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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담 Mar 07. 2024

누군가의 저녁 풍경

저녁이 있는 삶

서서히 해가 기운다. 닭들도 웅성거리며 횃대에 오른다. 닭들은 새벽이 오는 걸 초 감각으로 인지하듯 어둠이 오는 것도 앞질러 알아차린다. 닭들이 고요히 저녁을 맞이하도록 서둘러 일을 마무리한다. 퇴근이다.

해가 일찍 지는 겨울이면 퇴근 시간도 빨라진다. 기온도 급격히 떨어져 무리해서 일을 하는 것은 어리석다.


추운 겨울, 해가 늦게 뜨고 빨리 지는 것은 농부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 무리하지 말라는 신호다. 겨우내 몸을 만들어 날이 풀리면 본격적으로 일터로 나가라는 것이다. 프로야구나 프로축구 선수들의 한 시즌 결과가 동계 훈련에 달렸듯이 농부의 한 해 농사는 겨울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달려 있다. 적절한 휴식과 운동과 몸 관리가 중요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보낸 겨울은 농부를 쉬이 늙게 한다. 겨우내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은 세월을 몇 년은 앞당기는 것이다.

물론, 1년 내내 쉬지 않고 알을 낳는 꼬꼬들은 겨울에도 게으름 피우지 말고 일하라며 나를 불러낸다. 다행히 추운 겨울만 되면 힘이 솟는 체질이라 밖에서 일을 해도 거뜬하지만 짧은 해는 적당히 요령껏 하라고 훈계한다.


농촌은 해가 지면 모든 것이 멈춘다. 듬성듬성 서 있는 가로등 불빛도 오가는 이 없어 외로워 보인다. 도로를 질주하던 차들도 모두 제 집을 찾아 들어갔다. 춥고 삭막한 겨울 하늘을 한 톨의 모이를 찾아 분주히 오가던 새들도 둥지로 날아들었다. 고요하고 적막하다.

칠흑 같은 밤하늘을 영롱한 별빛들이 수놓는다. 어둠이 짙을수록 가늠할 수 없는 곳에서 달려온 별들의 아우성은 그 거리만큼 제 각각이다. 별들이 간직한 사연과 다가온 시간과 펼쳐진 공간을 생각하면 지구별 한 귀퉁이에 서 있는 나의 존재도 결코 가볍지 않다.


저녁이 있는 삶이 좋다.

브런치라는 무한의 공간에 글을 쓸 수 있어 행복하다. 수많은 작가들이 쏟아내는 다양하고 톡톡 튀며 때론 절절한 삶의 편린들을 클릭 한 번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것 또한 분에 넘친 복이다. 2평의 공간에서 누리는 휴식과 충전과 충만의 시간도 감사하다. 책장 가득한 책들을 바라본다. 불쑥 책이 나를 꺼내달라 손짓한다. 집어 들어 펼쳐본다. 무작정  읽어 내려가는 책 속에서 뜻밖의 지혜와 용기와 가르침을 얻는 행운을 누린다.


아내와 맥주나 차를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시간도 소중하다. 저녁은 낭만을 선물한다.

저녁은 침잠의 시간이다. 요동치는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통해 스스로를 다독이고 위로한다. 다이어리를 펼치고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이었는지 새로운 뭔가를 이뤄낸 하루였는지 복기하며 기록한다. 하루를 어떻게 살아 냈는지는 저녁이 있어 가늠할 수 있다.


해가 지면 시작되는 저녁 시간. 밖으로 나가지 않는 온전한 저녁이 매일이다. 매일의 시간 속에 드물게 잡힌 반가운 사람들과의 저녁 약속은 설렘으로 다가온다.

올해부터는 매주 목요일 저녁, 드럼을 배우러 문화원에 간다. 음악을 좋아하지만 소문난 박치와 음치인데 드럼을 배우겠다고 덜컥 신청을 해 버렸다. 저녁시간에 개설된 강좌가 있어 도전할 수 있었다. 언젠가 친구들로 결성된 밴드에 드럼 연주자로 데뷔하고 가족 밴드도 만들어 보고 싶다. 그날을 꿈꾸며 어두운 밤, 스틱을 들고 꿋꿋하게 나선다.


어느덧 밤이 되었다. 소중한 저녁 시간이 훌쩍 흘러갔다. 감사하고 값진 선물의 시간. 누리고 누리다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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