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을 가리는 억센 빗줄기를 뚫고 암천리로 간다. 누구를 위해서이며, 또 누가 이를 알아주는가? 물방울이 튀어 오른다. 험한 돌길을, 더군다나 빗속을 뚫고서 간다는 게... 하필이면 비옷도 없고, 우산을 받쳐 들 수도 없어 팬티까지 후줄근히 젖었다. 묘한 저주스러움과 저항감이 솟구친다. 직장에 대한 환멸감도 생긴다. 몹시 짜증이 나고 권태(倦怠)스럽다.
답답한 산골 아이들을 본다. 영리한 아이, 착한 아이, 거만한 아이, 우쭐대는 아이도 본다. 아무래도 좋다. 지금은 그들이 내 마음을 달래주고 유일한 위로가 되기에, 구태여 더 이상의 열등감을 갖지 않으리라. 다만 나에게 번민(煩悶)하는 것이다. 하지만 신선한 감정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고개 숙이며 순응(順應)한다는 게 마땅한 표현이리라.
겸손한 직장인, 관용과 아량을 듬뿍 가진 교육자, 그리고 따뜻한 교직 사회라야 할 터인데, 현재 내가 있는 울타리 속에는 보이지 않는 암투(暗鬪)가 있다.
‘전의(戰意)를 상실해 버리고 만다’라는 표현이 있다. 요즘 들어 이 표현에 많은 공감을 가져본다. 하지만 냉정히 자신을 보자. 채찍질하자. 꿋꿋이 나의 할 일을 스스로 찾아 행하자. 좌고우면(左顧右眄) 하지 말고 주님을 위해 살자.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자.
몹시 가고 싶은 광주, SJ가 있는 광주에 못 간다. ‘얼마나 서운한가?’ 전화를 걸었다. “79.6.22.~6.23. 농번기 휴가야”라고. 순간 혹(惑)한 사람이 되었다. 내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모든 사사로움을 선(善)으로 극복하려 했지만 웬걸 손해를 보았다. 그래. 신앙인인 내가 그분들에게 귀감(龜鑑)이 되는 생활을 하자. 나의 소망으로 그치지 않기를 바라면서.
‘사랑은 얼마나 고귀한 감정일까?'
'온통 사랑 속에서 산다면 참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걸까? 사랑의 본연(本然)은 더 높은데, 깊은데 있지 않을까?’ 갖은 상념(想念)에 잠겨본다.
그렇다고 사랑의 비중(比重)을 적게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더 열심히, 철저하게 사랑하고 싶고, 나아가 참 인생의 진가(眞價)도 찾아내고 싶다.
나는 빈 껍데기 SJ를 사랑하지 아니한다. 끈기 있고, 부지런하고, 철저하고, 주관(主觀)이 확고한 SJ를 좋아한다. 즉흥적인 감정의 포로 되어 가장 중요한 걸 망각하는 SJ를 좋아하지 않으련다. 더욱더 가까이 주님 앞에 서는 SJ를 몹시 사랑하고 싶다. 언제든지 모든 것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는 SJ를 사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