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집 <이제 막 독립한 이야기> 중 ‘꿈, 길, 물고기’를 읽고
좋아하는 소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소설이다. 줄곧 오랜 감흥을 남겼던 작품들은 마땅히 ‘왜 좋아하는지’ 설명하기 어렵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한 줄 이상으로 설명할 줄거리가 없었고, 확연히 드러나는 세계관도, 감정에 대한 서정적인 기술도 찾기 힘들었다. 다만 소설의 감성이 매혹적이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마음을 깊게 쓸고 지나가는 소설은 그랬다. 참 좋은데, 감상을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하는 한계가 과제였다. 소설이든 영화든 종종 리뷰를 쓰곤 했지만, 정말 맘에 박혔던 작품에 대해서는 어떤 말도 곁들일 수 없었다.
‘꿈, 길, 물고기’도 그런 소설이다. 장소와 인물들의 특성은 모호하다. 배경에 대한 설명은 소거돼 있다. 종이를 썩둑 잘라내 12색 물감 중 몇 개로 얼추 칠한 마을을 만들고, 개성이 희미한 여자를 놓았다. 여자는 자신이 왜 이곳에 왔는지 알지 못한다. 과거의 연인도 부연이 삭제돼 있다. 소설 속 풍경에는 연기가 깔린 장터처럼 안개가 깔려 있다. 먼지가 내려앉은 서랍 속 파스텔로 그린, 채도와 경계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림이 완성된다.
여자는 사러 온 물건도 모르고, 돌아갈 곳도 알지 못하고, 신고 있던 신발조차 잃는다.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감각은 무엇을 의미할까. 기억하지 못하는 대상을 상실한들 중요할까. 미지의 물건은 이편에 속할 것이다. 슬리퍼도 다르지 않다. 둘은 언제 잃어버려도 이상하지 않다. 다만 여자는 성곽길 근처에서 듣게 된 물고기 뼈에 관한 이야기만큼은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215p). 그는 물고기 뼈와 자에 대해 끊임없이 곱씹는다.
되풀이하는 생각은 기억하려는 감각과 닮았다. 잃어버린 대상이 무엇인지 되뇌는 여자에게선 희미한 의지가 배어있다.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거기엔 생활의 필요성과 직결된 사물과는 거리가 먼 가치가 담겨 있다. 인생에서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이름이 정해진 사물과 달리 각자의 숨에서 태어나는, 뭉술하지만 끝내 견고하게 빚어내야 하는 무언가. ‘반듯하게 선을 그을 자(214p)’가 필요했던 것 같다는 뭉근한 사념은 물고기가 땅을 뚫고 솟구치는 대목에서 분명해진다.
물고기 뼈를 기억하려 한 건, 망설임 없이 먹빛 하늘을 가르는 물고기의 자태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자에 대한 상념은 두려움 없이 제 길을 가는 물고기의 아름다움을 예감했기 때문 아닐까. 자를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일정 비율의 의지가 함유돼 있다. 반듯이 선을 긋는 행위는 반드시 균열을 일으킨다. 무르고 물컹한 삶에 끝이 어떻든, 방향이 같은 무수한 점을 찍어내겠다는 다짐이니까. 지키고 싶은 것들이 있는 만큼 잃어버릴 것들이 아주 많을지도 모른다는, 슬픔이 예정된 결심이니까.
모든 모호한 것들 사이에서 선을 긋는 마음은 가장 신실한 약속이다. 지향을 세우는 작업은 자신의 유한함을 받아들여야 가능하다. 끝이 보장되지 않을지라도 길의 끝에 다다르고 싶다는 겸허함이 내포돼 있다. 그렇게 여자는 소중한 무언가를 향해 ‘느리게, 망설임 없이(223p)’ 걸음을 내디딘다. 그는 많은 것을 잃었을지 몰라도, 독자를 숙연하게 하는 용기만은 잊지 않았다. 여자에게 무언가를 선물한다면, 눈금 없는 자를 건네고 싶다. 느리지만 묵묵히 가는 그 길이 보채지 않도록.
좋았던 소설에 대해 말하는 것은 역시 어려운 일이다. 오랜만에, 그것도 친구의 소설에 구체적인 감상을 남겨 보았다. 역시 에세이보다는, 소설이 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