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인도 지역 이름의 개념 자체가 없던 나는 달리는 차 안에서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이라는가사가 머릿속에 맴돌아서 실없는 웃음이 나왔다.
목적지는 있으나 이 길이 제대로 가는 길이 맞는지는 그저 운전기사님을 믿고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비포장 도로를 지나 마이소르(Mysore)라는 지역의 간판 이름이 보였다.
마이소르에는 인도인들 뿐만 아니라 많은 티베트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당시 유학한 학교에 티베트 친구들 몇 명과 함께 공부했는데, 후에 그 친구들이 이 마이소르 이름 뜻에 대해 알려줬다. 물소(水牛)의 머리를 가진 악마의 도시라고 한다.
악마의 도시라니 뭔가 섬뜩했다.
인도에는 티베트 망명정부가 두 장소나 있다고 하는데 한 곳이 바로 이 마이소르(Mysore)에 있는 바이라쿠페(Bylakuppe)이다.
1959년 티베트에서 중국에 대한 반란 후, 티베트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인도로 망명하였고, 이에 따라 많은 티베트인들이 인도로 피난 왔다. 인도 정부가 중국에서 추방당한 티베트인들의 정착을 위해 세운 도시가 바로 이 바이라쿠페라고 한다. 이곳에는 대략 3천 명 정도의 티베트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처음에 티베트 친구들이 자신들이 사는 곳이 발락쿠삐라고 발음해서 바이라쿠페가 맞는지 계속 헷갈렸다. 유학 당시 마이소르를 여행해보진 않아 아쉬운 마음이 남아있던 나는 2023년 10월, 15살 제자와 인도를 여행하였을 때 마이소르 궁전과 티베트 스님들이 거주하고 있는 남드롤링 황금 사원에 방문했다. 제자와의 인도 여행 에피소드는 따로 시리즈를 작성해 보겠다.
마이소르 궁전
남드롤링 골든 템플
이제 마이소르(mysore)에서 우띠(ooty)까지 가려면 머두말라이(Mudumalai) 타이거 보호지역이라는 곳을 지나와야 한다.
출처 - 구글 이미지
이곳은 야생동물들이 서식하는 곳인데 지나가다가 코끼리, 공작새, 원숭이, 사슴 등을 볼 수 있었다.
진짜 에버랜드 사파리에 온 기분이었다.
몇 시간을 더 달린 끝에 초원을 벗어나 마을과 상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곳에서 현지인들의 생활을 실시간으로 엿볼 수 있었다.
먼지가 가득한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
그 도로 위를 활보하고 다니는 염소와 소 그리고 사람들,
좁은 도로 옆에는 허름하고 낮은 높이의 상점들과 수레바퀴를 끄는 상인들,
향이 피워져 있던 작은 템플,
맨발을 한채 아이의 손을 잡고 동냥을 하던 여인, 들개
그들을 감싸고 있던 눅눅한 공기와 매연
인도 그 자체였다.
사파리 같았던 초원을 벗어나 보니 비로소 인도에 와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나는 지금 인도에 와 있다.'
그 마을에서 벗어나자마자 헤어 핀 로드(hair pin road)라는 구간에 다다르렀다.
우띠는 고산지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이곳을 가려면 헤어 핀 로드를 지나야 한다.
이 헤어 핀 로드는 주로 산악 지형에서 볼 수 있으며 가파른 산 등 고도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도로가 설계되었다고 한다.
이곳을 지나갈 때 종종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고 관광객들이 이러한 도로를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다.
hairpin road 출처 구글 이미지
헤어핀 로드 구간 표지판, 출처 구글 이미지
우띠로 가는 헤어 핀 구간은 무려 36개의 스핀이 있다. 위에 나온 사진을 보다시피 차량이 급한 곡선을 따라 180도 회전해야 하는 도로이므로 36번을 빙글빙글 돌아야 했기 때문에 차멀미를 하는 나에게는 굉장한 곤욕이었다. 게다가 도로 위 안전지대나 팬스가 없어서 조금 무서웠다. 까딱 잘못 운전하게 되면 낭떠러지에 떨어져서 하나님과 하이파이브를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위에서 본 헤어 핀 로드, 출처 구글 이미지
이곳에선 혼자 보기 아까운 자연의 풍경을 마주 할 수 있다.
헤어핀 로드를 돌 때마다 보이는 집,
빨래를 너는 여인,
간간이 보이는 템플,
집 옥상 템플에서 향을 피우고 계시던 할머니,
그 템플 속 외로운 신,
그 신이 바라보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거대한 풍경
이 풍경을 지나오면 괜스레 묘한 감정이 들기도 한다.
헤어핀 로드는 도는 구간과 도로 면적이 짧기 때문에 운전 시 고도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신호가 없고 앞에 어떤 차가 오는지 몰라서 '나 여기 있어! 조심해!'라는 뜻에서 돌 때마다 늘 경적을 울려야 한다.
뱅글뱅글 올라갈 때마다 꼭 보이는 아주 아찔한 상황이 있었는데 항상 우리 앞에 아주 큰 버스가 180도로 한 번에 터닝을 못해서 후진하고 직진하고를 반복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뒤 따라오고 있던 우리의 차량은 식은땀을 흘렸지만 결국 그 버스는 터닝에 성공해 위로 직진한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초원을 지나 겨우 마을에 도착하니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더 고난도의 구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기억 속 헤어핀 로드에서 한 번만에 돌지를 못하고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는 버스는 마치 현재의 내 모습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인생이 그저 직진만 하는 삶이라면 그 길이 얼마나 순탄하고 평화로울까? 하지만 갑자기 생뚱맞은 길이 나온다면 우리는 당황하고 말 것이다.
어려운 길이 닥쳤을 때 우리는 이것을 해결하려 직진하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고 다시 후퇴하기도 하지만 이것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다.
남들은 지름길이 있는데 굳이 돌아서가느냐고, 어려운 길을 택하냐고 나무라겠지만
그런 경험들이 쌓여 후에 힘든 상황이 닥쳤을 때 빨리 해결할 수 있는 기지를 발휘할 수 있다.
모든 인간은 시행착오와 여러 반복으로 인해 성장한다.
우리의 길이 구불구불하더라도 좀 돌아서 가는 것처럼 보여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생각해도 다 저마다의 때가 있다.
그러니 우리는 주어진 자리에서 맡은 일에 최선을 다 하고, 많은 시행착오와 그 경험을 통해 구불구불한 길을 맞이하자 그래서 언제든 올라갈 준비가 된 자가 되자 그것으로 우리의 소중한 이야기를 채워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