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었단다. 2시 25분 정각에 터미널 도착, 유치 가는 버스를 보고 밖에 나와 너를 보려고 했는데 보이질 않더라. 그 차를 안 탔는지, 또는 숨어 앉았는지 내심 쓸쓸해 혼났지 뭐니? 무거운 발걸음을 걷노라니, 언젠가 걸음걸이도 무식하다는 생각을 되새긴단다. 지금도 그렇게 걷는걸. 네가 보면 또 화가 치밀겠지! 미안해 너를 못 봐서. 허겁지겁 서둘렀지만, 손님은 승차 완료해서 차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단다. 손 흔들어 주려는 생각도 못했어.
아무튼 浩兄아!
잘 갔니? 쉬고 시작하는 생활 따분하지 않니? 기억나지, 주 예수 이름으로 살라는 설교? 말이야. 너를 믿고 살련다. 한없이 포근하고 따뜻한 너의 영혼을 그리고, 너의 처한 육신의 모든 여건과 현재의 너의 인격을 사랑한다. 믿겠지. 나의 마음을.
광주↔유치 간의 많은 시간들, 쓸쓸해도 운명을 받아주고 있는 의연한 浩兄이를 죽도록 사랑하고 있단다. 지금은 많은 번민 속에 빠져가고 만단다.
浩兄이 눈에 나는 왜 그렇게 보이게 했는지. 비 지성인, 야만성, 비 교양인, 여자답지 못하고 촐랑대는 것 등…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단다. 몹시도 열등감을 갖게 하는 것들이니까. 하지만 참을 수 있어, 사랑으로…. 그래. 너를 사랑한 이상, 그런 것들은 작은 들러리니까.
오늘은 서울에서 언니. 오빠. 수련이 왔구나. 시골 사촌 결혼 때문인가 봐. 집만 비우고 교회 간다고 한방 맞았지. 아찔해지더구나. 참을 수 있지. 이런 것도. 정신없어 너를 쫓아다니다가 이런 일이 있지만, 난 정에 약한 게 아니란다.
절실한 보고픔이 나를 너에게 보낸단다.
감정의 포로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그럼 혼내줄 테다.
내일은 입학식!
이러한 기쁨도 너에게 주고 싶구나.
날 사랑하니?
너를 몹시도 귀찮게 구는 대도 말이야. 이처럼 끔찍하게 영원히 사랑하겠니?
쓸쓸한 가슴을 메워야지. 학교생활로.
토요일 날 기다리자.
주일(主日)은 우리의 시간은 아니구나.
성가대는 없애 버렸는지? 상관없이 노래는 계속해야지. 부활절 때문에.
보고 싶구나.
내가 어떻게 하면 널 기쁘게 하겠니?
열심히 공부하는 거지? ….
<망상> "浩兄아! 너는 너의 영혼 속에 사랑하는 여인상은 따로 없니? 이를테면 나는 환경과 현실이 사랑하게 만든 것뿐이고, 저 깊은 세계 속의 또 하나의 사랑은 희생되고 있니? 말해봐. 넌 나 몰래 딴 영혼을 사랑하지. 실체가 없더라도 말이야? 비참해진 생각이 든다. 나만을 사랑할 수 없겠니? 浩兄아!”
안녕.
나의 浩兄아! 잘 먹고 건강해야지.
머리 아프다 쓰러지지 말고….
1980.03.02.(추정) 承第가
* 이 편지글은 4화 '와! 합격했어요' 다음 편지글로 추정됩니다.45년 전 편지로 쓴 날짜가 없어 혼동스럽지만, 편지 내용을 읽으며 날짜를 추정했습니다. 독자 여러분에게 사과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