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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문희 Feb 20. 2023

포스트맨을 두 번 세 번

230219

그로 인해 교수형을 당한다 해도 나는 그녀를 가져야만 했다. 나는 그녀를 가졌다. - 70p


  이들 문장의 논리적 귀결은 무엇이겠나. "그래서 지금 사형수 감방에서 이 글의 마지막을 쓰고 있다.(167p)" 짓궂은 소설이다.

  요며칠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를 다시 읽으며 생각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는다. 욕망, 사랑, 범죄, 배신, 몰락을 섞어 만든 칵테일을 한입에 꿀꺽 마시고도 만취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빠진 재료는 회심과 용서, 이해와 부활이다.



  제임스 케인은 짧은 분량 안에서 감정의 상한과 하한을 두루 다룬다.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등장인물의 처지와 같은 파장이다. 파동의 특성은 어딘가를 향하는 동안 내내 마루와 골을 그린다는 것이다. 진폭이 클수록 강한 파동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강한 파동으로 파국을 향해가는 이야기라고 해야할 것이다. 주인공 두 남녀의 첫키스 장면부터 이렇게 지독하고 강렬하다.


  그녀를 품에 안고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뭉갰다... "날 깨물어! 깨물어 줘!" 그녀를 깨물었다. 내 이빨이 그녀의 입술을 너무 깊이 파고들어 가 입속으로 피가 뿜어져 나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녀를 안고 2층으로 올라갈 때 피가 그녀의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렸다. - 20p


  누군가는 '치정심리스릴러'라고 이 책을 불렀는데, 딱 맞다고 생각했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떠돌이 프랭크가 우연히 그리스인 닉의 음식점에 들렀다가 닉의 아내 코라와 사랑에 빠진다. 나이 차이가 큰 닉과의 애정 없는 결혼에 코라는 질려 있었고, 프랭크에게 닉을 살해하자고 제안한다. 우여곡절 끝에 살인은 성공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프랭크는 검사의 협박을 이기지 못해 코라를 상대로 한 고소장에 서명한다. 분노한 코라는 프랭크와의 이야기를 담은 진술서를 작성한다. 재판의 결론은 운좋게도 이들 연인의 승리였지만 더이상 둘은 서로를 믿지 못한다.


"당신이 나를 배신했어."
"그리고 당신이 나를 배신했어. 그걸 잊지 마"
"그게 끔찍한 부분이야. 내가 당신을 배신했어. 둘 다 서로 배신했어."
"그러니까 서로 비긴 거지, 안 그래?"
"비겼어. 하지만 지금 우릴 봐. 우린 산꼭대기에 있었어. 아주 높은 곳에 올라 있었어, 프랭크. 그곳에서, 그날 밤, 우린 모든 걸 가졌어.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지 몰랐어. 우린 키스했고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영원하도록 봉인했어. 우린 세상에 있는 그 어떤 두 사람보다 더 많은 걸 갖고 있었어. 그런 다음 무너져 내렸어. 처음엔 당신이, 그리고 그런 다음엔 내가 말이야. 그래, 비겼어. 우리가 이곳 바닥에 함께 있으니. 하지만 더이상 높이 오르지 못해. 우리의 아름다운 산은 사라졌어." - 125p


  코라는 프랭크가 자신을 죽일까봐 두려워하고, 프랭크는 코라가 자신을 밀고할까봐 줄곧 감시한다. 그러던 둘이 '이제라도 잘 해보자'며 화합한 직후 자동차 사고로 코라가 죽는다. 프랭크는 코라 살해를 의심당하고, 도중에 닉 살해 사건 정황이 드러나면서 두 사건을 주도한 악한으로 사형을 언도받는다.

  극적인 이야기인 데다 등장인물의 행위, 감정도 강렬하지만 이를 그려내는 제임스 케인의 문장은 건조하다. 냉혹하고 비정한 현실을 그리면서도 화자의 감정을 개입하지 않는 서술 방식과 문체를 보통 하드보일드라 하는데, 팍팍하고 단단한 완숙hard-boiled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촉촉하고 말랑말랑한 감정 따위 다 빼고 증발시켰다는 의미일 게다. 폭력과 섹스, 범죄로 점철된 세계를 묘사하면서도 좀체 도덕적 판단은 하지 않는 시선으로도 해석된다. 그러한 하드보일드의 세계에서도 케인은 시조격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소설가 장강명은 케인을 이렇게 소개한 적이 있다.


케인은 레이먼드 챈들러와 같은 시대를 살았고, 둘 다 ‘하드보일드의 거장’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두 작가의 스타일은 아주 딴판이다. ... 챈들러는 케인을 ‘문학계의 쓰레기’라고 비난했다. 고독하고 정의로운 탐정을 안 그런 척 로맨틱하게 그렸던 챈들러로서는, 건달이 건달처럼 말하는 소설을 참기 힘들었으리라. 나는 케인 편이다. 살면서 외롭고 의로운 탐정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보통 사람의 언어로 이룬 시적 정취의 폭발력은 그 어떤 수사법도 뛰어넘는다. - [장강명의 내 인생의 책] ③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케인이 은유 같은 것을 가져다 쓰며 멋을 부린 문장은 소설의 제목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가 전부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도 책을 다 읽고 나면 닉과 프랭크, 코라에게 각각 애잔한 마음을 품게 된다. 젠 체 하지 않아도 기막힌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은 건조한 문장을 윤리적 선택으로 여기는 이들에게 기쁜 소식이다. 내가 이 책을 이따금 꺼내 읽는 이유다.


P.S. 이야기의 마지막이 가장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프랭크는 수감된 채 이런저런 상념을 떠올린다. "그래서 지금 사형수 감방에서 이 글의 마지막을 쓰고 있다"는 문장을 보며 지금까지 글이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전개됐음을 새삼 깨닫는다.  "집행유예도 없을 것이고 감형도 없을 것이다. ... 하지만 이런 곳에서는 그저 어쩔 수 없기 때문에 희망을 갖는다"는 주절거림에서 그의 하드보일드 주인공스러운 성격을 확신한다. 그리고 이내 슬퍼진다.


당신은 내가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는 걸 그녀가 알았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 살인을 가지고 모의하다 보면 이런 끔찍한 생각도 든다. 어쩌면 차가 부딪칠 때 그녀의 머릿 속이 내가 일부러 했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그게 이번 생 후에 또 다른 생이 있기를 희망하는 이유다. - 16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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