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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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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 Apr 12. 2019

< 나의 보리 >

epi. 38  꿀벌놀이





벚꽃이 만개하고 세상이 분홍색으로 넘쳐난다.

팔다리를 마구 움직이고픈 계절.

하루 종일 꽃 사이를 다이빙하며 날아다니는 꿀벌이 된 거 같이

내 마음은 좀처럼 가만히 있질 못한다.


좋았어. 우리 오늘은 뒷산에 올라가 보는 거야

집에서 나와 20분만 걸어가면 아주 나지막한 산이 나온다.

절대 자주는 아니고 , 일 년에 한두 번,

오늘같이 꿀벌이 되고픈 날

나는 이 산이 떠올랐다.

산이라 부르기 애매하게 낮고 언덕이라 부르기엔 높기에

우리가족은 이 산을 할머니 동산이라고 부른다.


좋았어.

보리야 오늘은 우리함께 건강한 느낌으로 할머니 동산에 올라가 보는 거야.


날씨에 힘을 얻어 그런지

나의 보리와의 등산은 처음이었지만 자신 있었다.

훨씬 많은 꽃나무가 분홍분홍한 사랑스러움을 뿜 뿜 하고 있었기에 그곳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나는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화려함과 단아함이 어울려있는

누군가의 잘 그려진 그림 안에 들어와 있는 기분.


게다가 집 앞을 산책할 때에는 이곳저곳 신경질을 잘 부리던 나의 보리였지만

웬일인지 이곳에 오니 주변의 사람에게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숙련된 등산가와 같이 자신의 등산길에만 집중하는 나의 보리였다.


아 등산 이거 나쁘지 않은데..

나의 보리와 향기도 좋고 빛깔도 좋은 길을 걸으며 걸으며 걸으며



그렇게 좋은 길을 걷고 걷자니 숨이 차오르고 땀이 난다.


참 향기롭고 예쁜 길.


우리 가족은 이 산을 분명..

할머니들도 거뜬히 오르내릴 정도로 쉬워 할머니 동산이라 부르는데...

이렇게 길이 길고 높았나..


이 길 참 예..예쁘다..

예쁜데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싸온 물을 꺼내어

꿀꺽꿀꺽 마셔 목구멍까지 올라오겠다는 심장을 다시 가슴으로 내려 보내야했다.


나의 보리도 심장이 목까지 올라왔단다.

나만 힘든 게 아녔어.

함께하는 파트너에게 얻는 작은 위안.


산 올라갈 때 오래 쉬면 다시 올라가기 힘들다는 어디 누군가 어른의 말씀이 떠올라

다시 걷기 시작.

분명 향기롭고 아름다운 이 길 위의 내 팔다리가 울끈 울끈 하고

조금은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할 무렵.


말해 뭐해

이쪽도 상황은 비슷하다.


눈앞에 널찍한 바위가 보인다.

우리 일단 우리 저 바위까지 가서 저기서 쉬자!


후다다닥.


후아~

별거 아닌 거 같은데 힘든 산이었어.

이 널찍한 바위가 안락 소파와 같이 느껴지는 것이 이 산에 곳곳에 매직이 존재하는 듯하다.


아 목이 말라..

집에서 나설 때 일 번으로 쌌던 보온병.

나는 나의보리와 산 정상까지 갑뿐하게 올라 보온병에 싸온 따뜻한 아메리카노 느긋하게 한잔 마시며 정상을 만끽하려 했다.



정말 쓸데없다.라는 말은 이럴 때를 위해 존재하는 듯 내 배낭은 쓸데없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 나는 차가운 물이 필요하다고!

뜨거운 커피따위..

빈 물병을 입으로 탈탈 털 어보지만 없는 물이 나오나.


에잇. 모르겠다 없으니까 참아야 지머

넓은 바위 위에 벌러덩 누워 올려다본 하늘

와~

그동안 미세먼지고 그득했던 하늘이 오늘은 푸르고 신선함으로 가득 차 있는

맑은 하늘.

잘 지냈니. 오랜만이야 맑을 하늘님.

그렇게 누워 잠시 맑은 하늘을 보면서 힘들어서 잊혔던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한다.


땀이 식어 등에 바위의 차가움이 느껴질 무렵.

다시 올라가 볼까?


... 뭐...?



레츠고~

쉬었으니 다시 올라가 보자.


노노 그렇지 않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푸른 하늘아래 단호한 절레절레.


맑은 하늘.

분홍색 공기.

땀 식은 등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


다시 바위에 드러누워 조금 더 쉬기로 한다.

조금 더 쉬면 같이 가겠지..

하는 얄팍한 계산으로.



잠시 뒤.

자! 보리야 출발. 가자!

그렇지 않아요~~~


가고 싶지 않아요. 걷고 싶지 않아요.


여전히,아니 어쩌면 점점더

다시 갈 마음 1도 없는 나의 보리였고.

나 역시 포기를 모르고

고고! 레쓰고!

갑시다 므브!

싫어요. 가고 싶지 않아요. 걷고 싶지 않아요. 가려면 너 혼자 가세요.



_

너 안 움직일 거야?

여기 계속 있을 거야?

너 혼자 여기서 살 거야?

누나 혼자 간다?

후~


혼자 가는 시늉도 해보고

안녕~하고 이별하는 행동도 해보고

싸늘하게 돌아서는 연기도 해 보았지만

거들떠보지도 않는 나의 보리.


정말로 조금도 움직일 생각이 없는 것이다.

꽤 올라왔는데.. 집까지 안고 가기에 너무 무거운데,,,

후~어쩌지....


가방에 들어올래?


really?



한번 해본 말인데..

가방에 넣으니 전혀 버둥거리지 않고

옳타구나~하고 가만히 있는 거라.



여기 더 앉아있다간 내가 졸려워져서 꼼짝 못 할 것 같으니

그래 일단 한번 이렇게 가보자.

나의 보리를 배낭에 넣고 겉옷에 달려있던 허리끈을 풀러 가방과 나의 보리 가슴 쪽을 졸라 묶고

나의 배와 배낭을 다시 한번 (나의 보리 산책 줄로) 단단하게 고정해서 묶는다.

이렇게 두 번 묶으면 나의 보리를 땅에 떨어뜨릴 일이 없지 싶다.


끙차~

그때부터 시작된 오늘의 진짜 하이라이트.

내리막길은 어떤 의미론 오르막길보다 힘들고.

으아~~~~~

소리가 절로 나는 것이...

뭣보다 우리의 모습은 너무나 웃겼으리라.

그래..누군가에게 웃음을 줬으면 그것으로 되었다...하기엔 내 다리가 너무나 후들거린다.


게다가

주머니에서 자꾸 떨어지는 이 보온병..


나의 보리만으로 배낭을 그 어떤 것도 담을 수 없었기에

스댕소재의 이 보온병을 주머니에 담고 걷다 보면 조금 못가 땅에 떨어지고 떨어지고

자동으로 나는 앉았다 일어났다까지 하게 된 셈이다.


저기 고객님~승차감이 괜찮으신가 봐요~

나의 보리는 상당히 안정적으로 쉬고 있는 게 등을 통해 느껴진다.

내가 다시 너랑 등산 오나 봐라!!

이노무싀끼...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꼴로

나는 나의 보리를 등에 짊어지고

집에 도착.


누가 할머니동산으라 그랬던가..

으아~~~~

배낭을 마룻바닥에 내려놓으며

내 목에서 나온 소리는 임꺽정보다 더한 괴성에 나 스스로 놀랄 정도

사람이 극한에 닿으면 못 낼 소리가 없구나...


배낭에서 봄꽃처럼 나와 팔랑팔랑 뛰어가는

저 진상고객! 다신 보고 싶지 않아요!.



며칠 트레킹 한 사람의 옷도 이보다 깨끗할 것이네..

옷을 짜면 소금이 나올 것 같던 내 나그랑 티..

곱게 세탁해야 줘야겠구려~




세탁기에 옷을 넣어두고  그래도 나는 거실에서 담요를 안고 잠이 들었다.


일어났을때 나의보리는 사람이 낮잠을 왜그렇게 자냐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있었고_





_사실 봄의 꿀벌은 고생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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