뱉어내려면 일단 삼켜야 하고

[초단편소설]

by 최목필

오늘 소설은 비위가 상할 수도 있는 묘사가 많습니다.


*<뱉어내려면 일단 삼켜야 하고(To Throw Up One Must Swallow)> : 윤지영(Jiyoung Yoon) 작가의 작품 제목을 인용하였습니다.



“선정아. 일단 먹어 봐. 먹다 보면 다 괜찮다니까?”

나는 하얀 접시를 붉게 물들인 기름진 매운탕을 노려봤다. 펄펄 끓는 물에 빠져 죽은 이름 모를 생선의 또렷한 눈, 부서진 허연 살점이 붙은 투명한 무와 채소들, 그리고 식을수록 기름 막이 선명해지는 시뻘건 국물.

“얘, 너 이게 얼마나 귀한 건데.”

저 기름 말이야. 어디서 온 걸까? 어디긴, 생선 몸에서 나온 거지. 눈과 아가미와 부레와 장기와 뼈와 살을 움직이게 만드는 모든 것들로부터. 동생인 현정과 나는 눈으로 대화했다. 네가 먼저 먹어. 싫어, 언니가 먼저 먹어. 왜 맨날 나부터야.

“선정이가 언니니까, 먼저 모범을 보여야지?”

이모는 기름으로 번들거리는 국자를 냄비 안으로 푹 쑤셔 넣고 국물을 조금 더 퍼 아직 비우지 못한 내 접시 위에 부었다. 식은 국과 뜨거운 국이 합쳐지면서 살짝 말랐던 생선 눈깔이 피눈물이라도 흘린 듯 붉고 축축해졌다. 지체할수록 책임져야 할 양이 늘어났다.

“요즘 사는 게 힘들어서 굶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감사합니다, 하고 먹어야지.”

자기들끼리 실컷 떠들던 어른들은 갑자기 쇼라도 보듯 우리에게 집중했다. 어디선가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과연! 저 감사할 줄 모르는 아이들은 숟가락을 들까요, 말까요! 60초 후에 공개합니다!’

나는 가스버너에 가까이 있던 쇠숟가락을 천천히 집었다. 차갑고 뜨거웠다. 빨간 국물을 한 번 휘젓자 내 숟가락도 국자만큼 빨개졌다. 나는 잘 익은 파를 들어 이불을 덮어주듯 생선 눈을 조심스럽게 가려줬다. 이런 행동이 귀엽다는 듯 주변 어른들이 크게 웃었다.

“우리 선정이가 마음이 약하구나!”

이렇게 어물쩍 넘어갈 수 있으려나? 고개를 들어 주변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던 순간, 난 가장 두려운 존재와 눈을 마주쳤다. 멀리서 조용히 나를 지켜보던 엄마의 눈이 싸늘했다. 이젠 엉덩이골까지 축축해졌다. 현정도 이런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내 앞에서 부자연스럽게 몸을 들썩였다. 시뻘건 루주를 바른 엄마의 입술이 여기, 저기서 터지는 웃음을 무시하고 천천히 움직였다.

‘먹어.’

국이 식자 비린 냄새가 확 올라와 위장을 쿡, 쿡 쑤셨다. 속이 미친 듯이 울렁거려 당장 숟가락을 내려놓고 찬물을 마시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엄마의 입술이 아직 멈추지 않았으니까.

‘빨리.’

나는 아주 작은 생선 살을 숟가락 위에 올리고 국물을 조금 떴다. 그리고 눈을 꾹 감고 입을 살짝 벌렸다. 손을 덜덜 떨며 망설이자, 천둥 같은 불호령이 떨어졌다.

“김선정! 너, 똑바로 안 먹어!”

너무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숟가락을 목젖이 닿도록 깊숙이 넣어버렸다. 그러자 비린내가 얼굴 전체에 퍼졌고, 그 자리에서 모조리…….



“정말 그랬다고?”

엄마가 처음 듣는다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현정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타박했다.

“엄마도 참 너무하다. 어떻게 그걸 잊어? 나까지 헛구역질하고 난리였는데. 그래서 언니는 아직도 매운탕 못 먹잖아요.”

나는 거실 끝에서 코를 막고 애써 웃었다. 커다란 냄비 안에서 무자비하게 끓는 생선 꼬리가 삐죽 튀어나와 인사라도 하듯 흔들렸다. 현정은 힘들어하는 나를 보더니 좀 더 물러나라며 손짓했다.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큼지막하게 썬 무를 냄비에 넣고 가스 불을 세게 틀었다.

“내가 뭐 알았겠니? 그리고 오늘은 선정이 먹으라고 하는 게 아니잖아. 황 서방 먹으라고 하는 거지. 낚시를 그렇게 좋아한다며?”

“저, 아직 청혼에 답 안 했어요.”

나는 옷 소매로 코를 막고 구역질을 참으며 겨우 대답했다. 엄마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일부러 시끄럽게 물을 틀고 집기들을 내리치며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 사이에 껴서 조용히 눈치를 보던 현정은 약속이 있다며 집을 나갔다. 엄마는 곧 형부 될 사람이랑 식사하는데 자리조차 지키지 않는다고 잔소리를 했다.

“이런 식사 자리, 오빠한테도 저한테도 불편해요.”

식탁 위는 엄마가 종일 준비한 매운탕과 노량진에서 포장해온 회, 각종 해산물이 들어간 무침, 생선전, 잡채 등으로 화려하게 채워졌다. 그나마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어 안도했으나, 해산물 위주로 차려진 상은 여전히 버거웠다.

“황 서방 같은 사람 만나기 쉬운 줄 알아? 요즘 같은 세상에 말이야. 변호사지, 체력 좋지, 머리카락 많지.”

자신이 이 식사의 주인공이라는 듯 냄비 정 가운데에 몸을 길게 늘어뜨린 생선이 내게 말을 걸었다. 선정아, 오랜만이네. 우리 꼭 옛날로 돌아간 거 같다.

“성향이 잘 맞진 않아요.”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 잔말 말고 결혼해. 일단 해 봐야 아는 거다. 그렇게 살 부딪히고 살다 보면 어쩌고, 저쩌고, 어쩌고, 저쩌고.”

오빠가 양손에 홍삼과 과일을 들고 인사하자 엄마는 처음 보는 미소를 지으며 연신 환영 인사를 했다. 운동으로 다져진 단단한 어깨를 연신 쓰다듬는 주름진 손이 바빴다. 하얗게 김 서린 냄비 뚜껑을 열자 오빠가 탄성을 질렀다. 야무지게 살을 발라 먹는 그에 엄마는 신이 난 듯 이것도 먹어보라며 온갖 젓갈을 다 꺼냈다. 내가 뻣뻣하게 굳은 잡채만 젓가락으로 휘적거리자, 처참하게 뼈만 남은 생선이 다시 말을 걸었다.

‘네가 옛날에 먹은 그 살점 말이야.’

‘바로 다 토하는 바람에 제대로 먹지도 못했어.’

‘아냐. 너, 그 살점은 못 토했어.’

‘정말? 그럼 내가 진짜 매운탕을 먹었단 말이야?’

‘그렇지. 그래서 말인데, 그날 먹은 살점 좀 돌려줄래? 그게 사실 되게 귀한 살점이거든.’

매운탕이 슬슬 바닥을 보이자 엄마가 후식으로 라면을 끓여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빠는 배가 부른지 손바닥으로 셔츠 위를 문지르다가 젓가락으로 앙상한 뼈를 집더니 엄마를 향해 흔들었다.

“어머니. 이거까지 쪽 빨아야 제대로 먹는 건데, 그렇죠?”

검고 깊은 동굴이 천천히 마지막 남은 생명을 집어삼켰다. 오빠의 입 끝에서 공허한 눈빛만 남은 생선 대가리가 흔들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온 힘을 쥐어짜더니, 예전의 엄마처럼 입 모양으로 내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일단 뱉어 봐.’

뚝. 얇은 뼈가 음식물이 잔뜩 낀 앞니에 잘렸다.

“오빠. 나 도무지 결혼은 못 하겠다. 이제 집에 좀 가주라.”

모든 게 멈췄다. 마지막 남은 음식까지 탐내며 접시를 핥던 그도, 사육하는 짐승이 살찐 걸 보듯 흐뭇해하던 엄마도 모두 하던 걸 멈추고 나를 귀신 보듯 바라봤다. 기름칠 된 접시 위에서 뒹굴던 생선 대가리가 호탕하게 웃으며 전사했다. 나도 웃음이 났다.

오빠는 잔뜩 붉어진 얼굴로 옷을 입고 도망치듯 집에서 나갔다. 기계적으로 그를 배웅하기 위해 현관 앞에 서자 그새 염분으로 퉁퉁 부은 그의 얼굴이 땀으로 번들거렸다.

“어머니랑 말은 좀 맞추지 그랬냐.”

내가 엘리베이터까지 따라 나올 기세자 다시는 보지 말자며 내 어깨를 밀치곤 긴 아파트 복도를 걸었다. 나는 감정 없이 조심히 들어가라며 던지듯 말했다.

문을 닫자 주걱이 날라왔다.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피했다. 그게 엄마의 분노를 키웠는지 제대로 된 말보다 가쁜 숨이 더 많이 튀어나왔다.

“내가, 내가 너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냐! 널 어떻게 먹이고 키웠는데 이런 식으로 배신을 해! 이럴 거면 내가 너한테 준 거 다 뱉어내라. 뱉어 내!”

그 말을 듣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위가 꿀렁거리더니 그녀가 나를 키우며 내게 억지로 먹였던 모든 게 쏟아져 나왔다.

우웨엑.

콩자반, 미역 줄기 볶음, 달걀 샐러드, 피클, 오이지, 비싼 뷔페라고 억지로 먹였던 석화, 해파리냉채, 갈비탕, 상한 참치 김밥. 마구 쏟아내는 내 위로 현관 센서 등이 미친 듯이 깜빡거렸다. 쏟아지는 과거의 음식들이 마치 거대한 케이크처럼 층을 이뤄 차곡, 차곡 쌓였다. 축축하게 내 무릎까지 쌓인 것들에서 쉰내가 났다.


나는 헛구역질을 하며 마지막으로 남은 것을 ‘퉤’ 하고 뱉었다. 살점. 생선이 그토록 찾았던 살점이었다. 나는 그걸 천천히 손으로 굴려 진주처럼 만들었다. 그리고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옮겨 가장 꼭대기 층에 장식했다.

폭죽 같은 비명과 함께, 비로소 이별이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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