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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업하는 건물주 Nov 24. 2024

다들 어디 갔지?

2024.10.21(월)


밤이 좋아요.

어둡지 않아 걷기 좋고, 사람 없어 좋고, 자동차도 많이 다니지 않아 좋아요.

화장실에서 자지 않아서 좋고,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 계속 혼자만 있으니 심심하고 외롭기도 해요.

저를 쓰다듬어주던 손길이 그립고, 함께 놀던 시간도 그립고, 편하게 먹던 밥도 그리워서

안락함을 느끼러 집에 다시 돌아가야겠어요. 


이 길로 쭉 가면 집이 나와요.

놀이터 같은 주차장도 있고, 매장도 있고, 생각하기 싫은 화장실도 있는 저의 집이에요.


어?

집에 도착했는데 매장에 불이 꺼져있어요.

다들 어디 갔지?

주차장으로 가봐야겠어요.


자동차는 그대로 있는데 아무도 안 보여요.

저의 잠자리였던 박스도 있고, 발이 푹푹 빠지는 상자도 있고, 밥도 있고, 물도 있어요.

가지런히 정돈된 것을 보니 저를 위해 준비한 건가 봐요. 그런데

저 박스는 들어가기 정말 싫고, 발이 푹푹 빠지는 저 상자도 낯설어서 싫고, 아무도 없으니 밥 생각도 없어요.


평소 자주 놀았던 자리에 몸을 웅크리고 앉았어요.

기다리다 보면 가족들이 저를 찾아오겠죠?

언제쯤 올까요?

빨리 왔으면 좋겠는데.

혼자만의 시간을 길게 가져보니 혼자보다 가족과 함께 있는 게 더 큰 행복이라는 걸 알았어요.


입 속에 약을 넣은 건, 이유가 있겠죠!

발이 푹푹 빠지는 저 상자도, 이유가 있겠죠!

싫지만 상자에서 자는 것도, 이유가 있겠죠!

이제는 모든 것을 다 수용할 수 있어요!

그러니 빨리 저를 찾아왔으면 좋겠어요!


새벽 공기가 생각보다 매우 차가워요.

낮은 더운데 새벽이 이렇게 춥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어요.

어쩌면 화장실에서 자는 게 더 나은건지도 모르겠어요.

아! 그래서 저를 화장실에서 재웠던 건가 봐요!

앞으로는 화장실에서 잘 자도록 노력해 봐야겠어요.

주시는 음식도 싹싹 비우고

똥, 오줌도 가리는 말 잘 듣는 착한 고양이가 될게요.


바스락바스락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요.

가족들이 저를 찾아온 걸까요?

웅크리던 몸을 펴고 벌떡 일어서요.

주위를 살피다가 너무 놀라 온몸이 경직되었어요.

저보다 훨씬 큰 덩치의 고양이가 저를 쳐다보고 있어요.

도망가고 싶은데 너무 무서워서 몸이 움직이질 않아요.

야옹야옹 소리를 질러 가족들에게 다급한 이 상황을 알리고 싶은데 목소리도 나오지 않아요.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 제발 저를 살려주세요.'


덩치 큰 고양이가 저를 향해 다가오고 있어요.

몇 걸음 걷지 않은 것 같은데 제 머리 위에 어느새 덩치 큰 고양이의 머리가 있어요.

갑자기 저의 목덜미를 물었어요.

아픔이 느껴지더니 숨이 쉬어지지 않아요.

발버둥을 치지만 너무 세게 물고 있어서 소용이 없어요.

있는 힘껏 움직일수록 숨통은 더 조여와요.

'안돼, 안돼, 나는 우리 가족들을 만나야 해...'


제 소원을 덩치 큰 고양이가 들었던 걸까요?

그 고양이는 입을 벌려 저를 풀어줬어요.

철퍼덕 바닥에 떨어져 몸이 아팠지만 이제 숨을 쉴 수가 있어요.

덩치 큰 고양이는 유유히 걷더니 시야에서 벗어났어요.

'휴~ 살았다.'

생각보다 착한 고양이었나 봐요.

그래도 주차장은 무서워서 테라스로 몸을 옮겨야겠어요.

긴장이 풀리니 잠이 와서 한숨 푹 자야겠어요.


"카우야~ 어디 갔다가 이제 온 거야? 얼마나 기다렸는 줄 알아?"

우리 엄마 목소리예요!

드디어 엄마가 저를 찾아왔나 봐요!

조금 전 일도 그렇고 새벽 산책 간 것도 그렇고 할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데

왜 이제야 찾은 거냐고 따져 물으러 가야겠어요.


벌떡 몸을 일으켜 주차장으로 달려가요.

'엄마! 저 여기 있어요! 카우가 돌아왔어요!'


......


엄마는 등을 지고 쪼그려 앉아 있어요.

에옹~에옹~하는데 이제는 저를 쳐다보지도 않아요.

'너무 오래 있다가 들어와서 화나셨나?'


제가 왔는지 모르나 봐요.

엄마 앞으로 다시 걸어가야겠어요.


환하게 웃어 보일 줄 알았던 엄마는 눈물을 흘리고 있어요.

손은 하얀 물체에 올려놓고 꾹꾹꾹 여러 번 눌렀다 뗐다를 반복하고 있어요.

상황이 이상해서 더 가까이 가보니 하얀 물체는 바로 저였어요.

저는 이렇게 멀쩡히 서있는데 바닥에 누워 있는 제가 보이니 무슨 일인가 싶어요.

엄마를 쳐다보며 최대한 큰 소리로 에옹~을 외쳤지만 

서 있는 제 모습은 보이지 않는지 바닥에 누워있는 저만 보고 있어요.


그때 둘째 누나가 내려와요.

운동을 제일 많이 시켜준 누나예요.

누나에게 다가가는데 누나는 바닥에 누워있는 저에게로 걸어가요.

"엄마, 카우가 죽었어?"


네? 제가 죽었다고요?

저는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는데 왜 죽었다고 하는 걸까요?

제가 죽어서 가족들이 저를 보지 못하는 거였어요?

바닥에 누워 있는 저는 죽었고 멀쩡히 서 있는 저는 영혼인가요?


둘째 누나와 엄마는 번갈아가며 저의 심장을 계속 누르고 있어요.

......

이제 그만하셔도 돼요.

저는 다시 살아날 수 없어요. 

이미 죽었는걸요.


엄마가 하얀 상자를 가지고 와서 씻어요.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를 상자에 부어요.

모래 위에 저의 사료들을 가지런히 놓아요.

한 번도 먹지 않은 사료들도 꽤 많았었네요.

모래를 또 부어요.

수건으로 감싼 저를 상자에 넣어요.

남은 모래를 모두 부어요.

상자의 뚜껑을 덮어요.


상자 위에 손을 얹고 마지막 인사를 하는 둘째 누나.

"카우야, 잘 가."

'고마웠어 누나, 이렇게 좋은 가족들을 만나게 해 줘서 정말 고마워.'

둘째 누나가 울면서 학교로 가요.


이번에는 셋째 누나가 내려왔어요.

"엄마, 카우가 죽었어?"

'응, 나 죽었어 누나. 그런데 너무 슬퍼하지 마. 괜찮아. 고마웠어.'

상자 뚜껑을 쓰다듬으며 눈물을 뚝뚝 흘리던 셋째 누나도 학교로 가요.


마지막으로 첫째 누나가 내려와요.

"카우는?"

엄마가 첫째 누나의 손을 잡고 상자 뚜껑 위로 손을 올려요.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상자 뚜껑을 열어요.

모래로 가득하니 다시 뚜껑을 덮어요.

첫째 누나도 눈물을 흘려요.

엄마가 누나를 토닥인 후 학교로 보내요.


혼자 남은 엄마는 큰 봉투에 제가 담긴 상자를 넣고 묶어요.

제가 잠자던 상자도 봉투도 모두 건물 밖에 내놓아요.

그런 후 집으로 올라가요.


서서히 저의 몸이 가벼워진다는 게 느껴져요.

가족들이 안아줘서 발이 허공에 둥둥 뜨는 그 느낌이 들어요.

제가 하늘나라로 가기 위해 무지개다리를 건널 건가 봐요.


창문을 통해 엄마가 계시는 방이 보여요.

엄마가 펑펑 울고 있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산책가지 말걸...


가족들이 저를 위해 흘려준 눈물이 무지개다리라는 걸 알았어요.

고마워요.

가족들 덕분에 무지개다리를 건너 하늘나라에 잘 도착했어요.

엄마의 기도대로

하늘나라에서는 아프지도 않고 야옹 소리도 잘 내고 좋은 친구들도 많이 사귀어서 행복한 묘생을 보낼게요.

제 걱정은 마시고 우리 가족 건강하게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어요.

저를 가족으로 받아주셔서 감사했어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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