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 굴뚝에 연기가 나는지
지금 살고 있는 집에는 굴뚝이 세 개나 있었다. 오래전 지어진 그 집은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하고 난방을 했다. 이사 왔을 때 아궁이는 사라지고 굴뚝은 그대로였다. 난방은 기름보일러로 대체되었다. 집수리를 하면서 난방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화력 좋고 비용부담이 적은 화목보일러를 추가로 설치했다. 겸용이었다.
겨울철엔 화목보일러로 난방을 하고 봄부터 가을까지는 기름보일러로 온수를 사용한다.
수해 복구로 급하고 허술하게 지어진 집이라 겨울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방한용 소재로 집안 곳곳을 보완했지만 틈사이로 스며드는 찬 공기는 막을 수 없었다. 겨우내 나무를 구하고, 자르고 쪼개서 보일러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 일과였다. 어수룩해서 인지 화목보일러의 불은 자주 꺼지고 나무는 엄청 들어갔다. 집은 여전히 추웠다.
시간이 흘러 보일러가 고장 났다. 다른 모델로 교체를 했다. 사용법을 제대로 익혔다. 그동안의 경험까지 더해져 나무 넣는 것도 수월하고 집도 따뜻해졌다.
겨우내 추운 줄 모르고 지내는 시간들이 감사하다. 오다가다 보일러 연통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연기를 보면 덩달아 마음이 포근해진다. 마을엔 화목보일러로 난방을 하는 집들이 꽤 있다. 모두가 겨울이 오기 전 어디서든 나무를 구해 놓는다. 나무의 종류도 다양하다. 나무를 가득 쌓아 놓은 집들을 보면 공연히 마음이 놓인다.
굴뚝의 연기를 보면 어릴 적 고향마을의 어스름한 저녁이 떠오른다. 시끌벅적 떠들썩하던 한낮의 분주함을 뒤로하고 집집마다 굴뚝에서는 밥 짓는 연기가 고요히 피어올랐다. 연기들은 마을곳곳으로 스며들었다. 그 연기의 묘한 냄새가 좋았다. 집으로 들어오라는 엄마의 부름처럼 느껴졌다. 엄마는 부엌에서 무쇠솥에 밥을 하셨다. 나는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아궁이 속으로 타들어 가는 불꽃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나의 불멍 사랑은 그때부터 시작된듯하다.
마을에 퍼지는 연기는 평등했다. 어느 누구의 집에서나 연기는 비슷한 시간에 피어났다. 밥을 하고 방을 데우면 연기는 안개 걷히듯 사라졌다. 달궈진 방 안에서 고단한 몸을 누이고 있을 동네 사람들이 한 가족처럼 느껴졌다.
새벽이 오면 저녁과는 다른 무게와 냄새의 연기가 마을을 휘감았다. 아침 연기는 상쾌했다. 해가 뜨기 전 연기는 구름사이로 흩어졌다. 연기와 구름은 한 몸처럼 보였다.
올해는 운이 좋아 공짜로 참나무를 많이 준비할 수 있었다. 물론 나무를 베고 자르는 수고로움이 뒤따랐지만 공짜가 없음을 알기에 힘든 줄 몰랐다. 나무가 많아 든든하다. 활활 잘 타고 연기도 거침이 없다.
겨우내 따뜻하게 지내는 시간이 찾아오면서 마을 곳곳에 연기가 올라오는 모습을 바라보는 여유가 생겼다. 어느 집에서 연기가 나는지 살핀다. 어릴 적 고향마을의 평등한 연기처럼 이곳에서도 빠짐없이 피어오르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라본다.
연기는 추운 겨울을 별 탈 없이 지내고 있다는 신호다.
몇 해전 세상을 떠나신 박 씨 아저씨의 집에서는 더 이상 연기가 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삶이 연기처럼 사라져 간다는 말이 새삼스럽다. 떠나면서 연기는 사라졌고, 떠나는 길에 연기는 피워 올라 한 줌 재로 돌아왔다.
몇 해 전부터 부쩍 몸이 약해지신 김 씨 아저씨의 굴뚝에서는 드문드문 연기가 피어난다. 나무를 많이 준비해 놓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나무를 넉넉하게 쌓아 놓은 우리 집 옆으로 지나다니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괜스레 마음이 무거워진다. 함부로 나무를 나눠 드릴 수도 없다. 선의를 베푸는 것도 조심스럽다. 엄연히 장성한 자녀들이 있다. 요즘은 보일러용 땔감을 거의 사서 쓴다. 연로하시고 거동이 불편하신 부모님이라면 보일러를 기름이나 가스로 교체해 드리거나 땔감을 사드리는 게 마땅하다. 그분들의 몸은 자식들의 뒷바라지로 등골이 휘고 무릎이 망가졌다. 추운 겨울은 몸보다 마음을 더 시리고 아프게 한다.
연로하신 한 씨 아저씨는 멀리서 손수레로 나무를 해 나르신다. 버거운 걸음에 수레바퀴도 무겁게 구른다.
객지에서 잘 나가는 아드님은 자랑이지만 아저씨네 굴뚝의 연기도 불규칙하게 피어오른다.
부지런한 동네 형님의 굴뚝엔 적당한 연기가 여유롭게 퍼져 나온다. 일 년 내내 차근차근 준비해 놓은 땔감이 가지런히 쌓여있다. 언제 봐도 땔감은 그대로인 듯 일정하다. 비우면 채워 넣는 습관이 몸에 베인 듯하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하염없이 내린다. 비는 내려도 아직 공기는 차갑다. 보일러에 나무를 채워 넣는다. 연기는 기세 좋게 뿜어져 나온다.
굵은 빗줄기는 요란하게 아래로 떨어지는 데 하얀 연기는 소리 없이 하늘로 하늘로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