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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당구

당구를 통해서 만나는 아버지와 아들

by 글사랑이 조동표

몇 년 전까지 명절이면 아버지를 전주에서 모시고 올라와 집 근처에서 당구 대결을 벌이곤 했었다. 아버지는 87세이지만 왕년에 검도와 배구, 탁구와 배드민턴 등을 섭렵한 운동신경이 남다른 분으로, 요즘도 매주 사흘은 당구를 치러 다니신다.


초등학교 교사 시절에 배드민턴 감독을 겸하시던 시절에는 국가대표로 오랫동안 활약했던 박주봉 감독을 키워냈고 전국대회에서 여러 번 우승을 일궈냈다.


아버지는 명절마다 우리 집에 올라오셔서 함께 지내곤 하셨는데, 그때마다 한 큐 치자고 하신다. 매년 달라지는 점은 젊은 색상의 모자로 바뀌어 있는 정도이지만 아직도 건강하시다.


나는 1년에 서너 번 밖에 큐대를 잡은 기억이 없지만, 몇 년 전까지는 모처럼 만난 부자(父子) 간에 불꽃 튀는 승부를 겨뤄보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해의 일이 기억난다.


똑같이 150 점을 놓고 마지막 쿠션은 2개를 치는 4구 당구로, 1라운드는 같이 쿠션에 돌입했으나 쿠션과 연이은 뱅크샷으로 나의 승리, 2라운드도 비슷하게 쿠션에 들어갔으나 쿠션 1대 1에서 뱅크샷을 친 나의 승리로 끝났다. 3전 2승제의 승부는 나의 2연승으로 끝났지만, 아버지의 승부욕이 발동하여 한판 더 치기로 하고 3라운드에 접어들었다.


큐 스트로크, 힘 조절, 당겨치기, 돌려치기, 몰아치기 등의 감각이 매년 나아지시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돌려 치기의 파워가 떨어져 보여서 가슴이 아팠다. 오른손잡이이면서도 큐 거리가 안 잡히면 왼손으로 치신다.


3라운드는 아버지가 15점을 다 마치고 마지막 쿠션에 먼저 돌입했을 때 나는 아직도 8점을 남겨놓고 있어서 포기 일보 직전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쿠션을 노린 샷이 살짝살짝 비껴가는 바람에 드디어 나도 쿠션의 기회를 맞이하였다. 갑자기 부자관계에서 결투에 임하는 글래디에이터로 변하며 심장이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결국 쿠션 1대 1에서 뱅크샷으로 마무리한 아버지가 승리하셨고, 승부에 대미를 장식하는 순간 부자는 서로를 격려하며 손을 맞잡는다.


1년 만에 나타나시는 아버지를 알아보는 당구장 주인에게 인증숏을 부탁하며 담소를 나누곤 했었다. 당구는 치매 예방과 집중력 향상, 승부욕을 불사를 수 있고, 적당한 운동량으로 노년에게 좋다시며 당구 예찬론을 펼치셨다.


수고하신 아버지를 백화점으로 모시고 가서 설빔으로 구스다운을 선물하기도 하였는데, 평생 덕을 쌓아야만 복이 들어온다는 훈계를 항상 잊지 않으셨다. 부덕한 아들은 한없이 부끄럽기만 하다.


"아버지 갑자년 새해에도 복 많이 지으시고 또 복 많이 받으세요~~ 코로나로 몇 년이나 못 친 당구를 올해는 같이 즐길 수 있을까요? 다음 대결에서도 아들을 꼭 꺾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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