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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보리

<나의 보리>

epi. 25 피곰피곰

by choi Boram





몸이 천근만근한 날이 있다.


잠을 자도 풀리지 않는 종류의 피곤

마치 어깨 위에 곰 한 마리가 올라와 죽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피곰.

오늘 내 어깨 위에 올라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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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워.... 너 많이 무거... 워..

저...저리가줄래..없어져..줄래 좀..?


하며 엎드려있는 와중에

나의 보리가 내 눈 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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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유난히도 꼬질꼬질해 보이는 나의 보리.


생각해보니 목욕을 한 게 아주 오래 전인 듯한 느낌이 든다.


아닌가. 내 착각인가. 지난주에 했나..

피곰의 무게 탓으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엉~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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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하러 가자

이래 꼬질꼬질하면 곤란하다.


피곰은 살이 많이 쪄 있어서

엎고 다니려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딛는데 매우 더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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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느그적 느그적

피곰을 등에 엎고, 나의 보리를 안고

마침내 화장실 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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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보리는 목욕하러 가는 바이브를 알아서일까

목욕하기 위해 욕조안에 내려놓아도

아주 얌전하다.

대게 목욕하는 내내 말을 잘 들어주는 착한 아이이다.




나의 보리는 6살 이후부터 쭉 피부가 좋지 않다.

병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지어온 약을 하루 한번 매일같이 먹고 있고,

타고난 예쁜 털을 길게 기를 수 없게 되었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목욕 때에 신경이 아주 많이 쓰인다.

산성이 약한 피부에 도움이 되는 샴푸를 쓰고 있고


피부에 좋은 약초, 오일 등을 넣고

샴푸 전에 10~15분 정도 반신욕 시간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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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 없이 목욕을 하게 된 나의 보리는 다소 불만을 가진 듯이 보였지만.

적당히 따뜻한 물이 받아지자

배를 쭉 깔고 앉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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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 아저씨 소리를 내며

졸곤 한다.


착각일지라도

이러고 탕에 몸 담그고 졸고 있는 나의 보리를 볼 때면 나는

스스로 좋은 주인이라고 생각하며

나도 나 같은 좋은 주인을 만난 강아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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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곰은 조용한 정적 속에서

나를 깨어있게 하지 않는다.


탕에서는 연하지만, 한약 냄새 같은 건강한 냄새가 솔솔 올라오고 있고

따뜻하고..따뜻하고...


피곰은 물을 좋아하는지 습기를 느끼자 힘이 세져서 나를 더 누르는 느낌이다.

내 눈꺼풀도 함께.매직!


나와 나의 보리는 잠깐을 함께 졸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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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시간 이상으로 탕에 있으면 피부에 더 안 좋으므로

반신욕 할 땐 시간을 지켜달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이

나를 번쩍 깨운다.


다행이다.

10분.. 지났어...


이제 그만..

씻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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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신가 된 느낌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꼼꼼하게 야무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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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버블.

손님 시원하세요?

두 가지의 약 샴푸가 끝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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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개운하게 씻어버리자.


앗. 꾸정물,,

흘러가는 꾸정물을 보니

꼬질꼬질하게 보인 게 내 느낌만은 아닌 게 확실해졌다.


나의 보리는 대들지도 않고 나대지도 않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려 하지도 않지만

왜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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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건으로 물기를 탁탁 털어낼 때쯤이면

내 어깨 위에 피곰이 두 마리로 증식한 느낌이 든다.


제 어깨가 좀 많이 뻐근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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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이이이잉~

드라이기로 물기 건조,

피곰이 새끼를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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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보리의 털을 말리고 나면 확실하게 세 마리

보통일이 아니다.. 털을 말리는 작업은..

나는 꼼꼼하게 말려줬다 생각하는데


나의 보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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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로 후다다다닥 달려가더니

마치 드라이기로 몸을 말린 적도,말려 본 적도 없다는 느낌으로

말도 안 되는 웨이브를 시연하는 중이다.


억울한 느낌이 들지만


확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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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해진 나의 보리를 보니,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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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지 아니할 수 없다.


오늘 나는 온몸이 땅으로 가라앉을지도 몰라.....

침몰.





_ 피곰. 생긴건 귀염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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