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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들 Jul 18. 2024

나는 정말 이렇게 너를 사랑하는데

서로 사랑하는 애처로운 마음으로 살자꾸나

<이제 남은 편지는 3편 입니다>



회의를 가져다준 浩兄아! 


   

피곤한 몸, 배고픈 몸을 이끌고 산길을 잘 갔느냐?      


다정스러운 말, 한 마디 못하고 헤어져야만 하는 우리 사이에서 슬픈 상념(想念)만 충만되어 수많은 얼굴들이 아롱져 보였지만, 이성을 회복하며 양동에 갔다. 보고 싶고 사랑스러운 부모형제들이지만, 어쩐지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뿐이어서 그곳에 가는 동안의 내 마음 역시 기쁨만은 아니었어.

     

지금까지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교회 문턱을 나오는 순간에서 휑하니 지나가는 버스 때까지….

          


浩兄, 미안하지만 이런 생각을 했단다.

어젯밤은 동생과 합자하며 꾸중을 하여 어둠 속의 동산에서 울게 만들고, 오늘은 너의 사랑마저 의심케 할 정도로 냉혹한 마음과 행동과 표정. 너와 나의 관계를 재고(再考)해 봤단다. 진정 이제까지 키우고 꿈꾸어온 사랑의 결정(結晶)이 이런 것일까? 사람들이 쉽게 말한 보편적인 여자의 길은 이렇게 사랑이 없고 불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건가? 예수님의 사랑을 지닌 성도의 사랑이 이렇게 얕아 보일까? 평범한 인간들의 사랑도 행복에 겨워 미소 짓는데, 차원 높은 사랑! 순애보! 허울 좋은 낱말은 나에게 요구하는 사랑이지 결코 浩兄이가 추구하는, 아니 실천하고 행하는 모든 사랑은 될 수 없는 것 같더군. 이제까지 살면서 슬프고, 외롭고 피곤한 영혼을 주님의 사랑으로, 예수님의 품성으로 이기고 인내해 왔지만, 나에게 되돌려주는 것은 누구든지 하나같이 화살뿐이었어.


           

浩兄아!     


어느 쪽이든 나는 상관없어. 나는 믿음으로 이 모든 것에서 평화롭고 자유로운 자이니까 말이야.

   

너는 나를 네 몸 같이 사랑하는지 생각해 봐라. 나를 만날 때 기다리면서 초조하고, 짜릿한 순간이 계속 변하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지를 생각해 봐라. 습관적으로 몸에 밴 사랑의 쌓였던 사랑의 표현 외엔 쌓였던 얘기마저 하지 않고 따로따로 헤매고 마는 것을 봤을 때, 네가 광주에 오게 한 ‘내가 미쳤지’하고 생각했단다. 피곤에 멍이 들고 신경질에 다 늙어간 浩兄이를 생각하면 내 생각, 나의 이상, 나의 인생을 다 모아서 너에게 투사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순간순간 너무나 마음을 상하게 하고만 수많은 나날 때문에 내 가슴이 멍이 들고 있단다.  


주님께 너와 나의 운명을 되묻고 싶단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애초에 혼자 태어난 몸일 수밖에, 대학에 보내주신 하나님께서 졸업도 시키겠지. 나의 처지 때문에 임기응변식으로 대처한 것이 이제는 아름다움보다 미운 기억으로 남게 되고 만 것 같구나.


나도 졸업반이라서 시간이 금(金) 같은 때이고, 학교 시절이 마지막인데, 아웅다웅 싸우고 다투는 게 싫어. 평안하고, 조금은 편하게 1년 동안 다닐 수 있는 건데, 어떠한 어려움도 참아내자는 성격 때문에, 두 집안에서 내 처지가 더욱더 불편하게 되었구나. 나를 사랑한다면 자유롭게 살게 해 주고, 고생은 시키지 않을 거야.

    

우리 집에서는 ‘네 맘대로 왔다 갔다 잘한다' 할 거야. 하지만 내 부모‧형제의 꾸중은 들어도 살만하니 제발 집에서 돈 타고 학교 다니고 싶다. 그러면 너와의 차디차고 미지근한 사랑도 식든지 덮든지 하겠지. 나를 영원히 사랑하려거든, 너의 그런 사고방식을 버려야 한다. 나를 대하는 마음이 지금과는 전연 달라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주고받은 사랑보다 달콤하지 못한 우리 사이가 아닌지? 나 혼자만 항상 뜨겁게 사랑하고 있지, 너의 마음은 막연한 관념(觀念)뿐이야. 그렇지 않는다고 반문할지 모르겠군.


         

浩兄아!   

   

당돌하게 끄집어내기만 하니 미안하다. 이제는 너에게 말 내리고 편지 쓰기가 어색해졌어. 너에게 절대적 존칭어를 쓰고 싶지만, 시간도 절약 겸 그냥 쓰고 만다. 너의 환경은 너에게 정말 불필요한 거다. 그것은 제거되고 말아야 돼. 믿고 감사하며, 기도하고 전도하고 묵상하며 소망을 가질 때 우린 진정한 사랑을 동감할 수 있을 거야.

     

새벽 5시이다. 밥을 안쳐 놓고 다시 쓰겠다. 어젯밤 즉석 편지를 많이 썼지만, 나 혼자 이렇게 있노라면 보고 싶은 호형인데, 괜히 기분 별로 이게 편지를 쓴 것 같아. 미안하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에 서로 이런 것일 거야. ‘태양은 가득히’ ♪~~ 흐른다. 이런 음악 속에서 살던 학창 시절이 지금보다 평화스러웠을 것 같구나. 浩야! 그때를 생각하면서 다소 짜증과 피로가 겹칠지라도 참아보자. 서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구태여 짜증을 내어 ‘사랑하니까’ 그런다는 그런 말 서로 쓰지 말자. 응. 浩兄아! 나는 정말 이렇게 너를 사랑하는데, 넌 왜 화만 내고 슬쩍 가버리고 말까? ‘사랑은 모든 걸 감싸 주고…’ 노래처럼 서로 사랑하는 애처로운 마음으로 살자꾸나.  


        

浩兄아!


그리고 너의 봉급 용돈 중에서 4~5만 원을 내가 다 쓰고 말았어. 미안하다. 우리 집에서 다니면 그렇게 내가 너의 돈을 소비하지 않아도 되겠지. 부모님 마음도 편하시겠고, 동생을 살기도 한결 가벼워지겠지. 괜히 여러 사람 고생시키지 말아라. 잘 생각하여 현명하게 처리하자.

    

오빠에게 사정 얘기를 다해야겠다. 엄마는 와서 사라고 하셨어. 정양도 이제 없으니까, 편하게 졸업할 것인데. 지 맘대로 가더니 이제 온다고 웃으셨어. 서로를 위해 좋을 것 같아.   

  

5월 2일 만나자. 일찍 와서 기다리마. 빨리 와라. 그럼 안녕히 잘 있어라. 그동안 학교 잘 다니겠다.


Good bye, My Sun!  

        

1981.04.26.~04.27.(일~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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