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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쌤 Jan 24. 2024

첫 학교 생활

나 때는 말이야, 너희들 나이였을 때 인도에서 살았어

첫 학교 생활


"Girls get up"


새벽 5시, 사감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Cho, you up?"

2층 침대 위에 있던 티베트인 Pema가 나를 깨웠다.


내가 인도에 있는 게 꿈이기를 바랐는데.. 

 침대에서 당장 일어나는 게 내 현실이라니 아침부터 굉장한 우울감이 몰려왔다.

기숙사 룸메들 그리고 사감선생님과 함께 아침 기도회를 끝내고 학교 갈 준비를 했다.

아이들은 굉장히 분주했고, 이미 교복이 있는 친구들은 교복을 입었다.

갓 전학을 온 나는 교복이 아직 없어서 사복을 입었다. 


아침 6시 30분이 되자 기숙사 밖으로 이상한 종소리가 들렸다.

룸메이트들은 그 소리를 듣자마자 가방을 들고 기숙사 밖을 나갔다.

어리둥절한 나를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한 Pema는 나의 손목을 잡고 기숙사 밖으로 나갔다.


당시 아침 6시 30분마다 공부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대학생들이 와서 기숙사생들의 과외를 주로 맡아주거나 개인 자습하는 시간을 가지곤 했다. (말이 자습이지 기숙사마다 지정된 교실에서 친구들과 몰래 놀았다. 한국의 야자타임 마냥)


각 기숙사마다 정해진 교실에서 자습을 하게 되는데, 사감 선생님이 동행할 때도 있고, 다른 교실을 순찰하기도 한다. 당시 영어를 할 줄 몰랐던 나는 그저 친구들을 따라다니며 교실 안에서 멍 때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7시 30분, 아침에 들었던 이상한 종소리가 들렸다. 소름 돋으면서도 굉장히 시끄러운 소리다.

옛날 드라마에 나오는 부자 초인종 소리를 30초 길게 듣는 느낌이랄까


인도 학교에서의 첫 아침을 먹을 시간이 왔다.

친구들을 따라 기숙사별로 식당 앞에 줄을 섰고, 그 시각 일찍 등교하는 기숙사생이 아닌 다른 학생들도 볼 수 있었다. 다들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말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 나 혼자 다른 세계에 덩그러니 놓인 기분이었다.


식당 앞에 줄을 서고 있으면 조리사분이 나와 학생들에게 아침 식사 기도문을 말하라고 시킨다.  조리사분의 이름은 'Pradeep' 그는 후에 나에게 좋은 인연들을 맺게 해주는 사람이 된다.  


'Say the grace!'


아침 식사 기도문이 끝나자 지명된 기숙사별로 식당 안에 들어간다.


오늘의 아침식사 메뉴는 'Dosa' 남 인도의 대표적인 전통 요리 중 하나로 아주 얇은 크레페다. 발효된 흑, 콩과 쌀로 반죽을 하여 만들어지는데 종종 Chutney와 Sambar라는 소스와 함께 먹는다.


처음 dosa를 접했을 때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몰라서 같은 테이블에 있는 친구들이 어떻게 먹는지 관찰했다.

다들 손으로 먹기 시작한 것을 보곤 극심한 거부감이 몰려왔다. '손으로 어떻게 먹는 거지..?'


아직 손으로 음식을 먹는 인도 문화를 받아들이기에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아, 엄마 아빠가 챙겨주신 젓가락이 있는데 이따가 저녁을 그걸로 먹어야겠다.. 손으로 먹기에는 도저히..'


밥 먹기를 주저하자 옆에 앉아 있던 인도 친구 'Vilashini'가 'do you need fork?'라고 물었다.

포크라는 단어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는 일하는 아주머니를 불러 포크를 달라고 했다.


곧 나에게 숟가락과 포크가 쥐어지고, 나는 그 커다란 Dosa를 열심히 숟가락과 포크를 이용해 뜯으며 식사를 했다.


후에 들은 이야기인데, 내가 Dosa를 그렇게 먹고 있으니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던 남학생들이 그런 나의 모습이 웃기다며 엄청 웃어서 휘진, 성민 형제가 정말 부끄러웠다고 했다.

 

8시 30분까지 교실에 가야 한다. 아침 조회를 하기 위해 전교생이 운동장에서 모여 교장 선생님의 지도하에 아침 예배를 드린다.


드디어 인도 교실을 들어간다니 살짝 설렜다.


이 학교는 한국과는 달리 각 학년마다 교실이 A, B로 나뉘어있다.

당시 7학년 수업을 들어야 했던 나는 어느 교실로 가야 할지 몰라 그냥 Vilashini를 따라 7학년 A 교실로 들어갔다. 반에는 거의 50명이 넘는 아이들이 교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내가 교실로 들어서자마자 연예인이라도 본 듯 그들에게 둘러싸였다. 오만 질문이 오고 갔지만 단 한 개도 알아듣지 못했다.

동물원안에 원숭이 또는 돌고래가 된 기분이었다.


처음 접한 인도 학교의 교실은 나에게 가히 충격적이었다. 옛날 투니버스에서 방영하던 애니메이션 '검정 고무신'에 나오는 교실 그 자체였다.


나무의 세월이 보이는 울퉁불퉁 일체형 책상 의자, 최신 칠판이 아닌 시멘트 벽 칠판, 물론 컴퓨터도 없었다. 분필들도 아무렇게나 놓여있었고, 분필 지우개를 터는 기구도 없었다. 전기가 잘 안 들어오는 곳이라 그런지 빛이 없는 매우 어두운 교실이었다.

8학년 B 교실

'나 지금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온 건가?'

 

아침 조회 시간이 다가왔다. 각 반 선생님들의 지도하에 교실별로 줄을 서서 운동장으로 걸어갔다.

생각보다 더 많은 인도인들이 한 공간에 있으니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당시 사람들이 자꾸 나를 쳐다보니 불편하기도 하고, 우스워 보일까 봐 꽤 신경이 쓰였다.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는 아침 예배가 끝나고 교실로 돌아왔다.

운동장



내 제자들은 나를 초쌤, 주변에서는 나를 '초'라고 부른다.

이 이름을 가지게 된 웃긴 유래가 있다.


아침 9시 30분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었다.


첫 교시는 'Physics' 물리

(7학년이 벌써부터 물리 수업이라니, 역시 이과의 강국 인도인가)


키 크고 뚱뚱한 그리고 엄청 까무잡잡한 콧수염의 아저씨가 교실을 들어왔다.

Mr. Yadin 물리 담당을 맡은 선생님이다.

'What is your name?'

그는 손으로 나를 가리키며 굵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Cho.. Cho daae"

당황한 나는 한국 이름을 말하였고, 이내 반 친구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솟다개!" "줮다해!" "촛다이!" 라며 친구들이 내 이름을 발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반 친구들은 내 이름을 발음하기 어려워 그냥 'Cho'라고 통일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초다이' 췄다해' 이렇게 부르는 사람이 있었지만 나중에 'Cho'라고 불러달라고 신신당부해서 나는 완전한 'Cho'가 되었다.

 

인도에서의 첫 학교 생활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정신이 없었다. 영어를 못 알아들으니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기를 반복했다.

한국 학교와 달리 이곳에선 수업을 끝내면 매교시마다 쉬는 시간이 없다. 다음 교시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신나게 떠들고 있다가 선생님이 오시면 바로 수업을 진행한다.

학교 수업 중 딱 한번 쉬는 시간이 있는데 바로 11시 ~ 11시 15분, morning tea time이다.


인도는 영국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차를 마시는 문화가 있다.


학교에서 기숙사생들을 위해 아침 티, 오후 티 이렇게 두 타임으로 차와 간식을 제공해 준다.


개인적으로 학교 밥은 정말 맛이 없었지만 나는 티 타임을 정말 좋아했다. 인도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음식 또는 간식을 기숙사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께서 직접 만드시기 때문이다.

직접 우린 인도 홍차도 굉장히 맛있다.


그렇게 오후 4시까지 학교 수업이 끝이 난다.

기숙사 학생이 아닌 반 친구들이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내심 부러웠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면 자신들을 기다리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또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Vilashini를 따라 우리가 돌아갈 곳인, 주니어 기숙사로 돌아왔다. 4시에는 오후 티 타임이 있다. 우울할수록 열심히 먹어야 에너지를 비축해야지.


맛있는 간식과 홍차를 마시고 이제 하루 일과가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하루가 끝난 게 아니었다.


기숙사생들에게 매일 일과가 다양하게 정해져 있었다.

그날은 체육을 하는 날이었다. 운동이 끔찍하게도 싫었던 나는 놀고 있는 친구들을 구경할 뿐 그냥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집에 가고 싶어서 또 눈물이 났다.


학교 시간일 때는 건물을 탐방할 시간이 없었는데 방과 후 기숙사에서 체육시간이 주어지니 학교 건물을 탐방할 기회가 조금은 있었다.

운동장
여자 기숙사, 식당 입구
컴퓨터 실에서 본 건물


운동장


체육 일정이 끝나고 드디어 씻으러 가는 시간이 되었다. 전 날에 못 씻어서 하루가 찝찝해 있었다.

"when shower? when shower?"이라며 룸메이트들에게 하루종일 묻고 다녔는데 드디어 씻을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건지,

아니나 다를까 내가 생각하는 한국의 편리한 샤워 시설이 이 인도 학교에서는 있을 리가 없다. 애초에 기대를 저버렸지만 씻는 곳이 이런 곳인 줄은.. 난민 온 기분이었다.


주니어 기숙사생들이 샤워하는 곳은 따로 있었고, 그 위치가 1층 식당 안에 있는 주방 바로 옆이다.

샤워장 밖에는 네모단 돌들이 평평하게 세워져 있는데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그 위에서 빨래를 주로 하신다.


실내에는 샤워장이 총 6개가 있었고, 당연하게도 샤워기는 없었다. 대신 각 샤워장 안에는 수도꼭지가 있다.

자 그럼 어떻게 씻어야 하는가?

 

출처 - 구글 이미지

수도꼭지를 틀고 저 버켓에 물을 담아 머그로 바켓에 물을 퍼서 씻으면 된다.

정말이지.. 불편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이곳에 있으면 먹는 것도, 씻는 것도, 노는 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으니 정말 답답한 감옥 같달까


샤워시간이 끝나고 저녁 6시, 자습시간이 다가왔다.

한국에선 야자 타임, 이곳에선 저녁 자습시간이다. 물론 공부를 제대로 하는 친구들은 잘 없었다. 다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놀거나 수다를 떨기 바빴기 때문이다.


6시 30분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다.

오늘의 저녁 메뉴는 beef biryani, 인도의 소고기 볶음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볶은밥은 노란색에 삶은 소고기가 들어가 있다. 비프 비리야니는 곧 내 최애 음식이 된다.

출처 - 구글 이미지

저녁을 먹고 다시 자습을 하러 교실로 들어간다.

그러면 8시쯤 자습을 끝내고 다시 기숙사로 들어와 잠옷으로 갈아입고 밤 기도회 준비를 한다.


일하는 아주머니를  타밀어로 'akka'라고 불린다. akka가 와서 데운 우유를 가지고 기숙사로 들어오신다.


기도회가 끝난 후 우유 한잔을 끝으로 하루 일과가 비로써 마무리된다.

인도라는 나라에 적응하기도 전에 학교에서 지켜야 할 규칙과 문화에 맞춰 살아야 한다니 벌써부터 암담해졌다.

내일은 얼마나 더 깜깜하려나,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가는 것만 같았다.


정말이지 이제 시작인데, 벌써 지쳤다. 가능하다면 포기하고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인도에 와서 가족들과 전화를 못한 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날따라 엄마의 얼굴이 눈앞에 너무 아른거려 이불을 뒤집어쓴 채 몰래 훌쩍이다 잠이 들었다.

체육관 쪽에서 바라본 학교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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