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99세이신 장모님께서 나를 기억해 주셨다. 몇 년 전부터 순간순간 잊어버리는 기억 때문에 놀라기도 했지만, 기억해 주니 감사하다.
그런데 장모님께서는 화장실 문턱에 걸려 넘어졌다며 끙끙 앓고 계셨다. 평소 컨디션 좋을 때에는 반갑게 맞이해 주셨는데, 오늘은 몹시 아파하며 일그러진 얼굴에 짜증이 가득했다. 딸(아내)이 다리 부위를 마사지해 준다고 만지니 자지러지셨다.
나는 얼른 약국에 가서 파스를 사 왔다.
'아차, 근육 이완제까지 사야 하는데...' 아내에게 여지없이 한 소리 들었다.
요양 보호사님이 오셨다. 장모님 상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자주 이용한 병원에 들러 근육 이완제 처방전을 받게 해 주셨다. 보호사님께서는 "더 이상 장모님 돌보기 힘드시다."라며 그간의 어려움을 토로하셨다. 씁쓸했지만 당연한 수순인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해졌다.
화장실 가고 싶다는 장모님을 부축해 드렸다. 고통으로 일그러지고 신음 소리 내시는 장모님 때문에 내 마음 한없이 초조해졌다. "힘 빼고 온통 사위에게 몸을 의지하세요"라며 큰 소리로 말했다. 장모님께서 화장실 변기 위에 앉기까지의 과정은 악전고투(惡戰苦鬪) 전쟁이었다. 화장실 문을 닫으니 아내의 타박소리가 들렸다.
장모님께서는 밥 반공기, 미역국, 콩나물 무침, 찐 조기, 시금치나물을 맛있게 드셨다. 딸이 지어준 음식이 맛있었나 보다.
"눕지 말고 앉아 계세요."
장모님께서는 사위의 말을 잘 들었다. 얼마후 처방약을 드시게 하고 장모님을 자리에 눕혀 드렸다. 부르르 떠시던 장모님께서는 서서히 열이 내리면서 몸의 컨디션을 회복하셨다.
새벽 5시 18분!
아내가 나를 깨웠다. 장모님께서 화장실 바닥에 앉아 계신다고 했다. 장모님을 부축해서 변기 위에 앉혀드렸다. 화장실까지 기어가셨지만 끝내 변기에 앉지 못한 장모님께 죄송스러웠다. 그래도 어제보다 고통을 덜 느끼시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변해가는 장모님에게서 많은 것을 느낀다. 젊은 날의 장모님을 잊을 수 없다. 만날 때마다 온화하고 다정스럽고, 늘 끼니를 챙겨주신 고마운 분이셨다. 장모님의 훌륭한 성품이 나와 아내와의 인연으로 이끌어 주셨다. 당연했다. 늘 감사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