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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 Nov 26. 2018

*소소

03. 여탕 좋아




반신욕을 사랑하는 나에게 욕실은 마음 가는 아주 편한 아지트 같은 곳이다.


내 벗은 몸도, 남이 벗은 몸도. 나는 '벗은 몸'에 마음 불편하지 않다.

별 신경 쓰이지 않는다고 할까.

그저 인체일뿐, 어릴 때부터 벗은 몸에 딱히 감정과 이야기를 담지 않았다. 


아주 오랜만에 목욕탕엘 갔다.

내 마음의 평화는 우리 집 욕조만 못하지만

아주 가끔 이렇게 큰 욕조에서 몸을 담그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럴 날마다 망설임 없이 공중목욕탕을 찾았다.





목욕바구니를 야무지게 챙겨 들고 목욕탕 안으로 들어왔다.

버블버블.

탕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물 한 모금 마시고 쉬다가를 반복한다.


냉탕은 무서워서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온탕은 혹은 열탕은 정중앙에 보통 둥글게 디자인된 큰 탕으로, 밝은 조명의 경우가 많지만,

냉탕은 조금 구석에 직사각형인게 대부분이라.

왠지 횟집 수조 같은 느낌을 지우려야 지울 수가 없는 거다..

차갑고 묘하게 탕 안이 어둡고....물고기가 왔다 갔다 할 거 같은 상상에 냉탕에 쉽사리 접근하지 못하는 나였다.

해서 한번 몸이 탕 안에서 열오르면 나와서 티브이를 보며 바나나 우유를 마시며 쉬곤 한다.


내 나름의 입수 시간을 마치고

나가기 위해 다시 씻는다.



평소 환경오염을 걱정하면서 

오늘도 나는 버블버블 하고 있다.

손은 버블버블 하면서 마음 한쪽으로는 

환경친화적 '샴푸'를 골랐다는 기찬 변명을 하는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바보로 느껴진다.

오늘의 나는 여전히 이율배반적이다.


그때


많이 연로하신 할머니 한분이 들어오신다.


딱 봐도 허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 이 다 안 좋으신 분이다.

허리가 굽으셔서 목욕 가방이 땅에 끌리는 정도로.


누군가 같이 왔겠지..?

바닥이 많이 미끄러운데...


시선을 돌려보니

탕 안에 여자들은 평화롭고 시끄럽다.

다양한 여자들이 한 곳에서 함께 같은 평화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탕의 마력이다.

돌로 만들어진 두꺼비 입에서 뜨거운 물이 나오고 있다.

참 시끄럽게들 떠드는데 시끄럽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이 탕의 마력이다.

저마다 입으로, 몸으로 스트레스 찌꺼기를 뱉어내고 있다.


그때

오 마이 갓

아까 그 할머니께서 미끄러지셨다.

입구에 턱을 못 보셨으리라..


"괜찮으세요??????"

입구에서 제일 가까웠던 

나란히 샤워부스를 쓰던 한 아주머니와 나는 

할머니께 달려가지 않을 수가 없었고,

노인네가.. 목욕탕에서 미끄러지다니..

이건 큰일인 거다.


평화롭던 탕 안의 여자들은 

일동 시선집중,

비상경계령이 내려진 미어캣과 같이

무슨 일이래 무슨 일이래..



"할머니 혼자 오셨어요..? 누가 같이 안 오셨어요...?"

아주머니가 묻는다.


"혼자 왔어~ 집에 아무도 없어.."




...


"혼자 오셨데~노인네 혼자서~"

"아이고 저 연세에 혼자 목욕탕은 무리지~~"

"자식들이 없나~~"


뒤에 미어캣들은 수군거린다.


나는 우리 할머니가 생각난다.

마침 연세도 비슷할 거 같다..



버블버블 아주머니는 할머니를 부축하는 모습이

마치 맏며느리 같다,

믿음직스러워.

"일단 저쪽으로 가 앉으세요"




나는 떨어진 샴푸와 비누를 주어들고 걱정되는 마음으로 할머니 곁으로 간다.


온탕 옆에 앉으신 할머니를 둘러싸고

미어캣들은 미어캣이 아니다..



_아이고 노인네가 혼자 역까지오시면 어떡해~

말은 투박하지만 걱정이 묻어난다.

_괜찮아~여기 여자들이 다 지켜보고있자나~~할매 목욕 편하게 하셔~ 부축해드릴게

아까까지 남욕을 그렇게 하던 아주머니의 걸쭉한 목소리가 의지가 되는 목소리로 들린다.

_이짝에 앉으셔~ 물 좀 드시고~ 노인네가 조심하셔야지~~뼈 부러지면 어짤라고~


나만 자식이 아닌 것이다.


한 할머니의 홀로 목욕시간이 

더 이상 걱정되지 않았다.



나 미어캣들 좋아

여탕이 좋아


안심되는 탕안의 여인들.





_저도 뒷담화 모략 이런 거 사랑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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