나의 이야기다. 보고, 듣고, 읽고, 느끼고, 결국은 쓰는 일로 귀결되는 나의 일. 기자記者, 즉 ‘쓰는 사람’이란 뜻을 가진 이 직업과 눈물과 웃음을 섞어가며 지지고 볶은 이야기. 그러므로 결국, 이 이야기는 러브 스토리다. - 6~7p


  저자는 '조선일보 최초의 여성 출판팀장'이라는데, 이런저런 수식 따위 없어도 상관 없겠다 싶었다. 글이 곧 자기 증명인 사람이었다. 전작인 <공부의 위로>가 내용 측면에선 더 충실했지만 와닿기로는 이 책이 더했다. 수업을 듣고 세상과 나를 함께 만져보던 시기와 기자 일을 하는 지금이 그만큼 멀어서겠지.



  이런 문장 내지는 문단이 았다. 어떤 것은 일하다 깃드는 감정을 명료하게 표현해서, 어떤 것은 내가 마주했던 딜레마를 상기시켜서. 기자의 직무를 너무 직접적으로 서술한 부분은 아니었다. '직업 이야기'라는 출판 컨셉상 어쩔 수 없이 써 넣었겠지만,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 서술도 감상도 조금 뻔했다. 책을 덮고 보니 귀퉁이를 접은 페이지는 대부분 기자 일을 하는 동시에 '쓰는 사람'으로서 정체성을 어찌 지키고 벼렸는지 고뇌를 적어둔 곳이었다. 흔한 일화지만 장면이 생생하고 문장 전개가 유머러스해 밑줄그은 장도 일부 있었다.


  글쓰는 일이 직업이라 오히려 일이 끝난 후에도 글을 쓴다. 평일 퇴근 후에는 너무 피곤하기 때문에 각잡고 앉아 쓰는 일은 매일 못하지만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미디어에 짧은 글이나마 올리고 잠든다. 그렇게 해야만 '나'라는 인간의 정체성이 '회사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에 완전히 잠식되지 않을 것 같아서.  - 18p


  나는 악성 댓글에는 상처받지 않는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이가 제멋대로 내뱉은 말에 휘둘릴 이유가 없으므로. - 24p


  세월이 흐르고 나서 돌이켜보니 또래 집단과 거리가 먼 집단을 위해 글을 쓴다는 것이 그다지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내가 아닌 타인이 되기 위해 분투하면서, 우리는 조금 더 남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가고 한 발짝 더 성장한다. - 24p


  매일매일 야마가 뭐냐고 다그침당하며 야마가 있는 글만 쓰다 보니 정말이지 진력이 나서 야마 따위 없는 글을 좀 쓰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들기도 했다. "세상사가 그렇게 명료해? 원래 인생엔 야마 따위 없는 거 아냐?" 나는 종종 툴툴거렸는데, 각종 직업을 전전하다 기자가 되겠다며 입사한 후배의 이력을 보던 한 선배가 이렇게 말하는 걸 듣고선 그냥 포기하고 입 다물기로 했다. "얘는 인생의 야마가 대체 뭐냐?"


  기자들은 글에 예민한 존재다. 동료 중 누군가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면 종종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 사람의 글이 싫어." 어떤 사람은 "~다"로 완결된 문장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명사로 경쾌하게 끝나는 문장을 좋아한다. 어떤 사람은 토씨를 넣는 편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토씨를 없애는 편을 좋아한다. 어떤 사람은 구두점을 즐겨 쓰고 어떤 사람은 구두점을 싫어한다. 한자어를 즐겨 쓰는 사람이 있고 우리말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다. 서정적인 글을 아끼는 사람이 있고 건조한 글이 기사의 정석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정답은 없고 결국은 취향의 문제인데 그 취향 때문에 대립하고 반목하고 토라진다. -54p


  기자 생활을 하면서 취재원의 명성이나 지위, 부, 학식을 대단하다 여긴 적은 없다. 그런 걸 가진 사람은 세상에 많다. 그렇지만 겸손한 사람은 드물다. 그날 나는 겸손을 배웠다. - 57p


  누군가는 안쓰러워하며 말한다. 기사에 쓸 부분만 발췌독해도 충분할 텐데 왜 고지식하게 책을 다 읽으려 하냐고. 그러게 나는 왜 고통을 자처하는 걸까. 스스로에게 묻다 보면 답이 나온다. 책 읽기를 사랑하는 만큼 완독이 주는 기쁨을 알게 때문이다. 완독의 힘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나는 안다. 일이라는 건 대충 하면 그저 월급 받는 대가에 그치고 말지만 열과 성을 다하면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자산이 되어 내 안에 남는다는 걸. 결국 성장하고 싶다는 이기적인 욕구 때문에 한숨을 쉬면서도 남은 책장을 세어가며 읽고 또 읽는 것이다. - 86p


  이런 문단을 읽을 땐 좀 울컥했다. 일을 사랑하는 나, 하지만 온전히 몰두하지는 못하는 나. 때로는 몸과 정신을 갈아가며 일에 매진하지만 때로는 적당히 넘어가는 나. 그렇다고 '될 대로 되라'며 방치하지는 못한 채 시간을 투자하고, 밤늦은 시각 '나'는 어디에 있는지 질문하며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내가 떠올라서.

  '뼈기자'는 될 수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도 않지만 때로 그들의 성취를 부러워하는 내가 우습다. 부러워하고 질투하면서도 분노하거나 남을 깎아내리지는 않는 걸 보면 타고나길 그 성과와는 거리가 먼 인간인가 싶기도 하다. 20년을 꼬박 일하고 나면 나도 "견뎠다"는 말을 쓸 수 있게 될까. 이나이쯤 되면 제대로 방황하는 것도 능력임을 알게 된다. 곽아람 기자와 비교한다면 나는 방황이건 업무건 어설픈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도 이 일을 사랑하느냐고 물으면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사랑하고 있다, 내 방식대로.


  내게 일이란 내 것이었으면 좋겠지만 결코 온전히 내 것이 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내 것이라 생각하고 열과 성을 다했는데 알고 보니 회사 것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낙담이 찾아든다. 슬픔과 고통이 온다. 그래서 결국 일과는 '밀당'할 수밖에 없다. 모든 걸 내어주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늘 계산했다. 상처받을 걸 뻔히 알기 때문에. 그래서 나빴나? 그렇지 않았다. 적당한 무심함과 거리감을 의식적으로 유지하면서, 거기서 비롯되는 긴장감을 나는 즐겼다. 일은 일이고 나는 나였다. 명확한 그 경계가 좋았다.
  그렇지만 사랑했다. 쓴다는 이 직업의 속성을, 정의를 추구한다는 명분을, 세상과 독자를 매개한다는 역할을, 오늘을 기록한다는 꾸준함을 사랑했다. - 8p


  기자 생활의 절반은 울면서 마지못해 꾸역꾸역 다녔고, 나머지 절반은 그나마 평탄하게 다녔다. 어떻게 20년을 버틸 수 있었냐고 누가 묻는다면, 훌륭한 기자가 아니어서라고 답하고 싶다. 방황을 많이 했기 때문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고, 성공에 대한 욕망도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기대감 없이 일을 일로만 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일에 지나치게 매몰되지도, 상처받지도 않을 수 있었다. 내겐 일이 전부가 아니었다. 나는 항상 쓰는 사람이었지만, 주말엔 주중과 다른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직장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와 상관없이 '나'인 것만으로 충족되는 단단한 세계가 있었다. 그 세계 덕에, 20년을 견뎠다. - 218p




P.s. 저녁에 커피숍에서 읽다가 집에 와서 마저 읽었다. 뭘 더 먹진 않을테니 달콤한 음료를 마셔야겠다며 유자차를 시켰는데, 집에 와서 쌀강정을 먹었다. 동네 부동산 아저씨가 연말 선물이라며 보내준 것이다. 1미터 80센티미터가 넘는 성인 남자의 몸통만한 상자였다. 언제 다 먹나 했는데 오늘 바닥을 보게 생겼다. 책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하나씩 와작와작 씹어 먹었다. 중간에 책을 덮었더라면 이렇게까지 먹진 않았을텐데. 내가 살이 찐다면 다 곽아람 기자가 책을 잘 쓴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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