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아이가 운명에 맞설줄 안다
어린 시절 나는 참 행복했다.
내 평생을 다 통털어서 가장 사랑많이 받은 때가 그 때였던 것 같다.
인생의 복도 총량의 법칙이 적용되는건가?
아마도 내 인생의 복은 초년에 몰빵한 것 같다.
동해바다를 품에 안은 모양의 항구와 그곳을 가득 메운 배와 사람들을 병품처럼 둘러 마치 어미가 자식을 안고 있는 듯한 지형을 가진 내 고향.
이 먼 곳까지 아버지가 어찌 흘러들어오셨는 지 성실하고 잘 생긴 총각은 동네 토박이 집 딸과 결혼을 했다. 집성촌처럼 한 집 건너 이모 삼촌하는 이들이 있어서인지 아버지는 처가동네에서 자수성가를 했다.
항구에는 배가 여러 척이 있었고 논밭은 소작을 맡길 정도로 넓은 땅을 가지고 있었다.
자상한 아버지, 생전 가족에게 눈을 부라리고 소리를 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고향이니 남편앞에 은근히 유세를 떨어도 그 아내를 향해서도 크게 기침을 해본 적도 없는 분이었다.
둘은 금술이 좋아 딸 다섯 아들 둘을 낳았다.
막내동생 낳기 전 태어난 나는 큰 아들을 3대독자를 안만들겠노라며 100일 지성을 들여 아들보겠다고, 분명히 아들이라고 하는 말 듣고 나은 자식이였다.
아들은 아니었지만 아들이상의 기세로 살았다.
하고 싶은건 다했고 하기 싫은 건 아무것도 안해도 존재만으로 사랑받았던 백선주집 막내딸.
똑똑하고 예뻐서 어디를 가도 입을 안대는 이가 없었단다.
어린 처제가 귀여워 자식처럼 이뻐한 큰 형부의 사람 좋은 웃음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밉게 보면 버릇이 없다 싶었을테지만 그런 이들이 내 주위엔 없었다. 뭘 해도 잘한다고 칭찬해주고 이뻐해주었다.
사람들은 인생이 꼬일 대로 꼬인 내가 왜 자꾸 고향에 들어와서 사냐고 의아해했다.
그건 내 자식들도 마찬가지였다.
좀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데 가서 살면 안되냐고, 창피하지 않냐고 했다.
왜 나도 사람인데 부끄러움이 없었겠나. 하지만 그 감정보다 더 큰 힘이 내게 작동하고 있었다.
이건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는데 난 고향에 오면 나는 다시 설 힘을 얻었다.
잘 못 채워진 단추땜에 내 인생이 나의 의도와 다르게 헝클어질 때면 고향에 오면 살 것 같았다. 아니 고향에 있어야 살 것 같았다.
누구나 힘들 때 부여잡고 있는 파랑새가 있지 않은가!
내겐 유년의 기억이 그랬다.
누구와도 나누지 못했던 슬픔과 두려움으로 달려간 고향바다에서는 늘 위로를 받고 돌아왔다. 그 곳에서는 아무 걱정없이 온전한 사랑에 행복해하던 내가 울고 있는 나를 안아주었다. 여전히 소중하고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줬다. 그렇게 따스했던 유년의 기억은 광야같은 인생길에서 주눅이 든 나를 토닥여줬다.
부모와 형제의 따뜻한 보살핌 아래서 유년을 보낸다는 건 아이들에게 더할 나위없는 축복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자식들에게 참 미안하다. 내가 누렸던 그 행복을 그 아이들에게도 겪게 하고 싶었지만 운명은 나와 아이들을 너무나 차가운 곳으로만 몰아세웠다.
변명같지만 그래도 나는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사랑했다. 아이들이 그걸 인정할 지 모르겠지만. 가끔 아이들은 어릴 적 한 이불 밑에 누워 듣던 옛날 이야기를 떠올리며 행복해했다. 그 이야기 모두 내 엄마가 나에게 해준 것에 상상을 더해 내가 만든 것이었다.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좋았다. 이쁜 옷과 신발을 사주진 못했지만 이야기만으로 아이들이 상상의 세계에서 행복해하는 것이 보기 좋았다. 어미 새에게 모이를 받아 먹는 아기새마냥 까만 눈망울을 굴려가며 이야기에 집중하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미소가 지어진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마법사처럼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살다보면 힘든 일을 만나겠지만 이야기속 아름다운 결말처럼 너희들의 인생도 그렇게 풀리고말 거라는. 유년을 통틀어 몇 개 안되는 달콤한 추억일망정 그로 인해 인생 전체에 따뜻한 햇빛이 자주 비치게 되길 기도하며.
'이 아이들에게 건 마법이 가장 힘들 때 제 힘을 발휘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