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식탁에 앉았다. 늘 그렇듯 아내가 차려준 따뜻한 밥상 대신, 두유와 과일 몇 가지로 한 끼를 때웠다. 분명히 배는 찼는데, 마음 한구석은 텅 빈 듯했다. 아내가 해외에 사는 딸을 만나러 떠난 지 이제 일주일이 지났지만, 집안 곳곳엔 그녀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아내가 있던 자리엔 향긋한 체취가 스며 있고, 부엌에서 묵묵히 설거지를 하던 그녀의 손길이 어른거린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창밖을 바라본다. 겨울이 오기 직전, 예쁜 이파리를 벗어던진 앙상한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내 마음과 닮아 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면 괜히 마음이 설렌다. 혹여 아내가 깜짝 방문이라도 할까, 그 문을 열고 들어오며 "나 왔어요"라고 할 것만 같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바람은 지나가고, 적막만이 남을 뿐이다.
딸을 만나러 떠난 아내는 사진을 보내올 때마다 즐거워 보였다. "딸과 같이 먹는 밥이 너무 맛있어. 걱정하지 말고 당신도 잘 먹어." 그런 사진 뒤로 그녀의 웃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한편으론 안심이 되지만, 다른 한편으론 문득 외로움이 가슴을 파고든다. 가족을 위해 평생을 살던 그녀가 비로소 '자신의 시간'을 보내는 것인데, 내가 왜 이렇게 쓸쓸한지 모르겠다.
거실 소파에 앉아 잠시 눈을 감았다. 아내의 빈자리가 만든 공간은 단순히 물리적인 것이 아니다. 그녀와 나눈 대화, 함께 보낸 시간이 모두 스며 있는 그 빈자리는 나의 일상 속에 커다란 공백을 남긴다.
밤이 깊어질수록 그리움은 더욱 깊어진다. 아내가 떠나기 전, 커다란 여행 가방을 꾸리며 설레던 모습을 떠올린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내심 서운함을 느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내가 필요로 했던 것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쉼이었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주말에는 된장찌개를 끓여볼까 한다. 레시피를 찾아보며 그녀가 늘 말하던 "된장은 너무 많이 넣지 말라"는 잔소리가 그리워질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돌아왔을 때, 내가 해준 음식 이야기를 하며 웃을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니 이 고요함도 조금은 덜 외로워지는 것 같다.
아내의 빈자리에 부는 바람은 차갑지만, 그 바람 속엔 그녀가 남긴 따뜻한 흔적이 묻어 있다. 그 흔적을 따라 오늘도 나는 하루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