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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과 일본을 다시 생각하며

극일(克日)은 무엇인가

by 글사랑이 조동표

광복절이 되면 늘 일본이라는 나라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매년 일본 총리가 하는 발언 속에 ‘반성’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는지, 과거 침략에 대한 사과가 담겨 있는지를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그러나 독일과는 달리 일본 정부로부터 진정한 참회와 사죄의 말을 듣기는 참으로 어렵다. 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 역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반복해서 우리 사회의 이슈로 등장한다.


올해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패전일 추도식에서 13년 만에 ‘반성’을 언급했지만, 누구에게 무엇을 반성하는지조차 불분명했고 진정한 사과도 없었다. 그와 동시에 일부 정치인들은 여전히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며 전범을 기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모습은 과거사를 직시하지 못하는 일본 정치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일본이라는 나라를 단순히 ‘가해자’라는 시각에서만 바라보는 것도 한계가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일본 기업에서 36년간 근무하며 수많은 일본인들과 교류할 기회를 가졌다. 그 과정에서 느낀 일본인은 교활하고 잔인하다는 어린 시절의 고정관념과는 달랐다. 오히려 따뜻하고 친절하며, 나를 배려해 주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과 함께 식사하며 대화를 나눌 때면 인간적으로는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러나 일본인들에게 과거를 물으면, 의외로 많은 이들이 제대로 알지 못했다. 교과서에서 근현대사 교육이 매우 간략하게 다루어지고, 학교마다 다른 교재를 쓰다 보니 역사 인식에 큰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한국과 아시아 침략, 전쟁 범죄와 같은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거나 반성하는 일본인을 만나는 일은 드물었다. 심지어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하며, 이토 히로부미를 영웅으로 기억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처럼 일본인 개개인은 친절할 수 있지만, 역사 문제에 있어서는 여전히 자기 나라 중심의 세계관에 머물러 있다. 일본이 아시아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드러내거나, 한국은 일본과 손발을 맞추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누구나 자기 나라를 사랑하기 마련이지만, 우리와의 역사적 인식 차이는 여전히 크다.


돌이켜보면, 1980년대에 내가 일본 기업에 들어간 것도 아이러니였다. 당시 한국 사회는 일본을 비난하면서도, 물건은 일본 제품을 선호했다. 말과 행동이 다른 모습 속에서 나는 혼란을 느꼈고, 일본을 제대로 알아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본어를 열심히 배우고, 그 사회 속에서 살며 많은 친구와 동료를 만난 것은 나에게 큰 자산이었다.


오늘날 한국은 경제적으로 일본을 많이 따라잡았고, 어떤 분야에서는 앞서 나가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정신적으로도 그만큼 성숙해졌는지는 의문이다. 일본이 과거에 대해 진정한 사죄를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우리 역시 과거에만 매여서는 안 된다. 광복 80년을 맞이한 지금, 역사에 대한 분명한 기억과 균형 잡힌 시각을 바탕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진정한 극일(克日)은 단순히 일본을 비난하는 데 있지 않다. 일본을 올바로 이해하고, 필요한 부분은 인정하며, 잘못된 부분은 단호히 지적하는 태도야말로 극일의 시작이다. 서로가 과거를 직시하고, 양보할 것은 양보하며, 함께 나아가는 길을 찾을 때 비로소 성숙한 한일 관계가 가능할 것이다.



*이미지: 네이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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