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2(토)
배가 아파요.
자다가 설사를 했어요.
상자 안은 악취로 가득해요.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 상자 위로 올라가 앉아요.
아침은 밝아오고 있어요.
언제까지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어요.
"카우야~"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요.
저 여기 있어요!
문이 열리고 아주머니가 들어와요.
저를 바로 안아줘요.
설사한 것을 확인했는지 물로 엉덩이를 씻겨줘요.
상자 안은 청결하게 정리해요.
하지만 그 상자에 다시 들어가고 싶진 않아요.
안긴 채로 밖으로 나와요.
역시 따뜻한 햇살은 언제나 기분이 좋아요.
바닥에 드러누워 햇볕에 온몸을 맡겨요.
그런 저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아주머니.
그때 소녀가 왔어요.
소녀도 저를 안아주고 만져줘요.
밤새 불안했던 마음이 안정을 찾아가는 기분이에요.
이윽고 꼬마도 오고 학생도 왔어요.
부드럽게 만져주는 손길,
따뜻한 체온,
사람들의 대화 소리,
한 번씩 불어주는 바람.
제가 제일 좋아하는 환경이에요.
분위기에 심취하다 갑자기 걷고 싶어서 벌떡 일어나요.
발길이 닿는 대로 걸으니 아이들이 저를 따라와요.
자동차가 많아서 위험하다는 길도 건너요.
흙이 많은 곳으로 올라가 소변도 봐요.
흙으로 소변을 덮으니 아이들이 박수를 쳐요.
다시 집으로 발길을 돌리니 아이들도 발길을 돌려 계속 졸졸졸 저를 따라와요.
저는 테라스가 좋아요.
발톱 긁을 때 느낌도 좋고, 햇살도 잘 들고, 바람도 잘 통하거든요.
밤새 부족했던 잠을 이곳에서 보충해야겠어요.
제가 좋아하는 자리에 누워 잠시 눈을 붙여요.
자고 일어났더니 기분이 상쾌해요.
이 기분 그대로 산책을 다녀와야겠어요.
이번에는 아이들이 따라오지 않네요.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건물 쪽으로 붙어서 세상 구경을 해요.
끝도 없이 펼쳐진 이 길의 끝엔 무엇이 있을까요?
세상은 신기한 것 투성이라 호기심이 가득해요.
저기 다른 고양이들도 보여요.
저와는 다르게 키도 크고 날렵해요.
저도 언젠가 저런 날이 오겠죠?
산책을 했더니 배고파요.
다시 집으로 돌아가 밥을 먹어야겠어요.
길눈이 밝아서 집은 아주 잘 찾아간답니다.
저 멀리 우리 집이 보여요.
나를 예뻐해 주는 아이들이 보고 싶어요.
길을 건너 테라스로 향해요.
계단을 밟고 매장 안으로 들어가니 모두가 달려와 저를 안아요.
어디 갔다 왔냐고 물어요.
낮잠 자고 산책한 것뿐인데 모두들 저를 기다렸나 봐요.
역시 예상대로 음식이 있어요.
화장실에 놓인 음식은 먹기 싫은데 다른 곳에서 먹는 음식은 정말 맛있어요.
그리고 우유를 주셔서 먹었는데 물과 다른 맛이 나서 홀짝홀짝 많이 먹었어요.
아, 배부르다.
식사시간이 끝나자 아이들은 저와 함께 놀기를 원해요.
그런 아이들이 저도 좋아요.
몸을 기대고 나를 만져주고 안아주고 상냥한 말로 불러줄 때 제가 살아있음을 느껴요.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화장실로 가야 하는데 밤이 돼도 화장실에 가지 않고 함께 있어요.
오늘따라 오래 놀아주니 굉장히 신나요.
그때 갑자기 시끄러운 소리가 매장 안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어요.
드르륵드르륵
끼이익끼이익
테이블을 옮기고 의자를 옮겨요.
커다란 텐트가 펼쳐져요.
텐트 안에 이불이 깔려요.
학생은 저를 안고 텐트 안으로 들어가요.
"카우야, 오늘은 여기서 다 같이 잘 수 있어. 좋지?"
이불을 밟으니 폭신폭신해요.
아이들이 우르르 이불속으로 들어와요.
서로 저를 안고 자겠다며 싸워요.
감동이에요!
오늘밤은 쓸쓸하지 않아요.
외롭지 않아요.
아늑한 이 공간에서 잘 수 있다는 게 꿈만 같아요.
요리조리 걸으며 아이들의 몸을 타 넘어요.
아이들은 서로 자기를 밟아달래요.
밟으며 지나가면 까르르 웃음꽃이 피어요.
발아래에 밟히는 이불의 감촉이 폭신해요.
가만히 앉아 이불의 감촉을 느껴요.
엉덩이가 금세 따뜻해져요.
학생이 저를 안고 잠자리에 누워요.
이불을 덮어주니 온몸이 따뜻해요.
저도 모르게 스르르 눈이 감겨요.
이렇게 빨리 잠이 오다니!
산책도 했겠다, 오래 놀았겠다,
오늘은 오랜만에 푹 잠들어야겠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아주머니보다 아이들이 저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