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한 당신의 모습만이 한가득

나는 당신을 좋아하나 봐요

by 초들



환한 당신의 모습만이 한가득


3.19.(월) 5:22 광주역에 도착한 나는 이른 아침 한가로운 인도(人道)를 걷습니다.


헤어진 지 7시간 지났지만 나의 두 발은 광주 아닌 서울에 서있는 듯한 착각을 한 체, 지독한 잔상(殘像)의 늪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습니다. 무거운 등을 뒤로하고 지하철 타러 가시는 J 씨를 한참 동안 멍하니 쳐다보다가 하는 수 없이 나도 뒤돌아 개찰구로 향했어요. 헤어짐이 너무 서운해서, 샘솟듯 솟아나는 허탈감을 주체하지 못해서 구슬 같은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답니다. 멍하니 파란 괴물 기차에 몸을 실으면서 ‘나는 J 씨를 좋아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일간 스포츠를 펼치니, 웬걸 신문 기사는 하나도 보이지 않고, 살며시 미소 짓는, 환한 당신의 모습만이 한가득 드러나지 뭐여요. 신문을 접으며, ‘J 씨가 전철을 잘 탔을까?’라고 중얼거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J 씨! 나는 당신을 좋아하나 봐요. 일간 스포츠 속의 당신 얼굴을 다시 보려고 펼치는 걸 보니.


그렇지만 꿈같은 환상은 서서히 사라지고 엄연한 현실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네요.


광주집에 도착해서 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나를 동생들이 두 눈 말똥말똥 뜨고 쳐다봅니다.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요.’ 직감적으로 불길한 상상을 하면서 조심스럽게 “무슨 일 있니?”라고 물었습니다. 쭈빗쭈빗 말하려다 마는 동생들 모습에 왈칵 불안감을 가졌어요. 초조함으로 숨이 막혀 순간 큰 소리로 “무슨 일이야?”라고 물었더니, 동생 왈 “연탄불이 꺼질 것 같고, 곤로에 석유가 없어서 밥을 못 했어요.”하는 거예요. “휴, 난 뭐라고. 너희들에게는 연탄불이 꺼지고, 곤로에 석유가 없어서 밥 짓지 못하는 게 커다란 사건이겠지.” 긴장을 풀며 “형 옷 안주머니에 돈 있으니, 석유 사 와라.”


나는 빨려들 듯 뜨뜻한 아랫목 찾아 잠을 청했어요. ‘얼마나 잤을까?’ 일어나 보니 10시 30분. ‘아유, 아직껏 10시 30분이네.’ 다시 잠을 청해 11시 30분에 기상. 라면을 끓여서 허기진 배를 채웠습니다. ‘아 참, 애들이 아침 식사 잘하고 학교 갔을까?’ 부엌을 살펴보니, 식은 밥이 조금 있을 뿐이었어요. 동생들에게 미안하네요. 주인아주머니께서 숯을 넣어 연탄불을 살려 주셨는데, 밑불이 거의 꺼져서 연탄불을 빨리 갈아놓고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어때요?" 엊저녁 늦게 버스라도 타고 무사히 집에 가셨는지 궁금합니다. 힘없이 돌아서는 J 씨 모습을 망연자실(茫然自失) 쳐다보면서 생각했어요. ‘J 씨를 도와야지. 내가 J 씨 지팡이가 되어야겠구나.’라고 각오를 다졌습니다. 당신을 보호하고 도와드리고 싶어요. 당신의 지주(支柱)가 되어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이 바늘이라면 나는 실이 되고 싶어요. 한결같이 마음으로 염원해 봅니다. 비록 아픈 현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지만요. 물질적으로 당신을 호화스럽고 화려하게 치장해 줄 수 없겠지만, 마음 다해, 정성 다해 극진히 사랑해 드리고 싶어요.


내가 J 씨에게 과분하고 어려운 상대는 결코 아닐 겁니다. 아주 유순하고 순진한 사람입니다. 끈질기게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J 씨! 힘들 때, 슬플 때, 고통스러울 때, 걱정거리 많을 때 바로 나를 찾아 주세요. 내가 넉넉하게 감싸드릴게요. 진심입니다. 진솔한 마음입니다. 그러고 보니 J 씨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슴 채워지니 막 힘이 납니다. 용기와 희망이 생깁니다. 이런 희열, 나만 갖는 것은 아니겠죠? J 씨도 나를 사랑해 주실래요. 사랑의 마력이 강렬한 희열로 바뀔 테니까요.


참, 사진을 보냅니다. 78년 여름방학 때, 흑산도에 캠핑 가면서 배 위에서 친구들과 찍은 사진입니다. 앞으로 두 번 정도 사진을 동봉해서 색다른 감응을 갖도록 해드릴게요.


SJ!(이후에는 ‘J 씨’에서 ‘SJ’ 또는 ‘SJ 야’로 부름)

좀 어색하네요. 하지만 노력해 보겠어요. 제가 ‘~ 씨’하고 부르는 사람은 너무 많지만 ‘~’라고 부르진 않거든요. 즉, ‘~ 씨’는 평범하지만 ‘~’는 제게 특별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SJ! 이름이 참 곱군요. 내가 보고 싶으면 현금 3,000원만 갖고 언제든지 광주에 오세요. 열렬히 환영하고 지극정성을 다할 테니. 하지만 무리는 금물(禁物), 차분 차분히 우리들의 소중한 날들을 만들어가요.


서운하지만 이만 그치렵니다. 건강과 행운을 주님께 기도드리면서.

1979.03.19. (월) pm 4:00 浩야가


추신:

1. 현금 3,000원은 기차 차비 2,180원, 군것질 500원, 용돈 300원, 전화요금 10원, 나머지 10원은 비상금이고, SJ 상경 시 비용은 제가 모두 부담합니다.

2. 1979.03.18.~03.19.까지 J 씨와 8시간 가량 함께 시간 보냄. J 씨와 광주 다방에서 3시간 조잘조잘, 광주에서 서울집까지 J 씨 데려다주느라 기차 타고, 전철 타고, 걸어서 5시간 정도 조잘조잘, 서울에서 광주로 나 혼자 되돌아오느라 4시간, 엄청 피곤했지만 挺好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