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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사랑이 거봉 Jul 19. 2024

오사카 여행길

느긋하게 떠나리라

어젯밤에 일찍 잠들었다가 새벽에 잠이 깨었다. 2시간 동안이나 눈이 말똥말똥해서 잠을 못 이루다 5시 넘어 간신히 눈을 붙였다. 꿈을 꾸었다.


꿈은 이러하다. 하늘에 비행기 3대가 날고 있는데 비행기에서 스파이더맨처럼 거미줄을 내려보낸다. 손가락이 줄에 묶여서 하나씩 떼어내고 나니 눈앞에 검색하는 사람이 서있고 내 몸을 수색한다. 수색대를 벗어나서 간신히 몸을 이동하며 눈을 떴는데 7시다. 생생하다.


오늘은 모처럼 오사카에 출국하는 날이라 트렁크를 펼쳐놓고 짐을 싸는데 카톡이 온다. 항공기 탑승구 변경 안내문이다. 저가항공사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려니 하고 가볍게 넘겨버린다.


아내는 오늘도 냉전 중인 아들의 아침 식사를 챙겨주지 않았다.

아들의 소비욕을 지적하며 목하 대치중이다.


다음 달에 분가하면 곁에서 자제하는 사람도 없을 텐데, 선블록이나 스킨로션 등 남성화장품 수집, 셔츠나 바지등의 쇼핑벽이 더 활발해질 것을 우려해서 한소리 했나 보다.


내성적인 아들은 말없이 눈치만 본다.

'내돈내산이 무에 잘못이람!' 얼굴에 써져 있다.


일찌감치 아침을 먹고 여행길에 나선. 공항버스를 타러 정류장에 가야 하는데 아내에게 태워 달라고 요청해 본다.

아내는 가까운 역까지만 태워줄 테니 거기서부터 전철 타고 가면 어떠냐고 제의를 하지만, 당신에게 사랑이 남아 있다면 나를 바래다주는 것이 예의 아니겠느냐며 슬쩍 감정선을 건든다.

살짝 애교 있게 투덜거리긴 하지만 아내는 핸들을 잡고 나를 태워다 준다.


오늘 트렁크는 생각보다 무겁진 않다. 2박 3일 짧은 일정이지만 일본에 있는 딸을 위해서 간단하게 조리한 밑반찬과, 친구의 심부름으로 만나게 될 예전 다니던 회사의 터키 지사장에게 건넬 잔멸치 1kg.

그 외에는 간단한 옷가지와 세면도구뿐이다.


이번 오사카 여행 목적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작년에 타계한 회장님의 추모 모임이다.


해마다 이전 회사의 아시아 사장단 미팅이 7월 중순에 있었다. 올해도 상반기를 마감하는 회의가 오사카에서 개최되므로 거기에 참석하는 사장단들과 함께 작고한 회장님의 과거를 회상하며 같이 식사하고 환담을 나눌 자리를 갖기로 했다.


두 번째는 비즈니스와 연계하여 중국계 일본인을 만나는 것이다.


중국에 주재했을 때 회장님을 모시고 장가계(張家界)에 간 적이 있었는데 당시 아시아사업부 중국실에 근무하던 중국계 일본인 의사가 우리 둘을 친절히 가이드해 주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시작한 반려동물 사업의 일본 파트너 회사에 이 사람이 관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사람도 파트너사를 통해 내가 한국에서 애완동물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서 나를 만나고 싶어 했다는 전언을 두 번이나 들었기에, 이번에 시간이 되면 한번 보고 싶었다.

마침 바뀐 명함을 보니 오사카 쪽에 거주하고 있기에 이메일로 연락했더니 기꺼이 시간을 내주겠다고 하였다.


오랜만에 만날 반가움과 과거의 고마움, 그리고 같이 회장님을 추모하면서 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시간이 맞으면 우리 딸도 같이 해후하여 인사도 시키고 일본 생활에 도움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빠졌는데 어느덧 분당의 공항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였다.

버스는 한산하였고 정해진 시간에 맞춰 인천공항 제2 터미널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도중에 카톡을 확인해 보니 탑승구 출구가 변경되었다는 메시지 아래에 항공사 사정으로 2시간이나 탑승이 지연된다는 내용이 왔다.


아니 이게 무슨 이야기야!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렇게 되면 모든 일정이 딜레이 되고 나 혼자로 인해서 오늘 저녁 식사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을까? 일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는 않을까?라는 우려가 생겼다.


그리고 6시 전에 호텔에서 만나기로 한 터키 지사장에게 다시 연락을 취하여 만나는 시간을 변경해야만 했다.


1시 20분 출발 비행기가 320분으로 지연되기 때문에 오사카 공항에 도착하는 것은 빨라야 510분. 입국 수속을 마치고 고속철도를 타게 되면 6시 반을 넘길 것이다. 그러면 7 반을 넘어서야 호텔에 도착할 것으로 보인다.


집합 장소에서 6시에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최소한 2시간은 늦어질 것으로 판단되었다.

갑자기 꿈이 떠올랐다. 손가락이 묶이더니 발도 묶이는구나...


나는 부리나케 오늘 만나기로 한 멤버들에게 비행기 지연사실과 함께, 내가 늦어지면 먼저 모임을 시작할 것을 제안하였고, 터키 지사장에게는 늦어진다는 사정을 연락해 두었다. 


공항 터미널에는 휴가철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로 붐볐는데 얼른 탑승 수속을 마쳤지만 항공사에서는 왜 지연되었는지에 대한 해명과 미안하다는 사과도 없었다. 

두 번 다시 이 항공사는 이용하지 않으리라...


핸드폰 해외로밍을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요즘 나의 버릇 중에 하나는 버스나 전철을 타거나 어떤 장소에 갔을 때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많은지 적은 지를 확인하는 이상한 습관이 생겼다.


공항을 둘러보니 나보다 나이 많아 보이는 사람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이제 공항의 주인공도 바뀐 것일까?

과거에 출장 다닐 때는 내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고 있었다.

 당시 평일 공항은 가방을 든 비즈니스맨들로 붐볐고, 나는 여행 떠나는 사람들을 오히려 한심하게 쳐다보곤 했었다.


아니, 일을 해야지 놀러 가다니 이게 무슨 일이야? 이런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이제는 여행 는 사람이 부러워 보이고 아직도 이 나이에 일을 하고 있다니, 하는 한심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머리가 허연 아저씨를 바라보며, 저분은 어떤 장인이라 아직도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가? 아직도 일하는 옷차림으로 해외로 나가는가? 부럽다는 생각도 해봤다.


어찌 됐든 탑승기는 예정보다 두 시간이나 늦어졌기 때문에 나에게는 여유 있는 시간이 생기게 되었다. 이 여유 있는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하다 평상시 밀린 글쓰기를 더 해보자는 생각도 들었고, 업무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 한결 발걸음을 천천히 내딛게 되었고 일부러 대기 줄에서도 서두르지 않았다. 내 앞에 사람들이 많이 밀려 있어도 내 순서가 되어 나가면 그만이지 하는 느긋한 맘이 들어, 사람은 참 간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성격에도 장단점이 있지만 특히 장점이라고 하는 것은 변화에 바로 적응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상황이 나에게 불리하게 바뀌었을 때에는 곧바로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꿔버린다는 것이다.


즉 항공편이 늦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후 주어진 상황에서는 자신을 바로잡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면 될 일인 것이다.


사람은 자기 힘으로 바꿀 수 있는 일도 있지만 역부족인 일도 많이 발생한다. 그런 상황에서는 얼른 현실에 적응하여 최선을 다하고 본인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면 그만인 것이다.


우리나라 출국 시스템은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잘 훈련된 젊은 직원들이 흐름을 봐가면서 척척 진행시킨다.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공항직원인 딸 친구를 생각하며 며느리감으로 손색이 없으리라,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가벼운 마음으로 출국 심사를 마치고 라운지를 찾았다. 저가 항공사의 일반석을 끊었기에 항공사 라운지를 이용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도 우리가 사용하는 신용카드를 활용하면 공항에서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어요,라는 아내의 감사한 조언을 기억해 내고 카드 회사와 연계되어 운영하는 라운지를 찾아내었다.


마침 점심시간이었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점심을 먹고 이 글을 쓰고 있다.

기왕에 이렇게 된 거 뭐가 급하리오?

서두를 일도 아니고 느긋하게 다녀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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