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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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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 Dec 15. 2018

<나의 보리>

epi.24 오마쥬 당신





토요일 주말.

나의 보리는 나보다 먼저 깨어나

동거인 아침을 깨워야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아마도 밥을 달라는 제스처일 테지.


슥 다가와

내 얼굴 이곳저곳 냄새를 맡기 시작한다.

이 행동은 사실.. 알람 소리 라던가 엄마의 목소리에 비하면

굉장히 비폭력적인 방법인 것은 분명하다.



아주 살짝 다가와 닿지 않고

미묘하게 거슬리는 데시벨로

간질간질한 소리를 내며 킁킁거리며 숨을 내뱉는다.



가능하다면 나는

아침참에서 스스로 깨어나고 싶다. 하지만,

내 냄새를 맡다가 끈질김이 묻어난 시선이 함께 느껴질 때쯤

나는 일어나지 않을 수없다...

아주 무겁게 몸을 일으켜 나의 보리를 바라본다.


상냥하다면 아주 상냥한.. 내 주말 잠을 깨우는 그의 조용한 방법은.


마치..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영화 <메가네(안경)>중 한 장면을

생각나게 한다.


"오하요고자이마스(안녕히주무셨어요)"


사쿠라 씨는 일 년에 한 번 매번 같은 여관을 찾고

일정 기간 동안 그곳에서 같이 생활하며 여관일을 돕거나 정신적인 고문 역할을 한다.

사색이 전문인 그녀는

투숙객인_아직 잠에서 일어나지 않은(매우 쉼이 필요해 전파도 닿지 않는 그곳으로 휴가를 온)

여자 주인공을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바라보며 깨기만을 기다린다.


누군가의 지긋한 (불편한) 시선에 잠이 깬 여자 주인공은.

사쿠라 씨의 그런 배려가 맘에 들지 않고 불편하다.

_저를(더자게) 내버려둬 주세요.



왠지 알겠는 그녀의 마음..


"저를 내버려둬 주세요"





일어나서 씻고 좋아하는 몇 가지를 먹은 뒤.


영하권으로 떨어진 날씨지만 주말이고 햇볕은 쨍하고 해서

좋아하는 카페를 목적지로 정하고

산책을 가기로 한다.


입에서 하얀 숨이 나오는 걸 보니 본격적으로 겨울 안에 들어 있는 기분이 든다.

나와 나의 보리는 함께 하얀 숨을 대량으로 내뿜으며 걷는다.

겨울엔 왠지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찬다.


가쁜 숨이 목까지 차오른 우리 앞에,,,

'계단 산' 이 나타났다.

저기다 올라가면 폐가 찢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저길 올라가야 맛있는 카페엘 갈 수 있는데...' 하며

나는 나의 보리를 보는데..

황금 미소로 웃어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자! 가자 동거인이여 ~나를 들거라.


이 표정은 마치....

아랫사람 부리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대감마님이 등장한다.

대감마님은, 부덕한 왕의 나라의 영의정이다.

한 손엔 부채를 쥐고

빛이고은 옥색 한복을 입고 늙은 구렁이처럼 대문을 밀고 나온다.


자. 가자.


예~마님.


스쿼트 200개 했을 때보다 진한 통증을 느끼며.

오른다.


결승선 통과..

내 폐는 찢어질듯하지만 찢어지지 않았다.

팔을 떨며 나의 보리를 땅에 내려놓자마자

가마를 타고 올라오는 동안

근육에 에너지가 충전이 된 나의 보리는 가뿐한 마음으로 달려간다.


대감마님...

쉬... 쉬었다 가죠...


대감마님은 아랫사람 사정 따위 듣고자 하지 않는다.





애견 동반이 가능한 목적했던 맛이 좋은 카페까지 가서

나의 보리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슈크림 한 개와 커피 한잔을 하고 돌아왔다.


나도 씻고 나의 보리도 씻고

우리 둘은 개운한 한마음으로 거실에 앉았다.


나는 손톱을 길게 기르지 못한다.

조금만 자라도, 짧게 바짝 자르는 스타일로

그 스타일이 몸이 느끼기 편한 습관이 되어

자주 손발톱을 자르는 편이다.



탁, 탁, 손발톱 잘려나가는 소리가

내 개운함을 한층 더 개운하게 느끼게 해 준다.


그러고 보니

나의 보리는 발톱을 자른 지 꽤 되었다.



나의 보리의 발톱 깎기를 예전에 사 두었었다.

아직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발 잡고 발톱깎이를 들이댈 때마다..

나의 보리는


척키의 모습을 내게 드러내는데..

그때마다 나는

척키가 된 나의 보리에게

정말로 심한 공포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사두고 아직까지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한 채

병원에 가서 발톱을 깎고 있다.







_ 표정에서 이미 넌 칼 물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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