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씨에게 사랑받고 싶어요

기다렸을 텐데

by 초들

J 씨에게도 사랑받고 싶어요.




3월 1일 60주년 3.1절, 섬기는 교회의 초대 장로장립식 날에 이 글을 드립니다.



며칠 사이 변화무쌍한 환절기였는데 건강하고, 하시는 일이 모두 잘되고 있는지요? 그제 J 씨 편지를 받고서 이틀이 지난 후에야 답장을 드리게 되어 매우 죄송합니다. 3.1. 자 초임교사로 발령이 나야 하는데, 발령 나기는커녕, 언제 발령 날지 모르는 몹시 초조한 나날이 시작되고 말았어요. 그래서일까? 마음의 평화가 깨져버려 행동마저 게을러지고 있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저의 개인 사정이지만, J 씨에게 바로 답장 보내지 못한 것은 제 잘못이지요. 기다렸을 텐데.



본격적으로 1979년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삼라만상(森羅萬象) 모두가 꽃피는 춘삼월을 맞이했거든요. 하지만 예외는 언제나 있는 법. 아직도 겨우내 움츠러드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물상(物像)이 있습니다. 浩야, 바로 접니다.



훈훈한 봄기운이 물밀듯이 스며들지만, 저는 초조함과 설렘으로 심히 안타까워하고 있어요. 마음으로는 벌써 푸른 창공 가득 청운만리(靑雲萬里) 이상으로 드높이 비상(飛上) 해야 할 텐데, 실제로는 움트는 지면만을 무감각하게 내려다보고 있게 되네요.



‘浩야’라는 사내! 비록 스스로 만든 함정(陷穽)에 빠져 허우적대지만, 사슴이 목말라 시냇물을 찾듯이, 만선(滿船)의 소망을 품은 체 망망대해(茫茫大海)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J 씨! 현재 살고 있는 셋방에 대한 싫증 때문에 새로운 곳으로 이사할 예정입니다. 주인아저씨의 고약한 성질(?)을 이해하고 살고 싶지만, 동생들이 몹시 힘들어해서 아무래도 이사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삶이 나를 속이는 건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의 사소함에 대한 권태와 짜증이 마침내 환멸(幻滅)로 변해갑니다. 수많은 부조리(不條理)의 연속, 요즘이라면 나는 구태여 문인들의 달콤한 표현에 공감을 갖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나를 J 씨는 어떻게 생각하시렵니까? 현실 자체에 대한 부정과 환멸 속에서 또 현실을 살아야 하는 浩야를...



문득 양면지를 보니, 어느 고궁의 가을 풍경 같군요. 차라리 지금이 가을이라면 노을 지는 석양을 보며 고향을 그리워하며 싶고, 향수(鄕愁)도 진하게 느껴보고 싶습니다.



쓸쓸한 현실은 사람들이 마음대로 활보하는 놀이터. 저는 얼른 놀이터에서 벗어나 소망 주시는 주님께서 기뻐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요. 또, J 씨에게도 사랑받고 싶어요.



당분간 편지하지 마세요. 이사하고 난 후 제가 편지 보낼 때까지.


그럼 며칠 동안 건강하시고 직무에 충실하세요.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길 두 손 모아 빌겠습니다.



1979.02.28. (수) 浩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