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밀어오는 슬픔을 참을 수가 없답니다. 오늘은 간략하고 의미 있고 깊게 써보겠다고 굳게 다짐합니다.점심시간이라서 조용히 사무실에 앉아 쓰고 있답니다.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즉 구원받지 못할 사람들이 나는 꺼려집니다. 그러나 온통 아가페(agapē) 사랑을 합니다. 세상의 그 누가 무슨 말을 할지라도, 철인이나 위인이 인생이란 뭐가 어떻고…. 나불대는 모든 것은, 진리를 암시하는 것은 너무나도 무자비하고 잔인하다고. 이것은 체험이 아니고서야 깨달을 수 없는 사실입니다.
주님의 형상대로? 인간은 직분과 지혜를 사용합니다. 온통 사랑하는 것은 주님의 사랑 외에는 허위와 가식이 깔려있다는 것을 난 알고 말고요. 다만 사랑이란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으로서 그것임을 미루어 생각합니다. 릴케는 '죽음, 사랑은 아무도 운운할 수 없다고 했으며 죽음은 더욱 모른다고 했고, 사랑은 많은 수업을 통해 젊은이는 체험하라'라고 얘기합니다.
아는 것, 지식을 인간은 배워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이 모든 것은 주님을 향한 부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이해하는 것, 浩兄 씨가 이해하려고 한 것은 나에게 얼마나 다행한 것인지…. 내일 주님을 위해 죽는다 한들 여한이 없어요. 그리고 나는 이해하는 사람을 위해서 나는 내일 죽어도 원이 없다는 겁니다.
이 세상에 주님이 보내신 承弟!
그 모든 죽음에서 살리시길 원하시는 承弟를 당신에게만큼은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나는 뭇사람들처럼 '사랑을 체험한다. 사회를 알기 위해 직장에 다닌다'라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그래서 承弟는 '그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고 평생 사랑할 수 있었으면'하고 지금까지 살고 있었답니다. 초속도, 그야말로 감각적인 이 현실에서 고리타분하게 사랑을 논하는 사람은 누구나 싫어합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사랑과는 전적으로 달라요. 나는. 그렇다고 承弟는 인간이 아니란 것은 아니죠. 극히 인간적입니다. 그리고 감정적이고 인정 많고 영리하고 또한 거만하고 교만하고 뽐내고 으스대고 그렇다고 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사는 동안 나의 생활에 대해서는 그 누구에게도 얘기해 본 적은 없어요. 주님과 만의 생활이었죠.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주님만을 위해 살기로 기도하면서 생활했어요. 나의 그렇게 처절했던 고통도 우리 인간이 한 줌의 흙으로 사라지듯이 눈물 속에 뒤범벅된 承弟의 얼굴은 사람에게는 너무도 평화롭게 보인 미소만을 지었고, 집안을 볼 때는 얼마나 부유했겠는지 그들은 나를 부잣집에서 호강한 딸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약간의 친구들은 내가 대학교를 안 가니까 의아해했어요. 왜? 네가 돈이 없어 못 가느냐고? 그 처절한 슬픔도 참아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나를 이해하는 것은 단지 몇 가지뿐이랍니다.
대학을 못 갔다는 슬픔에서 구원하는 것이요. 가난이란 굴레에서 어떻게 생활해왔는가를 이해하는 것이요. 죄를 지어 고통을 당하는 承弟를 이해하는 거예요.
그리고 고2 때 꽁꽁 얼어붙은 방에서 자야 했던 나와 아침을 굶어 위가 나빠진 나와 심혼이 흔들려 고통받던 영혼을 당신은 이해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아니 나만 이해해 달라고만 하니 이상하군요. 더 많이 사랑해요. 浩兄 씨를. (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