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달차 몰고 서울 갈까요?
이제는 너무 가까이 와있는 봄이군요.
햇볕을 받으면서 J 씨 글월 읽기가 민망스럽습니다. 어제쯤 편지 올 줄 알고 기다렸을 J 씨를 생각하고서 몹시 죄송스러운 마음 금할 수 없어서요. 용서하세요. 말만으로 사과하느니 보다 실제 행동으로 과감하게 실천했어야 했는데. 요즈음 제가 좀 게을러졌어요. 느긋해진 마음으로 매사에 임하다 보니, 가장 중요한 일인 J 씨에게 편지 쓰는 걸 소홀히 했어요.
J 씨! 저를 만나면서 많이 변모해 가는 게 아닌가요? 실제 마음을 다 알 수 없지만, 당신의 편지 한 구절, 구절을 음미해 보니 직감적으로 피부에 와닿는 느낌이랍니다. 처음 만날 때부터 자존심(自尊心) 얘기가 많은 편이었어요. 제 소견으로 자존심이란 그렇게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봐요. 자존심을 내세우다가 오히려 손해 보는 경우가 훨씬 많거든요. 사소한 데에서부터 커다란 것까지 자존심 내세울 때, 그 손해는 엄청날 거예요. 때로는 그냥 나 자신을 내동댕이치면서 주도면밀(周到綿密)하게 관찰해 보세요. 되려 더 많은 의미를 가져올지도 몰라요. 사람들은 흔히 나름대로 생각 속에서 자존심을 비약하여 내세우면서 자신을 얽어매는 것 같아요.
고등학생 시절, 어느 여고 여선생님께서 제가 내 생각을 내세워 덤비는 걸 보고, 법정 스님의 ‘무소유(無所有)’라는 책을 읽어 보라고 권하더군요. 하나하나 실상을 소유하려는 건 그것 때문에 더 많은 구속을 당하고 신경 쓰이게 된다는 논리로서,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러 든다고 지적했어요. 따라서 하나하나 버리면서 산다면 그만큼 많은 구속에서 벗어난다는 겁니다. 그리 좋은 화제는 아니지만 한번 음미해 보세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이 2월 13일 수요일 10시 25분이에요. J 씨와 제게 소중한 날이 다가오고 있군요. 16일이 졸업식이라서 몹시 붐빌 겁니다. 예기치 않는 계획이 생길지 몰라요. 현재 저는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고 있습니다. 오직 당신 만날 생각만 하고 있어요. J 씨는 차츰차츰 소중한 나 자신으로 변모해 가고 있거든요. 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이것도 천천히 알게 될지 그냥 내내 수수께끼가 될지 모르겠어요. J 씨를 소유한다든가, 독점하려고 하지 않겠어요. 얼마든지 자유분방하게 지낼 수 있도록 지지할 거예요.
3일 후면 만날 J 씨! 우리 두 사람의 이번 만남은 절실하고 의미심장(意味深長)한 만남이 되길 고대하고 있습니다. 토요일, 저는 밤을 새워가며 J 씨와 정담(情談)을 나누고 싶어요.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아요. 비록 한 시간을 만나더라도 참되고 의미 있는 고귀한 만남을 갖고 싶어요.
오늘의 제 글이 조금이라도 심려를 끼쳤다면 죄송스러울 뿐입니다. 워낙 말주변이 없어서 다정스럽게 위안을 주는 사내가 되지 못해 내심 심히 미안해요.
J 씨는 사랑을 숭고하고 거룩한 4차원의 세계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J 씨 사랑의 세계를 꼭 듣고 싶어요. 험한 세상을 살아가느라 애쓰는 J 씨에게 저는 한없이 연민의 감정을 갖지 않을 수 없어요. 주님께서 도와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제가 J 씨에게 소중한 사람이 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J 씨에게 어떤 대상으로 비추어지는지 알고 싶어요.
참, 20일에 이사하신다고요. 용달차 몰고 서울 갈까요? 흐 말로만요.
만날 때까지 건강하시길 주 예수님께 기도드리겠어요. 이만.
1979.02.13.(수) AM 11:00 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