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할 내일은 반드시 온다.
시간은 야속하게도 흘러간다.
오지 않았으면 하는 다음 날 새벽이 금세 찾아왔다.
사실 기상 시간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눈이 떠졌다.
'지금이라도 다시 돌아간다고 할까'
'아픈 척을 해볼까' '아니면 바닥에 누워 생떼를 부려볼까'
머리를 굴리다 결국 기상 알람 소리를 듣게 되었다.
굼벵이처럼 느릿느릿 출발할 채비를 하였다.
'그냥 지구가 멸망했으면'
월요일에 출근하고 싶지 않은 직장인처럼, 곧 부대로 복귀해야 하는 현역 군인의 마음처럼 마치
죄수가 감옥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랄까
살면서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어도, 이렇게 몸서리칠 정도로 가고 싶지 않았던 적은 처음이었다.
'그렇지만 인제 와서 돌아간다고 말할 순 없어, 내가 자존심이 있지... 시간은 언젠가 또 흘러간다'
한번 하고자 했던 일은 끝까지 해야 하는 나의 고집이 스스로를 다독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당시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던 중2병임이 분명했다.
앞으로의 일들은 10대인 내가 홀로 감당하기 힘들고,
날마다 외롭고 눈물로 보내야 할 줄도 모른 체 말이다.
하지만 그때의 무모한 도전은 지금의 내가 되기 위한 일종의 워밍업이라고 생각한다.
인도라는 곳이 아니었다면 내 삶은 주체적인 삶이 아닌 수동적이고 쉽게 포기하는 의지박약 한 나로 살았을 테니 말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다시 15살로 돌아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나는 망설임 없이 'Yes'라고 외칠 것이다.
인도에서의 4년은 참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도 많던 반면 누구도 쉽게 경험해 볼 수 없는 스펙터클하고 재미있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나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경험은 곧 자산이며 이야기가 된다. 모든 이야기에 교훈과 지혜가 있듯이
아버지는 늘 나에게 시행착오를 많이 겪어 보길 바란다며
스스로 인생에 흔적을 많이 남기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
이런 시행착오들이 모여 나를 만들어가고, 만들어가는 과정 중 나는 꿈을 꾸었으며, 내 꿈을 통해
어느 순간 학생들에게 내일을 살아갈 용기와 동기부여를 심어 주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제주 중문교회 청소년 비젼 톡톡 콘서트 강의 초청 기사 M-net 너의 목소리가 보여 시즌8 4화 출연 및 기사 2023년 10월 인도 현지 학교 Stanes school 비젼 강의
2023년 10월 인도 현지 교회 Union church 비젼 강의
피골이 상접한 얼굴을 한 채 학교로 출발하는 차에 올라탔다.
차에 올라타기 전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지난밤에 너무 많이 울어서 말을 할 기운조차 없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동행하는 형제들은 내 부은 눈을 보며 놀려댔다.
내가 앞으로 다니게 될 학교는 벵갈루루(Bengaluru) 지역에서 차를 타고
대략 8시간이나 걸려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산 쪽에 자리 잡고 있어 차밭이 많아 인도의 휴양지로 알려진 쿤누르(coonoor),
그곳에 Stanes라는 학교가 있다.
학교는 쿤누르(Coonoor)에 있지만 우띠(ooty)에서 앞으로 나의 현지 가이드가 되실 선교사님 부부를 먼저 만나야 했다. 새로 전학 갈 학교의 입학 절차를 도와주실 분들이기 때문이다.
벵갈루루(Bengaluru) 지역에서 차를 타고 우띠(ooty)까지 가는 시간은 대략 7시간 정도 소요된다.
벵갈루루에서 우띠까지 가는 경로
차를 타고 이동하며 휘진, 성민 형제들과 학교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고 차가 심하게 덜컹거려 깨기를 반복했다. 인도는 한국처럼 포장된 도로가 아니라 매우 울퉁불퉁하고, 사방으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이 펼쳐져 있으며 가끔 가다 코끼리와 공작새도 볼 수 있었다.
잠시나마 우울한 감정을 뒤로한 채 바깥 풍경을 구경하기에 정신이 팔렸다. 아니 어쩌면 우울감을 떨쳐버리기 위해 머나먼 타국으로 소풍을 온 것이라고 스스로를 세뇌시키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처음 인도에서 차를 탔을 때 신기했던 것은
한국과 다르게 운전자 석이 왼쪽이 아닌 오른쪽에 있었던 점이었다.
인도는 1858년부터 1947년까지 무려 89년 동안 영국의 식민지였기에 영국 문화의 영향들이 인도 내에서 종종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티 타임을 즐기는 영국인처럼
인도인도 11시에는 오전 티, 4시에는 오후 티를 즐기곤 한다.
하지만 옛날 영국식 영어를 구사하는 반면 인도인들의 영어 발음은 하나도 고급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인도 영화 '세 얼간이'를 보면 알다시피 영어를 쓰지만
인도식 발음의 억양이 강해서 굉장히 딱딱하고, 외계어로 들릴 때가 있다.
가끔 수업 중 아이들의 집중이 흐려졌을 때 인도식 영어 발음을 개인기로 종종 써먹을 때가 있다.
사방에는 광활한 초원과 끝이 보이지 않는,
단조로운 비포장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차 안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가야 이 길이 끝나고 다른 길로 들어설 수 있는 걸까'
장시간 이동과 목적지가 보이지 않아 지쳐갈 때 즈음 이 도로와 내 삶이 순간 겹쳐 보였다.
'나는 이곳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버티면 내일은 찾아오려나? 버틴 다음에는 뭐가 있을까?
나는 성장되어 있을까? 이 시기가 지나가면 또 어떤 길이 나올까?'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는 이 막연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사람이 머리를 많이 쓰면 배가 고파진다고 했던가
허기가 지던 찰나 운전기사님께서 휴게소같이 보이는 곳에 잠시 정차하셨다.
형제들은 밥을 먹자며 도로에 달랑 하나밖에 보이지 않는 카페로 나를 데리고 갔다.
출처 구글 이미지
인도의 국민 카페라 불리는 빨간 간판에 'Cafe coffee day'
당시 인도의 대표적인 체인점 카페였다.
카페 내부를 들어가기 전에는 왠지 모를 굉장한 거부감이 들었다.
주변에는 까무잡잡한 인도 아저씨들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체인점은 후에 나의 둘도 없는 최애 카페가 된다.)
'에이 인도인데.. 뭐 별거 있겠어?'
하는 선입견과 함께 카페로 들어섰다.
어설픈 영어 실력으로 초콜릿케이크와 샌드위치를 시켰고,
별 기대하지도 않은 채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먹었다.
세상에, 인도 특유의 향신료가 들어간 샌드위치 맛이 아이러니하게도 내 취향이었다.
꾸덕꾸덕한 초콜릿 케이크도 내 입맛에 딱이었다.
우울할 땐 맛있는 것을 먹어야 한다는 말처럼 덕분에 슬픔이 조금은 달아난 듯했다.
'계속 기분이 저기압일 줄 알았는데, 먹을 것에 힘이 나는 나도 참 웃기다'
누가 예상이라도 했을까 울상을 하고 있던 내가 먹을 거에 표정이 확 바뀔 줄을?
그래 누가 예상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내가 인도에 가게 될 것을,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그 당시 나는 알 수 없는 게 당연했다.
미래를 알 수 없기에 시간이 흐르지 않을 것만 같았고
느리게 흘러가는 이 시간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음에 너무 답답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도로처럼 무엇이 나올지 예상할 수 없어 다음 구간에 대한 두려움과 답답함이 가득한 건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불안정한 우리의 삶과도 같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하루는 늘 불안감으로 채워져 있진 않다.
우울함으로 감겨 있던 나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행복을 찾은 것처럼
불안정하다고 느끼는 우리의 하루는 케이크와도 같은 아주 잠깐의 달콤한 선물 또는 기억 덕분에
힘을 내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지 않을까
든든히 배를 채우고 밖을 나와보니 높은 하늘과
그림 같은 구름 덩어리들 그리고 햇살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왜 진작 하늘을 보지 못했던 걸까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해서 계속 땅만 보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고작 배를 채웠을 뿐인데 나는 비로소 하늘과 마주할 수 있었다.
하늘을 볼 힘이 생긴 것이다.
또다시 하늘을 거들떠보지 않을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힘은 분명히 다시 생길 것이다.
그렇게 오늘을 살아내면 내일을 살아낼 수 있는 힘이 생기고,
비가 그치지 않던 장마도 언젠가 끝나는 것처럼
비가 오고 땅이 굳듯이,
내가 굳건히 성장할 내일은 결국 반드시 오게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