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야구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어릴 적 집에 흑백 TV가 들어왔는데, 너무나 신기해서 채널을 돌리다 고교야구를 본 게 친해지기 시작한 시초였다.
당시 집 근처에 전주상고가 있었는데 야구부가 있었다. 휴일이나 방학이면 어린 동생 둘을 야구장에 데리고 가서 투수 포수 타자로 나눠서 던지고 받고 치고 달렸다.
운동신경이 좋았던 둘째 동생은 왼손투수에 4번 타자였는데, 야구부가 있던 중학교에서 선수로 스카우트하려던 것을 아버지가 말렸다. 아버지는 공부가 우선이라고 판단하셨다.
중학교에 다닐 때는 빵울 치기라고 해서 테니스 공 같은 것을 나무를 다듬어 만든 방망이로 치는 게임을 했었다. 중2 때는 진짜 야구공으로 반 대항 시합을 하였는데, 등 한가운데를 맞고 아파서 비명을 지른 기억이 난다.
내가 다니던 전주고등학교는 입학했던 해에 야구부가 재창단되었다. 광주 지역의 중학생 팀이 주축이 되었고 농협 출신의 국가대표 투수였던 감독이 선임되었다.
초봄의 운동장에 1년씩 학년을 낮추어 입학시킨 선수들을 데리고, 일본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국가대표 출신 김영조 감독이 인스트럭터로 와서 직접 폼을 교정해 주는 장면도 보았다. 그분은 진안 출신의 명 포수였는데 고향의 고교팀에 애정을 쏟아주셨다.
모교 선수들은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투지가 높았던 전주상고와 늘 예선에서 맞붙으면서 기량이 일취월장하였다.
고2 여름방학 때는 봉황대기에 출전한 모교를 응원하러 혼자서 서울에 올라왔는데 장충고를 누르는 경기여서 처음으로 직관(직접 관람하기) 승콘(승리의 아이콘)이 되었다. 모교는 졸업 전 창단 3년 만에 전국체전에서 우승하기도 하였다.
당시 고교야구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선수들은 대학을 거쳐 실업팀에 가기도 했는데, 1982년에 전두환 군사정권이 3S 정책으로 탄생시킨 프로야구로 열기가 이어졌다.
대학생 시절 동대문야구장 입구에서 1시간 동안 줄을 서서 개막전 티켓으로 외야석을 구입하였다. 혼자 가서 MBC 청룡팀을 응원하였다. 전두환의 시구, 이종도의 만루홈런이 기억난다. 눈앞에서 춤을 추던 팔등신 치어리더들이 야구장보다 더 시선을 끌게 하였다.
당시의 개막전 티켓을 그대로 보관했더니, 몇 년 전에 프로야구 스폰서인 S은행 주최의 '추억의 사진전'에 그 티켓사진으로 응모를 했는데 압도적인 지지로 1위를 하여 KBO에서 수여하는 찐팬 자격증과 소정의 상품도 받는 기쁨을 누리게 한 보물이 되었다. 후세에 진품명품이나 소더비 경매에 나올 수도 있을까,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당시 내가 응원하는 팀은 호남 연고의 해태타이거즈였는데, 예전부터 아는 군산상고나 광주 출신 선수들이 많아서 좋아했다. 나는 지금도 40년 넘게 팬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시절 도서관에는 당시 프로야구의 열기를 반영한 스포츠신문이 잇달아 창간되어 매일 게시되고 있었다. 학생들 틈사이로 김봉연의 홈런 기사를 훔쳐보고 선수들의 타율과 선동열의 방어율을 줄줄 외우고 다녔다.
지역 연고를 발판으로 한 프로야구는 영호남대결에서 매번 승리하여 우승한 호남팀에 정치적 울분을 응집시켜 하나로 단결시켰고, 운동장에서 김대중! 김대중! 김대중을 연호하던 함성과, '목포의 눈물'을 부르며 감격해하곤 하였다.
타이거즈는 포스트시즌에 진출만 하면 우승을 밥 먹듯 하였는데, 우승에 목말랐던 라이온즈는 오죽했으면 우승 청부사 해태 김응룡 감독을 스카우트해갔을까 싶었다.
하지만 전주에 연고를 둔 쌍방울 레이더스가 1991년에 창단되어 어쩔 수 없이 두 개 팀을 번갈아가며 응원하게 되었다. 두 팀 중에서 한 팀만 승리해도 내겐 기분 좋은 날이었다.
아내도 야구를 좋아해서 같이 잠실야구장에 다녔는데 커다란 사건 하나로 인해 야구장에 나 혼자만 다니게 된 역사적 해프닝이 발생하였다.
1995년 8월 초, 휴가차 고향을 내려갔는데, 마지막 날 쌍방울 팀과 LG트윈스의 더블헤더(하루에 두 경기를 치르는 것) 경기가 있었다. 아침부터 야구장 근처에 차를 세워놓고 새빨갛게 얼굴과 팔을 태워가며 열띤 응원을 하였다. 뙤약볕 아래 선풍기 두대의 더그아웃, 지열로 뜨거운 모래 야구장에서 뛰는 새까맣게 탄 프로 선수들이 애처로워 보였다. 프로야구라고 했지만, 당시 선수들이 처한 환경은 프로가 아니었다. 김밥과 바나나우유로 허기를 채우며 1승 1패 경기를 보고 차 시동을 거니 어느새 어둑어둑하였다. 150km까지 밟아가며 밤중에 집에 도착하니 아내가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당시 둘째 딸이 태어난 지 한 달밖에 안 되었는데 두 살 위인 개구쟁이 아들은 온 집안을 어질러놓고 낄낄거리며 하루종일 말도 안 듣고 장난을 치고 있었단다. 생후 한 달 된 딸은 빽빽 울어대는데 아내는 산후조리로 선풍기 바람도 쐬지 못해 기진맥진했을 것이다. 시댁에 전화하니 아침에 나갔다는 남편은 소식도 없고, 이제나저제나 남편 돌아오기만 기다렸던 아내는 분통이 터졌을 것이다. 늦은 귀가에 원망 가득 나를 노려보던 아내의 호랑이 얼굴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때부터 아내의 야구장 동행은 30년째 멈춰 섰다.
지금도 거실 TV로 중계를 보는 집관(집에서 관람하기)을 하면 아내는 쉴 새 없이 잔소리 따발총을 갈겨댄다. 그 정성이면 고시도 몇 번 붙었을 것이다, 아예 잠실야구장 근처로 이사 가라, 그냥 앉아서 보지 말고 운동하면서 봐라, 시끄러우니 안방 가서 봐라...
역시 야구는 집관보다 직관(직접 경기장에서 보기)이 최고다. 광주 챔필(챔피언스 필드: 기아타이거즈 홈 경기장)에서 구입한 등번호 5번의 김도영 유니폼과 타이거즈 모자, 마스크, 목도리, 노란 막대풍선을 대동하고 운동장에 자주 출정한다.
운동장에서 가장 신나는 것은 선수들마다 응원가가 있어서 따라 부르고 흥겨워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기아의 소크라테스, 박찬호(국카스텐 하현우의 '돌덩이'), 나성범, 김도영, 최원준, 최형우, 이창진 선수의 응원가를 좋아한다.
아내의 잔소리에도 야구사랑은 식지 않아서 직원들을 데리고 잠실야구장도 자주 찾았다. 서울 출신 직원들은 LG나 두산 팬들이 많고, 맥주에 치킨을 곁들이며 목이 터져라 응원하며 상대방의 에러에 약을 올렸다가 역전홈런에 망연자실하기도 했다.
계열사가 KBO 후원업체여서 종종 코리안시리즈 티켓도 구해서 이뻐하던 직원들도 데리고 갔다. 페트병에 소량의 위스키를 넣어가서 생맥주로 입가심을 하며 열기에 빠져들면 가을의 서늘함은 어느새 상쾌함으로 바뀌었다.
요즘에는 야구동호인 카페나 밴드도 많아서 단체관람 이벤트에도 참가하고 야구 관련 정보도 쉽게 접할 수 있다. 거기서 알게 된 지인들이 사인볼도 보내주고, 경품에 당첨되어 선물도 받았는데 동호인들은 인정이 넘쳐난다.
경기장에서 동호인들을 만나면 마실 것을 건네주며 그날의 경기 평을 하느라 야단이다. 투수교체가 잘못됐다, 대타 실패다, 감독이 저러니 5위도 힘들겠네... 다들 야구박사들이다.
동호인 밴드에 그날의 승리투수나 투구 수, 결승타 주인공 알아맞히기에 경품을 여러 번 내걸었더니 제법 알아주는 사람들이 생겨 대우는 받고 산다.
시즌이 시작되면 김성근 감독을 오랫동안 가까이서 모셨던 친한 야구광 친구와 같이 잠실, 고척돔, 문학, 수원, 광주야구장까지 서해안 벨트로 응원을 다닌다. 친구가 SK 야구팀에 있을 때에는 초등학교 동창모임을 인천 문학야구장에서 개최하기도 했는데 삼겹살에 소맥을 마셔가며 승리의 기쁨과 함께 친구들 우정을 다지기도 했다.
고교 친구들과는 함께 수도권 야구장을 돌아다니며 목이 쉬도록 응원하며 맥주 한 캔씩 마셔야 직성이 풀렸다.
올해는 80년대생 젊은 감독으로 바뀐 기아 타이거즈의 분전을 기대한다. 우승도 넘볼 수 있는 전력이라는 예상도 있지만, 야구공은 둥글고 요기 베라의 명언처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는 것이 야구의 묘미이니,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
공은 실밥이 있기에 변화무쌍한 마구도 던질 수 있지만 108개 실밥수만큼 감독들의 번뇌도 깊어질 것이다.
나도 입으로야 얼마든지 감독을 할 수 있다.
독을 든 성배의 자리를 차지하는 영광 못지않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하는 피 말리는 승부를 해야 하는 존재가 감독이다. 요즘은 우승을 시켜도 다음 해 성적이 떨어지면 교체되고야 마는 파리목숨 같은 자리를 길게 지켜내는 명장이 별로 없다.
개인적으로는 김응룡, 김성근, 김인식, 김기태 같은 김 씨 감독들을 좋아한다.
올해는 메이저리그 개막전이 고척돔구장에서 열린다. 일본의 영웅이자 메이저리그를 평정한 오타니가 최초로 공개한 미모의 농구선수 아내와 서울 땅에 와서 시합을 벌인다는데 꿈만 같은 일이 현실이 되었다.
우리에게도 박찬호, 김선우, 김병현, 서재응, 봉중근, 최희섭, 추신수, 류현진, 김광현, 양현종 같은 메이저리거들이 있었고 올해는 김하성과 이정후가 멋진 활약을 보여줄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KBO 선수로 고교 후배인 해결사 최형우가 40대 베테랑의 진가를 보여주길 기대한다.
자, 다음 주면 프로야구 개막전이다!
플레이 볼~~~
*이 글을 퇴고하러 들른 오늘 시점(20240914)에 기아타이거즈는 여유 있게 1위를 달리고 있고 시즌 우승이 눈앞에 다가와 있다. 이대로 가면 코리안시리즈까지도 집어삼키고 통합우승 각이다.
나의 모교 전주고는 올해 청룡기와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우승한 최강팀이 되었고, 지난주에는 프로야구단에 6명이나 지명을 받아 명실상부한 야구 명문고로 우뚝 섰다.
이래저래 기분 좋은 2024년이다!
*이미지: 네이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