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둥아리 Apr 24. 2023

1학년 교실에 3분의 1이 다문화 학생이면 벌어지는 일

새롭게 발령받은 학교는 특별한 점이 많았다. 물론 이전에 근무하던 학교도 결코 평범한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학교는 조금은 다른 의미로 그랬다. 일단 한 학년에 8반까지 있던 전에 학교와는 달리, 한 학년에 고작 2반밖에 없는 아주 작은 학교였다. 한 반에는 평균적으로 15명 내외의 학생이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학교의 전교생을 다 합쳐도 지난 학교의 한 학년의 학생 수가 안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특별한 점은 다문화 학생이 전체 학생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많은 학교라는 것이다. 현재 우리 반은 총 14명인데, 그중 다문화 학생이 5명이다. 물론 이 중에는 다행히 기본적인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아이도 있지만,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 아이들도 많다. 기본적인 의사소통조차 안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 아이들은 영어조차 할 줄 모르기 때문에, 교사와 학생 간의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우리 학교의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파파고'를 항시 켜고 다닌다. 아이들에게 꼭 전달해야 할 내용을 파파고에 적고 학생 나라말로 번역해서 들려준다. 


다문화 학생(게다가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이 교실에 많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나는 교사로서 한 번도 다문화 학생을 경험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개학 전부터 걱정이 많았다. 가장 큰 걱정은 '다문화 학생들이 소외되면 어쩌지?', '한국 피부색이 다르다고 생긴 게 다르다고 따돌리면 어쩌지?'였다. 하지만 이내 내 걱정은 쓸모없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다문화 친구들을 한국인 친구들과 똑같이 대했다. 8살 아이들에게 다문화 친구들은 학교에서 처음 만나는 새로운 친구와 다르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다문화 친구들은 그냥 학교에 와서 처음 보는 친구 그 이상 이하도 아닌 것 같았다. 오히려 얼굴색이 더 예쁘다고, 머리색이 더 예쁘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얼굴색이 다르다고, 머리카락색이 다르다고 낯설어하고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어른들만의 이야기인 듯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서로의 언어를 몰라도 아이들은 금세 친해진다는 것이다. 새 학기가 시작하고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날이었다. 교실 뒤에서 여자 아이 두 명이 부둥켜안고 서로를 예뻐해주고 있었다. 귀여운 마음에 바라보다 그중 한 아이는 한국말을 하나도 못하는 학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 아이를 안고 있는 아이는 한국 학생이었다. 도대체 아이들은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데 어떻게 친해질 수 있을까? 언어가 통해야 친해질 수 있다는 생각, 다른 언어를 쓰면 다가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 또한 어른인 나의 생각이었다. 아이들은 서로를 안고, 만지고, 쓰다듬으며 친해졌다. 쉬는 시간엔 서로 머리를 따주고, 새로 가져온 학용품을 보여주고, 눈을 맞추면 환하게 웃으며 그렇게 친해졌다. 


물론 우리 반 아이들이 다문화 친구들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이 거의 없는 것은, 아이들이 아직 8살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는 새로운 것, 다른 것에 대한 일종의 거부감, 나아가 반감까지 생긴다. 그래서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간주하려고 한다. 가끔 아이들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것에서 문제는 해결된다. 세계화시대에 반드시 갖추어야 할 능력으로 알려져 있는 다문화수용성, 아이들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되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강남을 떠난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