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소설]
미뤄뒀던 모든 마감을 끝내고 달콤한 낮잠을 자고 일어난 재경 씨는 편집자가 원고 메일을 읽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다. 시원하게 기지개를 켜던 재경 씨는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새 메일이 10개 이상 쌓여본 적 없던 재경 씨의 메일함에 반나절 만에 30개가 넘는 신규 메일이 온 게 아닌가. 당황한 손이 마우스 위에서 방황했다. 이건 몹시 나쁜 징조였다. 자신이 쓴 글에 어떤 사회적 오류가 있었는지, 아니면 과거에 저지른 부도덕한 행위(재경 씨는 어릴 때 방문 학습지를 찢어서 화단에 숨긴 적이 있다)가 밝혀져 비난을 받게 된 건지, 혹 자기도 모르게 표절이라도 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물론 다른 작가가 재경 씨의 글을 표절할 수도 있는 거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나은 건 아니었다. 재경 씨는 손을 벌벌 떨며 메일함을 열었다.
모든 신규 메일이 개인이 보냈다는 걸 확인하자 재경 씨의 머릿속이 쿵, 쿵 울리기 시작했다. 내 작가의 삶은 이렇게 끝나는 건가. 더욱 실망스러운 건 스스로 뭐가 문제인지 감도 못 잡았다는 점이었다. 재경 씨는 맨 위 메일을 느리게 두 번 클릭했다.
‘안녕하세요, 친애하는 작가님. 저는 당신의 소설 『서랍 한 칸』에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의 친구 정지소입니다. 당신에게 항의할 것이 있어서 이렇게 메일을 남깁니다. 나는 내 친구의 전 애인을 뺏고 싶지 않았습니다. 난 그놈보다 내 친구가 몇 배는 더 소중해요. 제발 절 위해 소설을 고쳐주십시오. 친구를 되찾고 싶습니다.
추신: 작가님이 만든 이 남자는 정말이지 최악의 남자입니다. 알고 계시는지요.’
재경 씨는 눈을 끔뻑거리며 메일 발신자의 이름과 내용을 번갈아 확인했다. 그리고 한참 침묵의 시간을 보내다 무언가 깨달은 듯 박장대소했다. 이건 이벤트구나! 등장인물과 이름이 똑같은 독자가 소설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작가에게 귀여운 항의 메일을 보낸 게 분명했다. 게다가 이런 식의 메일이 한꺼번에 왔다는 건, 재경 씨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모임이라도 만들 만큼 많다는 뜻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 남자 주인공이 최악이라니. 재경 씨는 어느덧 두려움을 잊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다음 메일 창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전 송현식입니다. 저를 기억하시나요?’
송현식? 재경 씨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이 쓴 책들이 꽂힌 책장을 눈으로 쓱 훑었다. 아무리 떠올려보려 해도 낯선 이름이었다.
‘기억 못 하시겠죠. 저는 당신이 17살 때 백일장에 냈던 단편 소설의 주인공입니다. 얄궂게도 당신은 소설의 제목조차 쓰지 않았죠. 거기까진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나를 열등감에 시달려 친형을 죽이고 멀리 도주하다가 불안감을 이기지 못해 같은 정류장에 내렸을 뿐인 사람까지 죽인 살인마로 만든 건 도무지 용서할 수 없습니다. 난 아직도 도망치고 있어요. 이 망할 버스와 정류장에 계속 머물고 있단 말입니다. 심지어 여긴 아침도 오지 않아요. 난 진심으로 형을 죽이고 싶지 않았어요. 힘들다고, 도와달라고 하고 싶었다고요. 제발 소설을 다시 써줘요. 책임지세요!’
재경 씨는 이제 옅은 미소조차 잃었다. 여전히 자신의 방이었으나 천장과 바닥이 뒤집힌 기분이었다. 학생 때 백일장에 낸 소설을 대체 누가, 어떻게 알아낸단 말인가?
방이 빙글빙글 도는 느낌에 정신이 아득해질 때 즈음, 핸드폰이 구원의 나팔처럼 울렸다. 담당 편집자의 연락이었다. 전화를 받은 재경 씨가 다짜고짜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그에게 쏟아냈다.
“지금 온 세상이 빙빙 도는 기분이에요!”
마지막 말까지 뱉고서야 재경 씨는 ‘나를 미쳤다고 생각하면 어쩌지?’라고 생각했다. 묵묵히 듣던 편집자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빙빙 도는 기분이 아니라, 진짜 돌고 있는 걸 거예요, 작가님.”
“예?”
“안 그래도 슬슬 때가 됐다고 생각했어요. 작가님, 잘 들어요. 작가님은 지금 저주에 걸린 거예요. 적당히 글을 쓸 만큼 쓴 작가들에게 찾아오는 저주이지요. 지금 방이 빙빙 도는 것 같죠? 그게 증거예요.”
“하지만, 밖에 풍경은 그대로인데요? 그냥 어지럼증 아니에요?”
“이런 비상식적인 순간에 상식적인 얘기 하지 마세요!”
편집자의 느닷없는 호통에 재경 씨는 하마터면 눈물을 찔끔 흘릴 뻔했다.
“지금부터 작가님 소설에 등장한 모든 인물이 계속 항의 메일을 보낼 겁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눈앞에 나타나거나, 죽은 인물들이 직접 찾아올지도 모르죠.”
‘죽은 인물’이라는 얘기를 듣자마자 재경 씨는 결국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소설에서 죽인 인물이 한두 명도 아니거니와, 곱게 죽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술을 마시고 화풀이하듯 쓴 적도 있었다.
“이런 일이 대체 왜 벌어지는 건데요? 전 그냥 소설을 썼을 뿐이잖아요! 그게 내 직업이라고요!”
“하지만 작가님은 너무 많은 인물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었잖아요. 죽이기도 많이 죽이셨고요. 지체할 시간이 없어요. 항의 메일이 쌓일수록 도는 속도가 빨라질 거예요. 그렇게 궤도에서 벗어나면 작가님은 영영 현실로 돌아올 수 없어요.”
편집자의 말대로, 새로운 메일이 왔다는 알람이 울릴 때마다 재경 씨의 방이 도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이젠 짧은 글조차 제대로 읽기 어려울 정도의 속도였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방법은 두 가지에요. 첫째, 메일을 보낸 인물들이 요구하는 대로 소설을 새로 쓰는 거예요. 오래 걸리겠지만 이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어요.”
“그 많은 걸 언제 다 써요? 지금도 메일이 오고 있는데!”
“두 번째 방법은, 작가님도 항의 메일을 쓰는 거예요.”
“인물들한테요?”
“아니요. 작가님을 만든 사람에게요.”
재경 씨는 멍한 표정으로 사정없이 흔들리는 책장을 바라봤다.
“그, 그러니까…….”
어쩌면 책장이 아니라 재경 씨의 머리가 흔들린 걸지도 모른다.
“내가 어디에 등장한 누군데요?”
핸드폰 넘어 침묵이 길어졌다.
“난들 아나요?”
전화가 뚝 끊겼다. 재경 씨는 짓무른 눈가를 손등으로 문지르고 공중에서 나부끼는 머리카락을 쓸어모아 질끈 묵었다. 그리고 표면이 매끈해질 정도로 닳아버린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새 소설을 쓸 때처럼 정답은 없었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재경 씨조차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