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집에 전화가 있고, 전화 감(感)이 좋다면, “여보세요. SJ 씨세요. 네. SJ입니다. 앗. 바로 받았네. 몇 시간 사이 잘 있었니?... 뭐 무사히 도착했다고? 오. 그래. 염려 덕분에 무사히 도착했다.... ”라고 통화했을 텐데. 그럴 수 없어서 지면(紙面)에다 그 마음을 달래 보련다.
SJ야!
지금 문밖에서는 풀벌레 합창 소리가 마구마구 들려. 마루 밑 귀뚜라미, 대추나무 위 여치, 베짱이, 쓰르라미들이 앞다투어 노래한다. 그러든 말든 浩야는 반복된 익숙함이라서 묵묵히 편지 쓰는 일에만 집중하지만.
엊저녁에는 미안해. 잠깐 얼굴만 본다는 게, 시간을 많이 빼앗고 말았어. 촌각을 아껴 공부해야 하는데. 하지만 SJ야! 나는 너를 사랑하기에 좀 더, 좀 더 같이 있고 싶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어. 신경 써야 하는데 말이야.
SJ야!
浩야는 너를 지독히 사랑하지. 그냥 사랑하지 않거든. 그래서 지금 이 시간에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고 오직 네게 편지만 쓰고 싶단다. 편지로는 턱없이 부족하고 아쉽다. 얼른 달려가 널 보고 싶어. 어제 봤는데, 왜 이러지?
하지만 SJ야!
푸르른 미래를 위해 참는 거야. 오늘만 살고 죽는다면, 나는 벌써 네 곁에 있겠지. 浩야는 가난뱅이야. 동생들에게 용돈 1,000원도 주지 못한 가난뱅이란다. 용돈을 주었어야 했거든.
그러나 浩야는 늘 웃고 살려고. 왜냐고? 답은 간단하지. 예수 그리스도와 너에게 미쳐 버렸거든. 두 사람이 나에게 희망을 준다. 나를 웃게 해 준다. 어쩌면 내게서 두 사람을 떼어 낸다면, 나는 이미 시신(屍身)이나 다름없지.
내 천사(天使)야!
현재의 浩야는 물질의 풍요로움을 네게 안겨줄 수 없겠다. 그냥 저 깊은 심혼(心魂)에서 물 밀듯 샘솟아 오르는 참 마음의 사랑을 해줄 수밖에 없단다. 지금은 너무 가난해서 미안해. 부자였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예수님의 풍성한 사랑 속에서 살기에 마음은 한없는 부자야. 신앙을 가진 너와 나는 이미 부자란다.
SJ야!
내가 네가 부지런히 공부해 주길 원해. 우리가 비록 지금은 가난하지만, 열심히 노력하는 우리를 하나님은 도와주실 거야. 그런 믿음으로 미래를 그려본다. 우리들은 마음으로는 사랑과 소망을 쫓아가며 살 수도 있겠지만, 두 발은 엄연히 냉혹한 현실을 밟고 있어야 할 거야.
SJ야!
浩야는 이러한 생각 속에서 살고 있음을 확실히 알아주길 바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의 네가 나에게 가장 소중하다’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