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에 대한 인식에 대하여
예전에 직장 생활을 할 때, 내가 근무했던 곳은 글로벌 제약기업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판촉 자료를 굉장히 많이 제작하고 있었다. 팸플릿에 들어가는 다양한 도표나 그림 등은 이미 발표된 자료를 가져다 붙이는 일이 다반사였고, 저작권에 대한 인식도 지금처럼 엄격하지 않았다.
의사들끼리 모여 학술발표를 하는 추계소화기학회에 참석했을 때, 전시장에서 경쟁사의 팸플릿을 보게 되었는데, 본사와 협력하여 내가 직접 창작했던 저작물이 도용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도 한국의 유명 제약회사가 그런 일을 저지르고 있었다. 나는 즉시 항의했지만, 그쪽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그 무렵, 본사에서는 ‘제품정보위원회’라는 조직을 신설했고, 그 이후부터 모든 홍보자료는 사전 심의를 거치도록 규정되었다. 내부에서 만든 자료뿐만 아니라 외부 연구자들의 자료를 사용할 때는 특히 엄격했다. 외부 자료는 반드시 원저자인 연구자의 직접적인 허락을 받아야 했고, 여러 단계의 승인 절차와 증빙 서류, 그리고 사용료 지급이 요구되었다.
본사는 글로벌 기업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자료는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도 사용되었다. 일본 본사에서는 자료 사용에 대해 철저히 검열했지만, 아시아 각국은 자국의 규정과 지침서(IFPMA: 세계제약연맹 등)를 기준으로 자료를 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을 들여다보면, 외국 연구자의 발표 자료를 무단으로 인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오히려 동남아시아보다 앞서 있다고 자부하던 한국조차 저작권에 대한 제재 없이 자료를 사용하고 있었다.
회사 입장에서는 마케팅과 학술적인 목적을 위해, 임상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 자료를 활용하여 의사 간 정보 전달의 매개체로 사용하고자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연구 결과를 발표한 연구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단순히 "연구비를 지원했으니 사용할 수 있다"는 막연한 인식 아래 자료가 가공되었다. 한국의 상황이 이럴진대, 아시아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이에 본사는 아시아 지역의 제품정보 관리 강화를 위해, 한국에 아시아 통합기구인 '제품정보위원회'를 만들라고 지시했고, 당시 아시아의 중심지 역할을 하던 한국 사무소는 각국 상황을 조사하며 신속히 조직 구성을 추진했다. 각국 사장들에게 협력을 요청하여 자국 내 제품정보위원회를 설치하게 했고, 위원회에는 영업 및 마케팅 부서를 제외한 학술, 약무, 정부 및 업계 규정 담당자들이 포함되었다.
이 위원회는 마케팅과 영업 부서에서 제작하고자 하는 자료를 사전 심의했고, 문제점이 발견되면 수정을 거쳐야만 최종 사용이 가능했다. 초반에는 마케팅 부서의 반발도 있었지만, 점차 저작물의 가치와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조직 내에 확산되기 시작했다.
특히, 제품의 원개발국인 일본에서 제공된 원천 정보를 사용하는 경우, 반드시 우리 위원회를 통해 본사의 허락을 받도록 절차를 명확히 했다.
제약업계에서는 의사들이 연구자로 참여하는 임상 연구가 많았고, 환자 정보와 연구자의 창작물이 포함되어 있어 더욱 저작권 보호가 중요했다. 기업은 이를 활용해 매출을 올리고자 했지만, 원저자의 권리와 약물 개발국의 정보 보호 또한 반드시 고려되어야 했다.
최근에는 또 다른 사례가 있었다. 본사에서 만든 음료 제품의 CM송을 계열사에서 가사를 바꾸어 사용하고자 했지만, 본사는 원곡이 미국에 저작권이 있는 곡이기 때문에 반드시 미국 측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통보했다. 같은 일본 내 계열사 간이라도 저작권에 대한 규제가 있었던 것이다.
웹이나 인터넷상에서 사용하는 것이라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여전했지만, 이 사례를 통해 일본에서도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프로 스포츠의 응원가, 음원 등에 대한 저작권 문제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나 역시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면서 인용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논문처럼 참고문헌을 명시하는 글이라면 문제가 없지만, 수필 같은 글에서 나태주 시인의 시를 인용하는 경우,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있다.
수필에서도 저작권이 관여될 수 있다는 점에서, 나 자신도 더 많은 확인과 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누군가가 처음으로 창조한 무형의 가치에 대해 권리를 존중해 주는 것이 마땅하며, 그것을 사용할 때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옳다.
이번 CM송 사건이나 과거 제품정보위원회에서의 경험을 돌아보며, 저작권의 중요성과 그 가치에 대해 다시금 깊이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