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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식이

홀로 서야만 사는 시대

by 글사랑이 조동표

삼식이(하루 세끼를 집에서 해결하는 남자)가 되지 않으려면 일단 출근부터 해야 한다. 출근해서, 바깥에서 밥을 한 끼에서 두 끼를 무조건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만약 출근할 곳이 없으면 집에서 아내의 눈치를 봐가면서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어느 날 아내가 해외여행을 떠난 일주일 동안 과연 집에서 어떻게 살아나갈까 경험해 본 적이 있다.


물론 아내가 집을 떠나기 전에 밥은 어디에 있고 밑반찬은 어디에 있다, 국거리는 어디에 있으며 과일은 어디에 들어 있고 반찬은 어떻게 만들어 먹어라, 전자레인지에 무엇을 몇 분 동안 돌려라, 어떤 것은 어떻게 끓여라 등등의 노하우를 전수해 주고 갔다.


빨래할 때 세제는 얼마큼 넣고 섬유유연제는 얼마큼 넣어라, 그리고 타월과 일반 옷을 구분해라, 빨래한 다음에 어떠어떠한 것은 옷걸이에 걸어서 말리고 어떠어떠한 것은 건조기에 넣어서 돌려라, 건조기가 다 돌려진 다음에는 보푸라기를 제거하고 물도 빼내야 된다, 등등의 조언도 전수해 줬다.


기본적인 집안 청소는 이미 옛날부터 해 왔기 때문에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내가 없더라도 정리정돈도 하며 집안을 깨끗이 해 놓고 끼니는 적당히 집에 있는 재료로 해결하고, 빨래는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 정도 하는 거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나 이외에 아들도 있었기에 두 사람이 협력해서 먹는 것을 해결하고 두 사람 분의 빨래만 하는 것이니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사실 빨래는 직접 손을 대지 않는 기계적인 반복이므로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그런데 먹는 것은 달랐다. 처음에는 가지고 있는 재료들로 버틸 수 있었다. 그러다 이틀이 지나자 곧 바닥이 드러났다. 오랫동안 버티지 못하는 과일은 새로 사야 했으며 밑반찬도 남자 둘이서 주말에 먹어 대니 금세 동이 났다.


하루는 라면과 인터넷에서 주문한 즉석요리로 때웠다. 그렇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었다. 아내의 손맛이 그리웠다.


식당에서 먹는 것은 어차피 출근하면 낮에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무언가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만 했다. 대학을 다닐 때 자취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냄비에 재료를 넣어서 끓이고 계란프라이도 해 보고 밥도 지어 보는 실습을 40년 만에 시도해 본다.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아내가 있을 때에는 아침에 느긋하게 일어나서 그저 씻기만 하고 차려 주는 대로 먹고 출근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이제 아침에 일어나면 아들 먹을 것을 챙겨 줘야 하고 또 내가 먹을 것을 챙겨야 한다. 계란프라이도 하고 끓이기도 하면서 만들고 먹고 설거지하는데 최소 30분에서 1시간은 소요된다. 그리고 몸도 씻어야 되며, 집을 나서기 전에는 반드시 집안 점검도 해야 된다. 어쩌다 가스레인지 불을 안 껐는지 걱정이 되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이틀간 밀려 있던 빨래가 쌓여 있으면 또 세탁기를 돌리고 가야 된다. 퇴근해서 집에 오면 세탁기를 점검해서 건조기에 넣거나 옷걸이에 널고 다시 또 저녁식사에 대한 준비를 해야 된다.


물론 저녁은 여유가 있기 때문에 천천히 해도 되지만 가끔 부엌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나를 보며 생각하는 것은, 아내 역할이 얼마나 큰 것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 세대는 거의 가부장적 중심의 세대로 자랐기 때문에 엄마가 해 주는 것 또는 아내가 해 주는 것으로 집에서 먹는 것을 다 때웠다. 집에서는 자고 씻고 출근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아내가 하는 일까지 다 하려고 하다 보니 손이 가야 되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아내는 요리를 배워 보라고 이야기를 했다. 대학 시절 자취생활이 지긋지긋했던 나는 요리하는 내 모습이 초라해 보였고, 또 음식 냄새를 맡기가 싫어서 부엌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물론 가벼운 설거지와 쓰레기 분리수거와 버리기, 청소기 돌리기 정도의 일은 해왔지만, 사람이 먹고 산다고 했을 때 그 먹는 문제를 혼자서 해결하려고 해 보니 속된 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아내를 존경하는 마음이 스스로 우러났다. 정말 존경스러웠다. 아내 또한 예전에 맞벌이하면서 가정주부 역할을 동시에 하지 않았던가?


내가 수명이 다할 때까지 최소 30년은 이런 일을 익혀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겸손한 자세로 부엌을 사랑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아내를 존경하기로 하였다. 삼식이가 되어도 버텨내기로 다짐했다.


*이미지: 네이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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