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복직을 하고, 내가 학교에서 일하는 선생님이라는 것을 알게 된 아이들이 요즘 들어 나만 보면 하는 말이 있다.
빨리 8살이 돼서 엄마랑
같이 학교 다니고 싶어.
물론 나는 현재 아이들이 거주하는 곳과 다른 교육청에서 근무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다닐 시기에 같은 학교에 함께 다니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하더라도, 나는 아이와 같은 학교를 다니고 싶지는 않다.
집 근처 아이와 같은 학교에서 근무한 선배 선생님들의 말에 의하면, 내 아이 친구의 엄마가 단지 아이 친구 엄마가 아니라 학부모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은 굉장히 불편하고 어렵다. 또한 교사는 우스갯소리로 돈 못 버는 '반연예인'이어서 집 근처에서 근무하면, 하다못해 슈퍼마켓을 갈 때에도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 불편하다.(아마 대중목욕탕은 꿈도 못 꿀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나의 아이와 같은 학교에 다니기 싫은 가장 큰 이유는,
내 아이의 "모든 모습"을 마주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집에서의 모습과, 학교에서의 모습은 얼마나 다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이기에, 그 모든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 두렵고 불편하다. 일반적인 대부분의 아이들이라면 언제나 바르고 착할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안다. 물론 간혹 아주 유니콘 같은 아이가 있기도 한데 아주 예외적인 경우이며, 그 아이가 내 아이는 아닐 것 같다.(유니콘 같은 아이라 하면, 교우관계, 생활태도, 학습태도 등이 모두 우수하여 흠잡을 곳이 없는 아이를 말한다.)
그래서 나는 또 같은 말을 하는 첫째에게,
"지금은 엄마가 너의 유치원에서의 모든 일을 알고 있지는 않잖아. 그런데 엄마랑 같이 학교에 다니면 엄마가 너의 모든 일을 알게 될 거야. 친구랑 싸운 일, 선생님에게 혼난 일, 네가 실수한 일 같은 것들 모두 다. 너도 힘들고 불편하지 않겠어?"
라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첫째는 나를 바라보며 제법 진지한 목소리로, 나의 머리를 띵 울리는 말을 한다.
엄마 나는 정직한 게 좋아. 엄마가 그런 걸 다 알아도 괜찮아.
그리고 나는 그게 더 행복해.
그 순간, 아이의 서툴고 부족한 모습을 마주하기 힘든 것은 사실 아이가 아니라 나(어른)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아이는 자신의 그런 모습들을 엄마인 나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데 말이다. 오히려 아이는 엄마가 나의 모든 것을 알게 되는 것이 편하고 행복하다고 했다.
문득 궁금해졌다. 도대체 언제부터 아이들은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싶어 하는 것일까? 아이가 자라서일까, 아니면 아이의 불편한 모습을 마주한 어른들의 태도일까?
사실 6살의 아이를 키우는 지금의 나는 아이가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해도, 물론 혼내거나 나무라지만, 그 일들과는 별개로 있는 그대로의 아이를 사랑하고 존중해 준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시간이 흘러 아이가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도, 아이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부모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지금처럼 나에게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어렵지 않고 불편하지 않은 일이 되도록,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마음이 편해지고 행복한 일이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