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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들 seondeul Dec 30. 2023

결산 서른하나

노란 방의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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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같은 나이를 두 번 보내고 싶진 않아 원래 살던 나이대로 세기로 한다. 안 그래도 올 한 해, 서른하나는 너무 길었다. 그리하여 2023년에도 찾아온! 결산 서른 하나. 먹고 마시고, 실행하고, 듣고 본 것, 세 가지로 나눠 정리해 본다.           



새롭게 좋은 것: 달리기. 수영. 영어 책. 캠핑. 김밥. 레몬진. 스우파 2.
여전히 좋은 것: 커피. 생태 책. 바느질. 연필. 임윤찬. 해리포터. 버터의 털 냄새.      





먹은 것
유부 김밥, 집 김밥, 블루마운틴 따뜻한 드립 커피, 콜롬비아 엘파라이소 리치 아이스커피, 레몬진, 나마사케, 내추럴 와인, 샤도네이, 아침으로 먹는 크림치즈 듬뿍 바른 베이글 반쪽.      



사진이 너무 많아 생략해도 이정도... 광기 김밥


1년간 먹은 음식 중 가장 탐닉한 것은 김밥. 마신 건 커피로 꼽겠다. 김밥에 대한 추억은 말하자면 끝이 없지만, 모두가 동의하는 한 가지 사실. 집에서 만 김밥이 제일 맛있다. 짬이 날 때마다 미친 듯이 김밥을 말아먹었다. 기본 재료와 더불어 고사리, 우엉, 새우튀김 등등 하여튼 다 넣고 말면 맛있다. 탄수 폭탄이라 며칠에 한 번씩만 자제하며 먹고 있는 최애 음식! 내년에는 무엇이 벼락처럼 찾아오려나!   


운전이 가능해지며 살고 있는 도시의 김밥 맛집을 도장 깨기 하기 시작했는데(수영 후에 먹는 김밥이 얼마나 꿀맛이게요) 우연히 알게 된 한 가게의 유부김밥이 충격적이게 맛있었다. 손님이 없어 닫으실까 봐 갈 때마다 종종거렸는데, 아침 여섯 시 반부터 웨이팅이 있는 가게가 되어버렸다. 사장님께 잘됐다며 무슨 일이냐 여쭤보니 어디 SNS에 떴단다. 없어지지 않아 너무 다행이다.      

  


다리스타 획득!


친구와 함께 커피 자격증을 딴 것도 뿌듯한 일이다. 주말마다 수업을 듣고 시험을 봐서 국제바리스타 자격증을 땄다. 핸드드립 커피를 내릴 수 있는 브루잉과 원두를 감별하는 센서리 두 가지를 따며, 워낙도 좋아하던 커피를 더 잘 알 수 있어 세계가 넓어졌다.


산미 있는 원두만 파던 차에, 강릉 커피 페스티벌에서 포스 있는 아저씨 바리스타가 내려주신 블루마운틴에 흠뻑 빠져 그 맛을 잊지 못하고 한참 동안 아침을 블루마운틴으로 시작했다. 고소하고 균형 있는 맛에 얼죽아도 따뜻한 커피를 찾게 하는 멋진 향기! 더불어 콜롬비아 엘파라이소 리치 원두를 알게 되어 그 원두가 있는 카페에 가면 꼭 아이스로 시켜 맛을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었다. 가향 이슈가 있지만 처음 마셨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여러 바리스타가 (나 포함) 내린 엘파라이소 리치를 마셔봤지만 최고는 연남동의 한글 카페를 뽑겠다. 그 가게 바리스타분이 내려주시는 게 가장 맛있어 몇 번이고 방문했다.      



주류 박람회 내년에도 또 가야지!


사케에 대한 수업을 듣게 되고, 여러 사케를 찾아보며 스무 병 정도 마신 듯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시쿤 준마이 긴죠 골드피쉬. 여름날에 어울리는 깊이 있는 맛이었다. 그러나 올해 가장 많이 마신 술은 레몬진. 텀블러에 얼음 가득 넣은 레몬진 7도와 함께라면 계곡도 캠핑도 친구들과의 파티도 모두 다 어울렸다.                





한 것
드디어 즐기게 된 수영, 제가요? 달리기를, 영어 공부, 그림, 바느질과 재봉, 캠핑, 정원 가꾸기.


최애 수영복과 아침 수영하러 가는 길


작년의 가장 큰 변화는 수영과 운전. 올해도 이어져왔다. 내버려두면 두 시까지 자는 나를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게 하는 수영! 화목 아침 7시의 수영은 일상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루틴이 되었다. 아무리 이른 새벽에 가도 꽉 찬 사람들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전쟁터 같은 풍경을 만들어내는 장관을 볼 수 있다. 그중 한 명이 나라는 사실이 아직도 어색하다. 물 공포증을 이겨내고 이제는 자유형 자세가 예쁘다며 부러움을 받는 지경까지! 수영장 같은 반 분들과 티타임도 나누고 밥도 먹은 것이 즐거웠던 일들 중 하나다. 막내라인이라 예쁨 받는다. 이제 어디 가서 어릴 일이 드물어 은근하게 즐기고 있다.      




올해의 가장 큰 이벤트 중 하나인 달리기. 달리기 싫어 체육시간마다 울었었는데, 무려 10km와 하프 마라톤 완주에 성공했다. 그림 그리러 오시는 분이 강력 추천하셔서 홀린 듯 뛰게 되었는데, 대청호 마라톤과 천안 은행나무 마라톤을 나가게 되었다. 뛰는 기쁨 또한 평생 가져갈 취미 중 하나에 추가되었다. 사실 몇 년 간 지속해 온 요가를 9월까지 꾸준히 하다가 아쉬탕가 전문 학원으로 바꾸게 되었는데 허리가 자꾸 아픈 바람에 쉬는 중이다. 그 사이에 달리기를 열심히! 내년에도 몇 개의 대회가 있기에 10km 한 시간을 목표로 또 달려본다.

 


놀러 가서도 일 하다가도 집에서도


이만큼이나 읽었다! 좋아하는 김밥으로 축하 파티


올해 가장 뿌듯한 일은 해리포터 전 시리즈 영어로 다 읽기! 올 초에 마틸다로 영어 원서 읽기 공부와 화상영어 공부를 시작하며 새운 목표였는데, 해냈다. 소소한 축하 파티도 했다. 영어로 쭉 읽으며 모르는 단어는 밑줄을 쳐놓고 노트에 옮겨 적는다. 한국어 판에서 그 단어를 찾아본다. 좋아하는 걸 다른 시선에서 해석해 볼 수 있어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화상 영어 또한 110번이 넘어 적어둔 영어 노트가 2권이 넘어갔다. 뿌듯한 일이다.      


마당의 꽃과 고양이들
가장 좋아하는 연필과 수채화 조합


캠핑과 재봉, 바느질. 임윤찬의 연주와 함께 재봉!


가장 오래된 취미이자 직업이자 나의 정체성인 그림 그리기도 지속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그린 그림들이나 남겨둔 작품들을 보며 전의를 다진 한해였다. 여름과 가을에는 엄마가 남긴 옷감으로 바느질을 하며 마음을 달랬다. 집의 커튼들이나 작은 소품들을 만들었다. 재봉이라는 실용적인 배움도 있었다. 캠핑이 노숙이었던 시절부터 캠핑 키즈로 자라왔는데, 혼자 떠나는 캠핑에 도전하게 되어 혼자 자주 떠났다. 훌쩍 걸릴 것 없이 나설 수 있어 좋았다. 마당의 꽃과 풀들도 언제나처럼 위로가 되어주었다.      





듣고 본 것
책들, 스우파 2, 타이타닉, 임윤찬.      


이제는 앞뒤로 두줄이 되어버린 책장.. 살려줘.. 이만큼 반대편에 또 있어요
올해 좋았던 책들!

지금 세어보니 92권의 책을 읽었다. 겨울에 9권, 봄과 여름에 47권, 가을에 32권을 읽고 보내는 중엔 겨울에 또 4권을 읽었다. 잘 모아두어 브런치에 독서노트로 남겼고, 올해는 영어 책이 다수 포진되어 있음이 새롭다. 자연과 관련된 책들이 여전히 좋았다. 토지 전집을 읽은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하여 소설 중에는 토지를, 시집 중에는 마종기 시인의 천사의 탄식, 김소연 시인의 촉진하는 밤, 그림책 중에는 이디스 홀든의 컨트리 다이어리, 에세이는 마거릿 로우먼의 오늘도 나무에 오릅니다를 꼽겠다.  

    


최야 2번의 직관, 캠핑가서도 본방 본 스우파2


책 못지않게 친구들이 인정하는 도파민 중독자로 여러 예능을 다채롭게 본다. 여전히 최강야구(핸수야... 어딜 가든 잘해라)와 골때녀(발라 우승을 봐서 여한이 없다)가 좋았고, 감자! 등 명대사 파티였던 사이렌, 날 것의 맛 피의 게임2, 바다와 초콜에 미쳐 따뜻한 연말을 선물해 준 스우파 2(콘서트도 갔다 첫콘!)가 올해를 빛냈다(둘이 오늘 배틀했다, 소원 성취). 드라마는 n번째 정주행 한 앤이 기억에 남고, 샬럿 왕비가 화려함의 뒤에 여운이 남았다. 영화는 극장에 걸려 감사했던 타이타닉이 가장 좋았다. 명작은 시대에 상관없이 울림을 준다. 헝거게임 프리퀄이 소소하게 재미있었다.      


꿈 같았던 임윤찬 세종, 6월의 리사이틀만을 기다린다


작년부터 빠진 임윤찬의 연주는 뮌헨필과의 협연을 직접 볼 수 있었던 잊을 수 없는 순간을 선물해 줬다. 앵콜로 들었던 사랑의 꿈은 몽롱할 만큼 행복했다. 콩쿨 과정을 담은 크레센도 영화도 알찼다. 내년에는 꼭 리사이틀을 갈 테다, 제발 티켓 한 장만요... 유튜브로 모든 영상을 무한 반복 중인데 좋은 스피커를 새로 사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일상의 모든 음악이 클래식이 된 것이 새로운 변화다. 진중하고 열정 있는 젊은 연주자의 시작을 지켜볼 수 있어 감사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올 한 해를 떠올리며 잊을 수 없는 두 가지는, 갑작스럽게 엄마와 영영 이별하게 되었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여름에 미칠 듯이 온 비로 인한 수해이다. 힘들었고, 평온을 되찾아가는 요즘이 홀로그램같이 느껴진다.      


미리 마련해 둔 루틴 덕분에 일상을 지킬 수 있었다. 펑펑 울며 운전하면서도 도서관을 갔고, 책 앞에 앉았다. 목이 콱 막힐 것 같이 슬픔이 밀려올 때는 벌떡 몸을 일으켜 수영장에 가고, 달리기를 했다. 잘 차린 점심과 정성스레 내린 커피 한잔, 영어 공부로 오후를 시작했다. 여덟 고양이들의 밥을 주고, 일을 한 후에는 셋이 있을 때처럼, 아빠와 티비를 보며 긴긴 저녁식사시간을 가졌다. 주말엔 여행을 가거나 전시, 박람회에서 사람들 속에서 분주해 봤다. 이 모든 것들이 나를 지탱해 줬다.      



이게 전부인 한 해였지만, 좀 더 더듬어보니 함께해 준 사람들이 조용히 곁에 있어줌이 생각난다. 같이 울어준 사람들에게 무한한 감사함을 느낀다. 해리포터를 영어로 읽으며 새롭게 감동적이었던 부분은, 마지막 권에서 죽음을 각오한 해리가 부활의 돌을 사용해 이미 떠난 사람들을 불러내는 장면이다.      


“You’ll stay with me?”

“Until the very end.”     


그 누구보다 엄마가 내 곁에 여전히 있음을 믿는다. 아직 이 모든 사실을 소화 중이고, 감정을 들여다보려니 눈물뿐이라 6월 이후로 일기장을 차마 펼치지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 펼쳐질 모든 순간들에 엄마가 함께 할 것이다. 아주 아주 마지막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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