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내 삶은 분명 달라졌다.
가고 싶은 곳으로 훌쩍 떠날 수 있고, 한낮에 친구의 전화가 오면 망설임 없이 달려나갈 수도 있다.
시간은 온전히 내 것이 되었고, 그 자유는 오래 기다려온 선물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자유를 얻었는데도, 마음은 오히려 불안하다.
퇴직한 지 어느덧 4개월.
친구와 해외여행도 다녀오고, 절친들과 골프 여행도 했다.
엄마와 이모들을 모시고 가족 여행도 다녀왔고, 미뤄뒀던 공부도 조금씩 이어갔다.
겉으로는 알차고 풍요로워 보였지만, 내 안에는 여전히 빈자리가 있었다.
그 4개월 동안 새로운 경험도 많았다.
경매 공부를 하며 낯선 동네를 둘러보기도 했고, 서울에서 20년이나 살았지만 가보지 못했던 골목과
거리들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이곳은 참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구나. 언젠가 이런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
걷는 동안 그런 생각을 하며, 회사 밖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을
조금은 이해하는 시간도 가졌다.
내가 몰랐던 세상은 훨씬 넓었고, 그 속에서 나는 조금은 성장했다.
아침 창가에 바쁜 발걸음의 출근길 사람들을 보며 처음엔 “잘 그만뒀다”는 안도감이 찾아왔다.
회사 소식이나 동료들의 불만을 들을 때마다, 역시 내 선택이 옳았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시간이 길어지면서 또 다른 감정이 찾아왔다.
하루가 너무 길다 보니,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었다.
무심코 발을 디딘 온라인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을 뻔한 순간도 있었고,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시간이 많다는 건 선물이 될 수도 있지만, 나를 허술하게 만들 수도 있구나.”
그 후로 나는 자주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앞으로의 삶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가만히 있으면 뒤처지는 것 같고,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조급함이 스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믿는다.
이 불안과 흔들림도 결국은 새로운 길로 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여유와 불안이 교차하는 지금 이 순간이, 두 번째 삶을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출발선일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다시 다짐한다.
내 안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천천히, 그러나 단단히 걸어가겠다고.
2025년 9월 23일 석양이 지는 나의 거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