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팀장은 안할래요.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나왔다. 6월 제주의 여름 밤은 선선한 편이었다. 바닷물의 짠기를 품은 바람이 내 볼을 스쳐 지나갔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집 근처 슈퍼에 갔다. 오늘 나의 유일한 목표, 제주 초당옥수수를 사기 위해서였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옥수수 있나요?"
"옥수수 철이 끝나서 이제 끝나서 없는데. 어떡하지?"
"아 다 팔렸구나… 어쩔 수 없죠."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오늘 내가 세운 유일한 목표였는데, 옥수수마저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허탈하게 뒤를 돌아서려는 그 때, 가게 주인 아주머니가 나를 다시 불러 세우셨다.
"판매용은 아니고 우리끼리 먹으려고 둔 옥수수가 몇 개 있는데 이거라도 줄까요?"
"네?"
"상품가치가 없어서 팔 수는 없고, 우리끼리 먹으려고 따로 빼둔 거였어요. 못생기고 작은데 그래도 맛은 좋을 거예요. 이거라도 가져가요."
"오, 감사합니다. 얼마 드리면 될까요?"
"아휴, 이거는 돈 주고 팔 수도 없어. 그냥 가져가요. 우리 가게 자주 오라고 주는 거야."
"와, 너무 감사합니다."
아주머니는 비닐봉지에 작고 못생긴 옥수수 3개를 담아주셨다. 낯선 사람에게 베푸는 정이라니, 이곳에 와서 처음 느끼는 제주 인심이 오늘 하루 고단했던 내 마음을 녹여주었다. 먹지 못할 뻔했던 제주도 옥수수를 이렇게 받을 수 있어 감사한 마음으로 예정에 없던 귤 한 봉지도 샀다. 슬리퍼 바람으로 터덜터덜 가게로 걸어갔던 발걸음이, 가게를 나올 때는 초당 옥수수와 제주 감귤 덕분에 든든했다. 양손 가득한 두 봉다리의 무게를 중심 삼아 휘청 휘청 흔들렸던 내 마음의 중심도 다시 잡고 싶었다.
집에 와서 전자레인지에 옥수수를 1분정도 돌렸다. 아주머니께서는 초당 옥수수니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리면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이라 알려주셨다. 1분이 지나고, 살짝 데운 초당 옥수수를 접시에 담았다. 달콤한 초당 옥수수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배고픈지도 몰랐는데, 초당 옥수수 냄새를 맡으니 잊고 있었던 허기가 몰려오는 기분이었다. 접시를 들고 거실에 있는 쇼파에 앉았다. 그리고 옥수수를 한입 베어 먹었다.
'와 맛있다! '
1년만에 먹는 초당 옥수수였다. 제주 초당 옥수수는 처음 먹어봤는데 아삭하고 달콤하니 정말 맛있었다. 입안 가득 퍼지는 달콤한 맛이 느껴지니 다운 되었던 기분이 약간은 나아지는 것 같기도 했다.
쇼파에 기대어 앉아 옥수수를 베어 먹으며 오늘 하루 일어났던 일들을 곰곰이 되짚어보았다. 아침에 친구들과 성산일출봉 산책을 다녀와서 맛있게 식사를 하고, 서울로 돌아가는 친구들을 마중했다. 집으로 돌아와 청소를 하고 오후 출근을 하고 월요일 회의도 무사히 마쳤다. 기분좋게 퇴근하려던 때 예상치 못했던 팀장 제안을 받고 나는 거절했다. 그래, 지금 내가 이렇게 우울한 이유는 팀장 제안을 받고 난 이후부터다. 왜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일까? 예상하지는 못했지만 잘 말씀드려 거절했고, 내 거절이 받아들여 졌는데 말이다. 이 알 수 없는 찝찝한 마음을 해석해야 오늘 밤 두 다리를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지금 왜 기분이 안좋은 것일까?
나는 사실 책임감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다. 학창시절에는 모범생이었고 회사에서도 10년간 성실한 직원이었다. 시키는 대로 하는 걸 제일 잘하고, 시키는 걸 제대로 하지 못할 때 자괴감을 느끼고 힘들어했다. 나에게 주어진 몫을 스스로 만족할 만큼 성취하는 과정에서 업무적 자존감이 올라갔다. 솔직히 내 회사라 생각하며 일을 하지는 않았다. 없던 일을 만들어내며 능동적으로 적극적으로 일을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주어진 일 만큼은 최선을 다해 소화했다. 이게 내가 회사에서 책임감을 발휘하는 방식이었다. 내가 먼저 나서서 일을 하진 않지만, 회사에서 시키는 일은 훌륭히 소화하였고, 그렇게 10년이라는 회사생활 동안 조직에서 인정을 받아왔다. 그런데 처음으로 회사에서 시키는 일을 거절했다. 누구보다 성실한 회사원이었던 내가, 회사가 시키는 일을 처음으로 거절한 것이다. 거절하며 생기는 불편한 감정이 나를 괴롭게 했다.
처음 팀장 제안을 받았을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딱 한 가지였다.
'나는 매일 자정까지 일하기는 싫은데…'
팀장님이 일하시는 모습을 보며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상당한 강도의 많은 업무를 소화하고, 연달아 있는 미팅을 소화하면서도 20명이 넘는 팀원들도 한 명 한 명 챙기셨다. 특정 팀원에게 업무가 과중하게 부여되진 않았는지, 별다른 고충사항은 없는지 팀원 관리에도 소홀하지 않으셨다. 그러다 보니 우리 팀장님은 매일같이 자정 넘어 새벽에 퇴근하셨다. 심지어 어떻게 저렇게까지 일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 많은 업무를 혼자 소화하면서도 웃음도 잃지 않으셨다. 지난 6개월간 그런 모습을 보다 보니 팀장이라는 역할은 나에게 더욱 거리가 멀 수밖에 없었다. 나는 성실한 회사원이긴 했지만, 내 삶을 통째로 다 넣을 만큼 성실하고 싶진 않았다.
팀장 제안을 받는 순간 매일 매일 자정까지 일하며 울고 있을 내 모습이 떠올랐다. 감당하지 못할 수준의 업무, 줄줄이 사탕으로 있는 회의, 팀장만을 바라보며 아우성대는 팀원들, 어느 하나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매일 자정까지 남아 나머지 업무를 하는 내 모습… 상상하니 끔찍했다. 이건 내가 원하는 회사생활이 아니었다. 나는 일도 잘하고 능력있는 회사원으로 인정받고 싶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인생이 단단하다는 기본 전제가 있을 때 가능한 일이었다. 내 개인 생활이 무너진다면? 무너진 기틀 위에 세워진 훌륭한 일잘러의 타이틀은 나에게 결코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으로 나답지 않은 거절을 했다. 언제나 OK고 YES맨이었던 내가 처음으로 나를 위해 거절한 것이다. 첫 거절의 낯설고 불편한 감정은 결국 나에게 죄책감으로 다가왔다. 다 먹은 옥수수를 내려놓으며 깊은 한숨을 쉬는데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맺혔다. 아니 이게 눈물까지 흘릴 일인지 나 스스로도 당황스러운데, 이놈의 눈은 주인의 통제를 벗어난 것인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주책맞게 눈물을 만들고 있었다. 거절에 대한 죄책감이 결국은 눈물을 만든 것이다.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나 혼자 있고 보는 사람도 없는데 한바탕 울고 끝내버리자. 눈물로 이 불편한 감정이 씻겨나갈 수 있다면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울 수 있었다. 나는 다 먹고 뼈대만 남은 앙상한 초당 옥수수를 쥔 채로 엉엉 울었다. 이 순간, 아무도 없는 제주에 있어서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