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의 일생을 회고해 보건대 선택에 따라 달라진 그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P는 원래 글쓰기를 좋아하고 책 읽기를 즐겨했던 문학도였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당시의 입시 정책으로 이과로 배정되자, 그가 선택했던 문과 전공 책들을 버리면서 물리, 화학, 지학, 생물, 수학에 집중해야 했다. 그리고 대학에서는 나무를 다루는 전공을 선택하게 되었다. 물론 이공계였다.
P는 많은 방황을 겪었는데, 본인이 선택한 길이 맞지 않다고 생각하여 자퇴도 해 보고 반수도 해서 법대나 상대 또는 인문학이나 사회학 전공을 꿈꿨다. 하지만 정작 나중에는 신문방송학이 자기 전공에 맞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러나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하지는 못했으며, 어쩔 수 없이 나무와 관련된 전공으로 대학을 졸업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을 다니면서는 문과적인 기질을 눈여겨본 지도교수로부터 대학원에 진학하여 삼림경영학을 전공하도록 권유받았으나 집안 상황을 고려하여 포기하였다. 대학원을 진학했으면 좋았겠으나 밑으로 동생이 세 명이나 있었다. 그리고 국가고시에도 힘을 기울였으나 실력과 끈기가 미치지 못하여 합격하지 못하였다.
대학을 졸업하는 시기에는 취업의 갈림길에서 방황하였고, 본인의 성향과 전공 사이에서 전공을 고려한 취업 활동을 해 보았지만 웬만한 곳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언론계로 방향을 정하여 신문사와 방송사에 지원하는 언론고시에 집중하였다. 하지만 당시 군사정권 하에서 언론의 문도 쉽게 열리지는 않았다.
그 와중에 P는 본인의 적성이 어디에 맞는지 고민하다 국내 기업보다는 외국 기업에서 경험을 쌓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리하여 외국회사에서 사원을 뽑는 곳이 어디인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연일 신문 광고면을 뒤져보며 학교 취업보도실도 드나들었다. 어느 날 한 일본 기업에서 신입사원을 채용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금의 길을 선택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당시 사원모집 공고에는 응시 자격이 이공계 출신으로만 제한되어 있었다. 만약 P가 문과를 졸업했었다면 아예 지원조차 못하였을 것이다.
P는 언론고시 준비과정에서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이 회사의 입사 필기시험에 무난히 합격하였다. 백사장의 모래알로 살기 싫고 소꼬리보다는 닭대가리가 되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어필하여 면접까지 합격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과출신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문이 열렸던 것이다.
그가 회사에 합격한 이후에는 모회사가 일본이므로 일어에 집중하여서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는데 이것은 그의 어문학적인 성향이 반영된 결과였다. 남들보다 뛰어났던 국어 실력에 더하여 어려서부터 일찍 한자를 접하였던 환경 덕분에 일어를 쉽게 배울 수 있었다. 이 어학 능력은 그의 한평생 직장 생활에 있어서 커다란 기반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그가 싫어했던 이과를 발판으로 회사에 입사했던 것이고, 회사에 입사 후에는 그가 좋아했던 어학을 살려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이것은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본인의 장점을 잘 살려낸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P는 늘 본인의 약점을 보완하는 것이 더 중요한가 아니면 본인의 장점을 더 강화하는 것이 중요한가 고민하였다. 결론은, 대학생활까지는 약점을 보완하는 것이 맞고, 회사에 들어가면서부터 장점을 더 강화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하였는데, 이것이 적중하였다.
P는 입사 이후부터는 의약품을 다루는 과정에 대해서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과 과목 중에 생물 쪽에 바탕을 둔 분야여서, 입사 이후에 공부한 약리학, 병리학, 병태생리학 등에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리고 회사에서 P가 담당했던 것은 마케팅이었는데, 마케팅은 다분히 경영학적인 요소와 분석학적인 내용이었기에 딱히 전공에 제약을 받는 분야는 아니었다. 또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갖고 사물을 분석하는 것은, 그가 늘 관심을 두는 영역이었기에 수월하게 적응했다.
P는 여러 가지 인생의 어려운 경로를 걸어왔지만 항시 주어진 환경과 여건하에서 어떻게 최선을 다하면 그 길에서 성공할 수 있는가를 모색해 왔다. 결국 중요한 국면에서는 선택을 해야만 했고, 기왕 선택을 한 입장에서는 타인보다 더 강한 집중력을 보여서 앞서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선택과 집중'이라고 하는 단어는 그가 최초로 기업에 입사한 후 일본인 지사장이 강조했던 단어였는데 지금은 널리 통용되고 있는 개념이다.
P는 늘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하루 종일 선택을 강요당하는 일상생활에서 어떤 것이 현명한 선택인지 판단하는 것을 즐겁게 생각한다. 그리고 한번 선택을 했으면 거기에 몰입하고야 마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P의 취미를 보면 수십 년간 이어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가 보존하고 있는 기록물, 보존물, 컬렉션 류의 것들은 골동품에 해당할 정도로 50년이 훨씬 넘는 일기장부터 우표수집앨범을 포함, 역사가 오래되고 다양한 것들로 모아져 있다. 이것은 그의 성향을 알 수 있게 하는 증거물이다.
25회에 걸쳐 P의 직장 인생을 더듬어 보았다. P는 본인이 선택한 삶의 길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학교에서 강요하여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된 이과의 길은 오히려 P의 장수 직장생활을 성공으로 이끈 동인이었다. P가 좋아한 어학은 일본어를 마스터하면서 성공의 기반이 되었다.
본인이 사람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고, 새로운 현상에 늘 관심을 갖고 있고, 또 유달리 경쟁심도 강한 승부사 기질이 있었기 때문에 마케팅 PMM에 적합하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것들이 태어나면서부터 부여받은 천부적인 능력은 아니다. 살아오면서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면서 알맞게 맞추어지고 다듬어진 결과물인 것이다.
이제 P는 지나간 회고를 통해 자기가 나아가야 할 바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깨달았다. 최근에 P는 창업을 하여 본인의 장점을 극대화한 헬스케어 컨설팅 비즈니스를 시작하였다.
36년에 걸친 직장인 생활을 통해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을 하였지만 이제 P는 직장의 여러 조직에서 해왔던 다양한 분야의 업무를 거의 혼자서 책임져야만 한다.
경영을 해 가면서 늘 새로운 프로젝트를 찾아내어 마케팅을 해야 하고, 경리로서 장부정리도 해야 하고, 물건을 구입하며 환경미화를 책임지는 총무 역할도 해야 된다. 세무서, 구청, 등기소, 은행 업무를 수시로 봐야 하고, 늘 법무사와 회계법인을 상대하며, 스스로 노트북을 고치는 IT도 담당해야 된다.
P는 이 모든 것이 즐겁다. 영원한 현역으로 살고 싶은 것이다. 100살까지 장수할 수 있으려면 체력을 기르는 건강도 중요하지만 끊임없이 뇌를 활동시키는 두뇌 노동자의 삶도 중요하다. 치매에 걸리지 않고 젊은이들과 같이 호흡하며 살기 위해서는 뇌가 젊어야 한다. 그래서 브런치스토리 작가활동도 즐겁게 하고 있다.
P는 작년부터 20대 대학생들을 만나는 멘토링을 전개하고 있다. 그의 뇌는 앞으로 더욱더 말랑말랑해질 것이다. 20대 청춘 대학생들과 10년은 더 같이 멘토링을 해 나갈 계획이다. 더불어 비즈니스도 10년은 더 키울 예정이다.
새 출발의 동기부여는 P가 늘 생각하고 있는 '사회환원'과 '재능기부'라는 두 단어에 모아져 있다. P는 그동안 배워온 모든 것을 바탕으로 이제는 사회에 재능을 기부하고 환원시켜야 된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에 지금의 멘토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기업을 출범한 것은 딱 그의 판단에 부합되는 것이었다.
유쾌하게 펼쳐질 P의 제2의 인생에 박수를 보내며, 그의 방황은 이제 강남역에서 멈추고 강남의 끝자락에 있는 장지역에서 펼쳐질 것을 기대한다. 이제는 더 이상 강남역에서 방황하는 미아가 아닌 P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이 글을 읽어 준 모든 찐팬 독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2부에서 또다시 독자들을 다시 만나보기만을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요즘 네이버 밴드에서 읽은 글을 옮겨본다.
둥글넓적한 자연 그대로의 돌을 다듬지 않고 건물의 기둥 밑에 놓은 주춧돌을 덤벙 주초(柱礎)라고 부른다.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때가 되면 다 잘 풀릴 거니까... 세상은 덤벙덤벙 사는 거야"라는 어르신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위로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지치고 힘든 시기에 덤벙덤벙 살라는 말은 꽤 인상적으로 마음에 꽂힌다.
강원도 삼척에 '죽서루'라는 누각이 있다는데 특이한 것은 그 누각의 기둥이라고 한다. 터를 반반하게 고르는 대신, 터에 맞게 기둥의 길이를 달리 한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길이가 다른 17개의 기둥으로 만들어졌다는데 숏다리도 있고 롱다리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초석(礎石)을 덤벙덤벙 놓았다 해서 ‘덤벙 주초(柱礎)’라 불린다고 한다. 터를 반반하게 고르는 대신 터에 맞게 기둥의 길이를 달리 놓을 줄 아는 여유가 놀랍다.
"세상은 덤벙덤벙 사는 거야.."라는 말씀을 하신 어르신의 말뜻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세상은 평탄하지 않다. 반반하게 고르려고만 하지 마라. ‘덤벙 주초’처럼 그때그때 네 기둥을 똑바로 세우면 그만이다.
그렇다. 세상은 언제나 가만있지 않고 흔들거린다. 흔들리는 세상에서 중심을 잃지 않으려면 마음의 기둥을 잘 세워야 한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서둘지 말고, 조급하지 말고, 욕심부리지 말고, 남과 비교하지 말고, 오로지 자기만의 삶을 살아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