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미아 1장 3화

30평의 사무실

by 글사랑이 조동표

강남역 미아 1장 3화

- 30평의 사무실


그는 오래전부터 어딘가 어긋나 있다는 느낌을 안고 살아왔다.

선택의 순간마다 스스로 결정했다고 믿었지만, 돌아보면 그는 늘 이미 정해진 방향으로 밀려가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진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학교는 조용히 숫자를 계산했고, 문과와 이과는 성적표 위에서 갈라졌다.

문과보다 이과가 두 배 더 많은 구조 속에서, 희망은 참고사항에 불과했다.


그는 문과를 원했지만, 교실 안의 공기와 주변의 시선은 그를 다른 쪽으로 밀어냈다.

결국 그는 이과가 되었다.

책상 위에는 물리와 화학 교재가 놓였고, 문과를 꿈꾸던 시간은 접혀서 서랍 안으로 들어갔다.


공식들은 머릿속에 남지 않았고, 그는 이해하지 못한 채 외우는 법을 먼저 배웠다.

그때부터였다.

공부가 아니라 견디는 일이 시작된 것은.


대학에 들어가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전공은 흥미가 아닌 의무였고, 강의실은 그가 오래 머물고 싶은 장소가 아니었다.

신문을 읽고, 글을 쓰고, 세상을 관찰하는 일...

그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은 늘 교재 밖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바깥으로 나갈 방법을 알지 못했다.


졸업을 앞두고 어느 날, 그는 신문을 넘기다 작은 광고 하나에 시선을 멈췄다.

외국계 제약회사 간부후보생 모집.

조건은 단순했다. 이공계 출신일 것.

그는 잠시 망설이다 지원서를 냈다.


시험은 차분하게 치렀고, 면접장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외국인 면접관의 시선은 낯설었고, 질문은 짧았다.

그는 준비한 말보다 조금 더 솔직한 문장을 꺼냈다.

“큰 조직의 부속품으로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말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느꼈다.


1987년 4월.

입사 첫날, 그는 강남역에서 조금 떨어진 건물 앞에 섰다.

사무실은 주차장 옆에 붙어 있는 7층 건물의 3층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30평 남짓한 공간이 펼쳐졌다.


책상 몇 개, 가죽 소파, 작은 회의실.

외국계 기업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소박한 풍경이었다.

그는 잠시 서서 그 공간을 바라보았다.

여기가 앞으로의 삶과 연결된 장소라는 사실이, 쉽게 실감 나지 않았다.


점심시간에는 한국 파트너사 대표를 만났다.

약을 만드는 회사의 대표는 양담배를 연거푸 피워 물었고, 연기 사이로 흘러나오는 말들은 현실적이었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그날 처음 또렷하게 보였다.


합격자 네 명 중 한 명은 첫날 바로 회사를 떠났다.

더 안정적인 길을 선택했다는 소문만 남았다.

그렇게 세 명이 남았다.


저녁에는 근처 치킨집에 모였다.

맥주잔 위로 기대와 불안이 엷게 떠 있었다.

웃음은 있었지만 길지 않았고, 대화는 자주 끊겼다.

서로가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그는 30평의 공간을 한 번 더 둘러보았다.

낯설고 비어 있는 그 공간은, 마치 지금의 자신들처럼 방향을 정하지 못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곳이 출발점일지, 아니면 잠시 머물다 떠날 정류장일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그는 가방을 들고 불을 끄며 생각했다.

분명한 것은 하나였다.

자신은 지금, 길 위에 서 있지 않다는 것.


다음 날 아침, 그에게 처음으로 연수 일정이 전달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제야, 이 30평의 사무실이 단순한 사무실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기 전의 대기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미지: 네이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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