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철학: 낮은 곳에서 시작되는 지혜
제주도 엉또폭포에서 폭우가 지난 후의 폭포수를 보았다.
폭포수가 흘러 바위틈을 비집고 흐르는 계곡, 무너진 듯 다시 흘러가는 물길.
그 장면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비슷한 장면은 쇠소깍에서도 있었다.
폭포수가 강줄기를 이루고 너른 제주 바다로 흘러나갔다
그때 노자의 '도덕경'이 조용히 속삭였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른다.
그러나 가장 높은 진리를 품는다.
무엇도 밀어내지 않고, 누구와도 다투지 않으며, 스스로 길이 되어 흐른다.
때로는 우회하고, 때로는 멈추지만, 끝내 바다로 간다.
그 유연하고도 강인한 흐름은 도(道)의 본질과 다르지 않다.
현대는 ‘속도’와 ‘성과’의 이름 아래,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고 있다.
우리는 위로 오르기 위해 몸부림치고, 더 앞서기 위해 자신을 몰아세운다.
하지만 자연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유지한다.
나무는 옆 나무보다 더 크게 자라려 하지 않고,
강물은 산을 밀어내지 않는다.
구름은 누가 더 커졌는지 다투지 않는다.
그저 주어진 자리를 살아갈 뿐이다.
노자는 말했다.
“물이야말로 도와 가장 가까운 존재”라고.
그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스스로 그러한 삶, 무위자연의 철학이 바로 그 안에 있다.
우리 삶도 물처럼 흐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억지로 이루기보다 순리대로 이루어지고,
다투기보다 감싸며,
높아지기보다 낮아짐으로써 세상을 이롭게 한다면 말이다.
물은 말이 없다.
그러나 늘 길을 만든다.
소리 없이 산을 깎고, 바위를 가르고, 결국 세상을 적신다.
문명은 높이 쌓아 올린 탑이지만,
지혜는 낮게 흐르는 물에서 시작된다.
자연과 함께 숨 쉬는 삶, 그것이 도에 가까운 삶 아닐까.
오늘도 나는 물처럼 살기를 배운다.
물에는 조용히, 그러나 반드시 흘러가는 길이 있다.
낮은 곳에서 시작되는 지혜가 있다.
물이 말하는 삶은 자연스러운 흐름의 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