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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쌤 Feb 07. 2024

하마터면 국제 미아가 될 뻔

나 때는 말이야, 너희들 나이였을 때 인도에서 살았어

학교 내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 전교생들이 부담스럽게 쳐다본다.

처음 보는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하는 선배들도 있었고, 저학년들은 그런 나를 신기해하며 내 머리를 만지기도 했다.

하지만 살가운 다른 학생들과는 달리 나에 대한 Junior 기숙사 학생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못했다.

junior 룸메이트들과의 관계가 서먹해지니 나를 향한 사감의 눈빛도 좋아 보이진 않았다.


나를 곱게 보지 않는 일련의 자잘한 사건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바로 샤워 사건이다.


Junior 기숙사에는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bath time 즉 샤워할 수 있는 날이 정해져 있고, 머리를 감을 수 있는 날도 정해져 있다.


세상에.. 한국에서는 매일 씻는 게 당연했는데  샤워하는 것마저 자유를 박탈당하다니..

씻지 못하는 것만큼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못 알아듣는 척하기' 스킬을 쓰기 시작했다.

머리를 감는 날이 아닌데 머리를 감고 기숙사에 들어와 보니, 아니나 다를까 기숙사 룸메이트들이 사감에게 일러바친 모양이었다. 사감은 나에게 머리를 왜 감았냐고 물었고, 그 말을 알아 들었지만 나는 못 알아들은 척 "에?"라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사감은 내 반응에 포기한 듯 자신의 이마를 치며 가라고 했다.

인도에서 상대방을 향해 자신의 이마를 치는 행위는 '답답하다' 또는 그 사람에게 욕을 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처음에는 그 행동의 뜻을 알지 못해 그냥 내가 답답하겠거니 넘겼지만

후에 티베트 친구들이 그 뜻을 알려주고 나니 어른답지 못한 사감이 너무도 미웠다.


기숙사 생활을 하며 제일 짜증이 났던 점은 기숙사에 어린 룸메이트 몇 명이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을 사감에게 보고하는 것이다. 정말이지 얄미워서 화병 걸릴 뻔했다.


나는 Junior 기숙사 학생들보다 Senior 기숙사 언니들과 더 친했고, Lhadon은 그런 나에게 친한 친구들을 소개해주곤 했다. 그래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Junior 기숙사 사감이 우리에게 Senior 기숙사 룸메이트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하였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못 알아듣는 척하며 듣지 않았다.


'말 안 듣는 한국인'


아마 당시 사감한테 미운털이 제대로 박혔을 것이다.


같은 공간에 지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미움받는 일이란 참 쉽지가 않다.

그런 상황들이 나를 더 외롭게 만들었고,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으니 말이다.


매일 밤 기숙사 대문을 보며 '아 지금 탈출해 버릴까, 일단 어디든 나가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전화도 없고, 연고도 없는 이곳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으랴


그래도 밖을 나가보고 싶었다.


보통 주말에는 기숙사 스케줄이 한산한 편이다. 좀 더 기숙사 내에서 자유로울 수 있달까

하지만 기숙사 밖에는 특별한 이유 없이 나갈 수가 없다.

이거 원 새장 속에 갇힌 새가 된 느낌


그날 토요일은 학교에서 전체 기숙사 학생들을 데리고 소풍을 나가는 날이었다.


'드디어 기숙사 밖을 나가는구나!'

기숙사 생활이 너무도 지긋지긋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학교 체육복을 입혀 각 기숙사끼리 이동하게 했다.


남녀 교제에 굉장히 예민하고 엄격한 학교를 벗어나 기숙사 밖으로 나온 학생들은 이때다 싶어 남녀끼리 몰래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그곳에서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사람들 속에 섞여 스릴 있게 데이트를 즐기는 학생들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사춘기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만국 통일인 것 같다.


나는 Lhadon과 짝을 지어 이동을 하고 있었고, 그녀에게 영어를 배우며 이런저런 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코피가 나기 시작했다. 당황한 나는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코를 막았지만 이미 폭포처럼 쏟아내 듯 콸콸 흐르고 있었다.


Lhadon은 피범벅이 된 휴지를 빼고 얼른 새 휴지로 갈아 주며 내 코를 지혈했지만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인도 거리 한 복판에서 코피를 철철 쏟아내고 있는, 커다란 안경을 쓴 동양인 아이라니..


안 그래도 외국인이라서 인도인들이 신기하다고 다 쳐다보고 있었는데 정말 웃긴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코피가 영원히 멈출 것 같지 않아 무서운 마음이 든 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당황한 Lhadon은 내 코피를 계속 멈추려 지혈을 했고, 우리가 우왕좌왕하던 사이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벌써 다른 장소로 이동했는지 학생들이 보이지 않았다.


'Balamurgan' 그 남자아이만이 우리 곁에 있었다. (Balamurgan도 영어를 못해 나와 함께 영어 기초 과외를 듣는 학생이다.)

 인지 모르겠지만 아이도 적잖이 당황한 듯 얼떨결에 우리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한국에서 학교 다닐 적, 피를 1시간째 흘려 학교를 늦게 등교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기억이 생각이 나 겁을 잔뜩 먹었다. 

나는 Lhadon에게 코피가 다 멈추면 가자고 말했지만 이미 20분이 경과된 상태였다. 이대로 가다간 영영 학교 사람들을 놓치게 된다.


하둔은 일단 나에게 진정하라며 Balamurgan과 함께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Stanes 학교 체육복을 입은 학생들을 봤냐고 물어봤다. 우리는 수소문 끝에 겨우 학생들과 선생님을 찾을 수 있었다.


정말이지 하마터면 인도에서 국제 미아가 될 뻔한 사건이었다.


밖을 나가고 싶다고 생각했지 이렇게 길 한복판에서 미아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아니었는데,


갑갑한 곳이라 할지라도 나를 보호해 줄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지

그래도 돌아갈 곳이라도 있는 게 어디냐며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할지


한국에서는 그런 것들이 당연했는데, 이곳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전혀 당연 치 않아 우여곡절을 참 많이 겪는 것 같았다.

Lhadon과 Keswick 교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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