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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진 Nov 20. 2022

광주,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마음이 담겨 있는 도시

518 기념공원, 1913 송정역 시장, 전일빌딩, 우일선 선교사 사택

으슬으슬 추운 바람이 들이치는 가을이다. 2022년 상반기 여행 결산에 올렸으나 아직 적지 못한 광주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아직 겨울이 채 오지도 않았지만 푸릇푸릇한 광주의 사진을 다시 보니 걷기조차 힘들었던 광주의 뜨거움이 그리워지는 듯하다.

https://brunch.co.kr/@choeeunjin/54



5.18 기념공원

사실 이때 다녀온 광주 방문은 야구를 보려는 목적이었다. 그래서 광주에 사는 친구와 함께 광주를 둘러보고 야구를 봤고, 야구를 보지 않을 때 이곳저곳 광주를 여행했다. 처음이라 그런지 모든 게 새로웠다. 그 새로움의 첫 번째 코스는 바로 5.18 기념공원이다. 광주 유스퀘어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한 번에 도착했다.


이곳은 사실 관광 코스는 아닌 것 같다. 친구가 왜 가냐고 물어보기도 했고, 공원도 많은 주민들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공원을 좋아하기도 하고, 5.18 기념공원이라고 해서 근처에 있길래 가봤다.


공원이 생각보다 컸는데 곳곳을 둘러보지는 않았고 친구를 만나기 전에 잠깐 오월루에만 올라가 봤다.


오월루에서 보는 광주 뷰! 사실 한창 여름이었던 6월인지라 나뭇잎에 많이 가려 있었다. 커다란 산이 하나 보였다. 지도를 봤었는데 아마 무등산이었던 것 같다.


공원을 나와 밥을 먹으러 가는 길에 걸은 길이 5.18 역사길이었다. 공원 이름부터 걷는 곳마다 5.18 역사가 가득한 곳이라는 게 이때쯤 정말로 체감됐던 것 같다. 그리고 광주 친구가 데려간 떡갈비집은 진심으로 엄청엄청 맛집이었다. 한국 가면 꼭 다시 가고 싶은 곳이다.


야구장에 가기 전에 1913 송정역시장에 들러서 고로케를 샀다. 혼자 왔다면 이곳저곳 다녀볼 생각을 못했을 것 같은데 친구 덕분에 아무런 정보도 없이 왔지만 여기저기 잘 다녔다. 야구를 보고 첫째 날은 끝!




전일빌딩

두 번째 날이다. 이 날은 친구와 광주 여행을 하기로 했다. 전일빌딩 앞에서 친구와 만났다.


빌딩 이름이 전일빌딩 245였는데 헬기에 의한 사격 탄흔이 245개 발견된 건물이라고 한다. 주소도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245였다. 또 검색해보니 사진 속 전일빌딩 245의 BI 정중앙의 원은 탄흔을 의미한다고 한다. 나도 아마 브런치를 쓰며 검색해보지 않았더라면 영영 몰랐을 것이다. 아니까 BI의 원이 눈에 들어오는 것도 신기했다.


건물 안에는 5.18 민주화운동의 타임라인과 영상, 구조물 등 다양한 방식으로 역사를 접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역시 가장 인상 깊게 봤던 것은 건물 이름에도 담겨 있는 245개의 탄흔 자국이었다. 사진 속의 장소가 전일빌딩에서 총탄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장소라고 한다.


정면에 보이는 기둥과 천장 텍스의 탄흔은 10층이나 그 이상의 높이에서 쏘았을 때 가능한 위치라고 한다. 실제로 기둥과 바닥 모두 정말 많은 탄흔 자국이 있었다. 기둥의 면에 남은 탄흔 자국을 더욱 쉽게 볼 수 있도록 거울이 한 면에 부착되어 있었다.


확대해서 찍지 않고 멀리서 찍은 사진만 봐도 적은 양의 탄흔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45개라는 숫자를 말로만 들으면 체감이 잘 되지 않는 느낌이 있었는데 직접 보니 그 수가 어마어마한 것이 확 다가온다.


왼쪽의 사진은 1980년 총격 상황의 이해를 위해 총알이 관통된 모습을 연출한 유리창이고, 오른쪽 사진은 당시의 상황을 분석한 내용이 담겨 있다. 위에서 본 탄환의 진행 방향을 보았을 때 최소 10층 이상의 높이에서 사격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한다. 근데 중요한 점은 이때 당시 주변에 10층 이상의 건물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헬기와 같은 비행체에서 발사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건물이 계엄군의 폭력성을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 그 자체라는 점을 알게 됐다.


천천히 건물을 돌아보다가 마지막에 사진전을 하나 봤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라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검색해본 결과 <오월 어머니, 그 트라우마>라는 사진전인 듯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이들의 사진을 모아둔 곳이었다. 나는 특히 그 사진들 중에서도 이 분의 사진이 가장 마음에 찡하게 남았다. 어린 아들을 잃은 어머니셨다. 한참이 지나 아들의 묘역 앞에 덤덤하게 서있는 어머니의 마음을 내가 감히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싶었다. 아마도 나는 평생 헤아릴 수 없기에 이렇게 사진으로, 글로 기록을 남겨 세상에 전달하는 작업이 굉장히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전일빌딩의 마지막으로는 옥상에 올라갔다. 엄청 쨍하고 맑은 날이었기 때문에 더욱더 탁 트인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전일빌딩에서 내려다보는 광주의 뷰가 참 멋있었고, 역사적인 의미도 가득한 곳이기에 광주에 처음 오는 사람이라면 전일빌딩만은 꼭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친구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곳이지만 내가 역사에 무심했구나 반성하는 계기도 되었던 곳이었다.


그리고 전일빌딩에서 바라본 뒤쪽 길은 5·18광주민중항쟁 기간 중 시민들이 계엄군에 맞서 저항했던 거리다. 지금도 집회가 많이 열린다고 알려주었다.




5.18 민주광장

전일빌딩에서 내려와 밥을 먹으러 가는 길에 5.18 민주광장을 지나쳤다.


5.18 시계탑, 광주 전라남도청 구 본관 등 걷는 곳마다 역사가 발에 차이는 도시이다. 이날 바로 다시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 일정이라 많이 보지 못했지만 시간이 충분하다면 더욱 길게 살펴봐도 좋을 것 같다.


친구가 광주에서 상추튀김을 먹어봐야 한다며 데려간 곳에서 세 개의 메뉴를 시켜서 배부르게 먹었고, 또 어딘가를 졸졸 따라가니 맛있는 빙수집에도 데려갔다. 역시 국내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점은 그 지역에 사는 친구들을 따라다니는 것이 가장 좋다는 점~!




우일선 선교사 사택

빙수를 먹고 다음 코스로는 우일선 선교사 사택에 갔다. 이곳은 광주의 개화기에 외국 선교사들이 살면서 선교활동과 서양문물을 전파했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이 사택은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광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 주택 건물이라고 한다. 확실히 감성 있게 예뻐서 그런지 돗자리를 갖고 와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다만 이날만 그런 건지는 모르지만 안에를 들어가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창문으로 내부를 대충 둘러보기만 할 수 있었다. 이 건물이 한국 근대 건축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점도 신기한 점이었다. 지금 봐도 엄청 세련되고, 요즘 감성의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번에 처음 가본 광주는 걷는 곳마다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버스도 518번, 518 기념공원, 518 역사길까지. 기념관에 방문하고 영상으로, 글로 찾아보는 어떠한 노력을 해도 이곳에서 평생을 지내온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 스스로에게 굉장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확신한다.


나는 짧은 1박 2일 여행이라 가보고 싶은 곳을 다 가보진 못했지만 다음에 간다면 국립광주박물관, 조선대학교, 무등산 등 더 다양한 곳을 가보고 싶다. 맛도, 역사도 가득했던 광주. 켜켜이 쌓인 시간들이 느껴지던 광주는 나에게 따뜻함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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