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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문자cho Apr 22. 2018

내 종아리는 왜 굵은가

    나는 너무 길쭉한 지형의 학교를 다닌다. 정문 앞 버스정류장에서 강의동까지는 일직선의 길을 걷는데도 15분은 걸린다. 그 길을 걷자면 직진뿐이라 너무 지루한데, 그래서인지 항상 걸음에 가속도가 붙는다. 나는 언제부턴가 등하교를 하며 그 긴 길을 참 빨리도 걷는다.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해도 멈출 수 없다.


    그 길은 나뿐만 아니라, 다들 그렇게 걷는다. 모두가 앞만 주시한 채 빠른 걸음이다. 그 무리의 속도에 뒤쳐지면 안 된다. 느린 사람을 제쳐야 할 때면 뒷사람이 방향을 틀면서 속도가 떨어지니, 여간 민폐가 아니다. 특히 수업이 시작하는 정각 10분 전쯤엔 다급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절대 걸리적거려서는 안 된다.


    하지만 아무리 수업에 늦어도 그 길을 뛰는 사람은 없다. 정문과 강의동의 중간쯤 되는 지점에 중앙도서관이 있다. 늦었다며 손만 흔들고 먼저 뛰어가버리는 친구들은 그 중앙도서관 앞에서 헥헥거리는 모습으로 다시 만나리라.


    등굣길에는 그렇다 치고, 하굣길엔 왜 그렇게 열심히 움직이는 걸까. 다들 열심히 움직이는 가운데 있다 보면 나 홀로 뒤쳐질 수 없어서 조급 해지는 마음인가. 빨리 이 길을 통과해서 수업에 가겠다는 마음이나, 빨리 길을 통과해서 집에 가겠다는 마음이나, 목적지만을 바라보고 가는 건 같은 마음인가.  


    늘 실패 없이 우리를 목적지로 인도하는 길 위에서 누구도 이 과정의 의미는 찾지 않는다. 아침엔 수업에 늦어서, 오후엔 곧 도착할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우린 잠시 잠깐 결과지상주의형 인간이 된다. 거리엔 발빠른 움직임만이 남는다.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운 이 거리를 횡단하는 일은 오래 견디기 힘들다. 하여 가급적 빨리 마무리해야 하는 종결의 과정으로만 인식된다. 찡그린 표정이 그것을 말해준다.


'얼른 강의실에 들어가서 에어컨 바람 쐬야지
얼른 집에 가서 이불에 엎어져야지.'


'아 종아리 땡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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