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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병

주연에서 조연으로

by 글사랑이 조동표

왕자병이라는 말, 사실 좀 우습게 들릴지도 모른다. 흔히 청소년기 남자아이들에게나 붙는 유치한 꼬리표쯤으로 여겨지니까. 하지만 나에겐 이 말이 꽤 오래, 그리고 꽤 깊게 각인되어 있다.


나르시시즘(Narcissism)에 빠진 자기애성이 강한 왕자병 환자 Narcissist.

적당한 자존감은 인격을 높이지만 과도한 자기애는 타인의 심리적 불편함을 유발한다.


스스로를 돌아볼 때마다, 나이 예순을 넘긴 지금도 왕자병이 아직 내 안에 살아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중심이 되고 싶은 마음, 누군가의 칭찬에 쉽게 들뜨는 마음, 조금은 과하게 나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 이런 감정의 뿌리를 더듬어 올라가 보면 어린 시절의 기억과 마주하게 된다.


장남으로 태어나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고, "잘한다", "똑똑하다"는 말들 속에 자라났다. 칭찬은 자양분이 되어 자존감을 키웠지만, 동시에 그 맛에 중독되기도 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점점 ‘드러내고 싶다’는 욕망으로 바뀌었고, 남보다 조금이라도 돋보이려는 마음이 자연스러워졌다.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는 이유도 어쩌면 그 연장선일지 모른다. 물론 나눔의 기쁨도 있다. 내가 보고 느낀 것을 글로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내 글에 '좋아요'가 붙고, 누군가가 감동했다는 댓글을 달 때, 들뜨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왕자병의 가장 큰 단점은 아마도 '내가 중심이어야 한다'는 착각 아닐까. 가진 것이 50인데 70쯤 되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 하고,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며 자꾸만 무대 중앙으로 걸어 들어가는 나. 이런 모습이 어쩌면 과대망상과도 가까운, 작은 정신적 질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 관심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노력이 되고, 그 노력이 성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다만, 그것이 욕심을 넘어 과시가 되고, 타인을 무시하는 태도로 이어진다면 그건 분명 경계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요즘은 달라지려 노력한다. 무대 위 화려한 주인공이 아니라, 무대를 조명해 주는 조연으로, 혹은 무대를 설계하는 연출자로 살아보는 건 어떨까. 관중석의 구석에 앉아, 조용히 박수를 보내며 흐뭇하게 웃는 그런 삶.


대학에 다니는 젊은 학생들을 볼 때마다 이제는 그들이 무대의 주연이 되기를 바라고, 나는 멘토링을 통해 연출자가 되곤 한다.


왕자병을 완전히 없애긴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왕자병과 손잡고, 그를 길들이며 함께 가는 삶은 가능하지 않을까. 그 마음마저도 내 일부로 인정하고 품어내는 것, 그것이 나이 든 지금의 지혜일지도 모른다.


혹시 당신은, 아직도 공주병이나 왕자병을 품고 살고 있진 않은가요?

그렇다면 괜찮습니다. 우리, 함께 천천히 내려놓아 봅시다.


- 작가의 말


어느 날 문득, ‘아직도 나한테 왕자병이 남아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그 질문을 따라가 보니, 제 안에 자리 잡은 자존심, 표현욕, 인정욕이 보였습니다. 때론 부끄럽고 때론 웃기기도 한 이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었습니다. 당신 안에도 비슷한 마음이 있다면, 이 글을 통해 위로와 유쾌함을 함께 나누었으면 합니다.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마음, 이제는 조연의 자리에서 빛나고 싶습니다.”


“누구보다 빛나고 싶었던 나, 이제는 빛을 비추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왕관을 쓰고 싶었던 소년이, 이제는 고개를 숙이는 겸손을 배웁니다.”



*이미지: 네이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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