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팀장은 안할래요.
내가 이직 하기 전의 일이다.
여름이었다. 당시 나는 회사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멤버십 서비스의 마케팅을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당연히 여름 휴가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하나 둘씩 여름휴가를 떠나는 동료들을 보며 부러워만 했던 시절, 같은 팀 선배 과장님과 나누었던 메신저 대화가 기억난다.
'요즘에는 워케이션이라는 게 유행이래.'
'워케이션이 뭐예요?'
'말 그대로 일(work)와 휴가(vacation)의 합성어야. 사무실이 아닌 곳에서 업무와 휴가를 동시에 할 수 있는 거지.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워케이션 하는 사람들도 늘어나는지, 지역마다 유치 경쟁이 장난 아니라던데?'
'와, 저희 회사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네요. 워케이션은커녕 있는 여름휴가도 못 가게 생겼는데...'
나에게 워케이션은 참 꿈만 같은 이야기였다. 일도 하면서 여행도 즐기는 직장생활이라니, 내 인생에는 절대 있을 수 없는 단어겠지…
그런데 불과 7개월 후, 나에게 워케이션이라는 기적이 나타났다. 이직을 하고, 새로운 회사에서 워케이션을 떠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주말을 앞둔 어느 겨울날, 뜬눈으로 새벽을 보내다 불현듯 작년 여름 과장님과 했던 대화가 생각났다. 나에게 워케이션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려주셨던 과장님의 이야기는 7개월 후 결실을 맺어 나에게 새로운 불씨를 지폈다.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직과 함께 나에게도 워케이션이 선택 가능한 옵션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재택근무를 하고 있던 회사 덕분에, 나는 내가 마음만 먹으면 워케이션을 떠날 수 있었다.
그날 새벽, 나는 제주에서 한 달간 머물 지역을 선택하고, 숙소를 정하고, 비행기를 예약했다. 모든 결정이 순식간이었다. 이건 ‘나’답지 않은 선택이었다. 자취 경험 전무, 겁 많고 소심하고 걱정을 사서 하는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추진력이었다.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이런 경험을 해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겁많고 소심한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 과장님! 저 6월에 제주 워케이션 가요!
- 와 진짜? 너무 부럽다! 진짜 한 달 살기 가는구나!
- 네. 저도 제 인생에 제주 한 달 살기가 있을진 전혀 몰랐어요.
과장님께 제일 먼저 연락을 드렸다. 그때 과장님이 이야기해주셨던 워케이션을 그다음 해 내가 가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사람 일은 참 알다가도 모른다.
30대 중반, 그렇고 그런 뻔한 직장생활만 남아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직과 함께 제주 워케이션이라는 새로운 세계가 내 인생에 펼쳐졌다. 무채색의 무미 건조했던 내 인생이 새로운 색상으로 채워질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환경이 바뀌고,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도 바뀌면서, 쳇바퀴처럼 똑같이 굴러갔던 내 인생도 조금씩 바뀌었다. 도쿄로, 치앙마이로, 더 크게는 유럽으로 워케이션을 떠나는 회사 사람들의 모습은 나 같은 겁쟁이에게도 큰 자극이 되었다. 두려움을 한 꺼풀 벗겨내니 사실 나에게도 이미 모든 조건은 갖춰져 있었다. 워케이션이 가능한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여유 자금도 있었고, 내 한 몸 뉘일 곳만 찾는다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몸이었다. 그렇게 어느 겨울날 새벽, 워케이션을 검색하다 즉흥적으로 제주행 비행기를 예매했다. 제주는 겁 많고 소심한 내가 용기 내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멀지만 가깝고 이국적인 곳이었다.
그렇게 서울을 떠나 2023년 여름, 제주에서 한 달간 워케이션을 보내게 되었다.
제주는 내가 30년 넘게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놀라운 일상을 선물해주었다. 한번도 살아본 적 없는 갓생의 삶을 살게 해줬고, 나도 모르게 싱글벙글 웃으며 일하는 생경한 경험까지 만들어준 것이다.
제주도에 오면서 출근 시간도 1시간 앞당겼다. 일찍 출근해서 일찍 퇴근하고, 오후 시간에 제주를 더 즐기기 위함이었다. 사실 출근 시간을 앞당기면서도 과연 아침잠 많은 내가 일어날 수는 있을지 걱정이었다. 하지만 걱정이 무색하게 나는 제주에 도착함과 동시에 가뿐히 7시 30분에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이 되었다. 재택근무를 하며 8시 55분에 일어나 9시에 출근하던 그간의 생활패턴을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갓생의 삶을 자발적으로 살게 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제주에서 나는 가만히 있어도웃음이 튀어 나왔다. 일할 때도 싱글벙글했다. 엊그제와 다를 것 없는 똑같은 업무를 하는데 단지 몸이 제주 성산에 있다는 이유 하나로, 이 믿을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직장생활 10년 차, 웃으며 싱글벙글 일한 적은 없다.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숙소에 있는 작은 앉은뱅이 책상에 노트북을 켜고 일을 했다. 모니터도 없이 13인치 노트북 화면에 의존하여 일하려니 꽤나 힘들었다. 의자도 없이 양반 다리로 바닥에 앉아 일하다 보면 허리도 아파오고 다리에 쥐가 나는 것도 여러번이었다. 그래도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오른쪽으로 고개만 돌리면 성산일출봉의 얼굴이 보였다. 빼꼼 보이는 대자연의 얼굴에 일하면서도 피식 나오는 웃음을 감추기 어려웠다. 바닥에 앉아서 일하지만, 알라딘의 양탄자를 타는냥 방방 뜨고 있었다.
설렘을 느꼈던 적이 언제였던가? 9년을 같은 회사 같은 팀에서 같은 일을 했다. 나에게 회사는 권태로 점철된 곳이었다. 이직을 했지만, 이직은 설렘보단 두려움과 걱정의 대상이었다. 워케이션 덕분에 참으로 오랜만에 일상의 설렘을 느꼈다. 일을 하며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니, 제주에 오기 위해 쓴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이 맛에 워케이션을 오는구나! 워케이션은 내가 이직을 한 덕분에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이직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들었고, 그만큼 정신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이 워케이션으로 그간의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는 기분이었다. 나 참 이직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