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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종신 Sep 09. 2015

서울 도시 풍경 1

낯익은 거리의 언젠가는 잊혀질 풍경을 담다.


서울 거리는 두가지의 관점에서 서로 다른 이미지로 다가온다.

한가지는 도보로 바라보는 느리고 낮은 관점이고, 또 하나는 차로 이동하며 빠르고 다소 멀리서 바라보는 관점이다.


물론 거리의 대부분은 마치 시간이 지나도 그리 바뀌지 않을 것 같이 보이지만, 차를 타고 지나며 보는 거리는 일상이 거듭될 수록 천천히 아주 천천히 변화를 더하며 언젠가는 잊혀진 풍경으로 남을 숙명을 지녔다.






높은 빌딩 숲을 지나 시선이 머무는 남산 정상 부근에는 서울의 아이콘과도 같은 N서울타워가 자리하고 있다.


서울에 살고 있지 않거나, 서울에 살고 있더라도 바라보기만 하고 직접 오르지 못한 사람들은 남산 위에 우뚝 서서 서울을 관조하는 N서울타워를 보며 언젠가는 올라 보리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일상의 무게는 녹록치 않아 시간은 지나고 나이를 먹어감에도 좀처럼 저 멀리 남산타워(N서울타워의 옛 이름이자 보편적인 명칭)를 오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오히려 한국 관광을 패키지로 온 중국인들의 필수 코스가 되어 타워 정상부의 전망대에는 흔하디 흔한 중국어의 홍수가 공간을 채운 지 오래다.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에 따라 빛을 달리한다는 야간의 경광 조명을 받은 남산타워는 서울 토박이들에게도 언뜻 낯설게 느껴진다. 가까이 있지만 때로는 낯설고, 오르리라 마음 먹지만 쉽게 발길을 옮기기 어려운 남산타워는 마치 백년설에 덮힌 킬리만자로 산을 바라보지만 평생 오르지 못하는 아프리카인의 시선에 비치는 그것과 유사하다.



방화 사건으로 재건된 남대문은 왠지 진품이 아니라는 선입견으로 채색되어 보인다.

남대문이 불타는 날 밤의 TV 곁을 떠나지 못했다.

결국 속절없이 부서져 내리는 기왓장들이 모두 사라지고 잔불마저 꺼진 앙상한 폐허만 남은 모습을 보고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거의 모든 문화재가 전쟁의 화마로 재건된 상태지만 직접 목도하는 국보 1호의 화재는 전국민에게 충격을 남겼고, 그 원인이 토지 보상에 앙심을 품은 삐뚫어진 일탈이라는 소식에 더 허탈해 했다.

그 뒤로 수 많은 구설을 남기며 다시 공개된 남대문은 왠지 진짜가 아니라는 자격지심으로 같은 자리에 조그 다른 형태로 서 있지만, 생기를 잃어버린 듯 하다. 남측 성벽을 덧 대어 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복원된 남대문은 예전과 달리 광장을 덧대어 쉽게 다가가게 해 놓았기만 여전히 사람들이 즐겨 찾지는 않는 듯 하다.

아마도 그 날의 밤을 기억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남대문에 다가서는 것 조차 마음 불편한 일이 될 지도 모르겠다.



단성사가 변모를 꾀하던 건물은 지금도 울타리에 갇혀 있다.

109년의 역사를 가진 국내 최초 영화관 단성사.

시류에 따라 멀티플렉스관으로 재 개관했었지만, 프랜차이즈 극장에 밀려 쇠락을 거듭했고, 결국 2008년 부도를 맞은 뒤 오랫동안 휴면상태에 빠져 있다.


급기야 약 2년 반 전에 건물이 경매에 나왔지만 계속 유찰을 하다가 결국 지난 달에서야 한참 낮은 금액인 575억원에 낙찰되었지만 영화관으로서의 활용 여부는 미지수 상태다.

그래서 퇴근 길 옆,
서편제의 영화로움을 기억으로만 간직하고 있는 단성사는 오늘도 자가격리 중이다.





동대문 운동장을 허물고 설계공모를 거쳐 자하 하디드에게 맞겨진 뒤 예산 초과와 적정성에 대한 논란 끝에 문을 연 DDP.

서울시장은 언젠가부터 대권으로 가는 지름길로 인식되기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길엔 시장들의 욕망을 채워 줄 개발 성과물들이 제시되었다. 청계천에는 고가가 헐리고 물길이 열리며 주역을 맡았던 서울시장에겐  찬사와 지지, 그리고 기대가 부여되었었다.


후임 오세훈 시장은 서울을 재 디자인한다는 취지 하에 세운상가를 헐어 녹지 벨트를 만들고 한강 변에 기념비적인 건축물로 도배한 르네상스를 희망했다. 동대문 운동장도 역사적 상징물이라는 가치 부여와 체육계의 반발을 뒤로 한 채, 국제적인 설계 공모전을 통해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라는 새로운 속성이 부여되었다.


천문학적인 예산 초과와 공기 연장, 그리고 서울이라는 배경과의 역사적 문화적 불일치라는 혹평을 받으며 어려운 건설 과정을 거쳐 드디어 우리 앞에 비정형 건축의 대표적인 실체로 DDP가 실체를 드러냈다.

건설 과정 중의 논란과는 달리 현재 DDP는 각종 전시회와 체험전 등으로 발길을 메우며, 망각의 서울 시민들에겐 명소가 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헐려버린 동대문 야구장을 대체해서 건설하기로 했던 고척동의 돔 구장도 올 해에서야 완공이 되어 첫 경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후문이다.



옛 대우빌딩 앞을 서울역 고가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지금과 다르게 내륙 운송 중에서 철도 의존도가 매우  높던 과거 시절, 서울에 도착한 사람들이 서울역사를나서자마자 제일 처음 마주치게 되는 병풍같은 외관으로 인해 서울의 첫 이미지를 각인시켰던 이미지는 바로 대우빌딩이었다.


주변에 다른 건물들이 줄지어 생겨난 지금 보아도 저리 웅대하고 넓은 입면을 지니고 있는 이 건물이 과거에는 얼마나 위압적으로 서울역을 나서는 사람들에게 다가섰을지 상상해 본다.


대우빌딩은 2년 간의 공사 끝에 1977년 준공된 지하 2층 지상 23층의 거대 오피스 빌딩이다.
착공 당시에는 교통부가 교통회관으로 짓다가 중단. 이 후 대우그룹이 인수하여 사옥으로 건설한 것인데 이 때 부터 사람들에겐 대우빌딩이라는 고유명사가 익숙해지게 된다.


하지만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자산관리공사, 금호아시아나그룹 등으로 주인이 바뀌었다가 지금은 외국 투자사인 모건스탠리가 소유주인 건

모건스탠리는 2년 가까이 1,000억을 투입한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하여 ‘서울스퀘어’로 개명한 뒤 재오픈, 현재에 이르고 있다.  

리모델링 후  외관의 변화가 두드러지지는 않아 보이지만, 실은 약 1만㎡크기(99m X 78m)에 달하는 건물 전면에 약 42,000개 LED조명으로 구성된 미디어 캔버스를 설치하여 밤에는 조명을 이용한 역동적인 미디어 파사드로 변화를 시도했다.
주 야간의 외모에 드라마틱하 변화를 보이는 이 건물은 실은 공실율로 인해 새로 바뀐 주인에게는 골치거리가 되기도 했고, 최근에는 한 종편에서 제작한 웹툰 원작의 TV 드라마 속 배경으로 유명해지기도 했다.


대기업의 말단 사원이 건물 옥상에 서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의지를 다지거나 실의를 달래는 모습은 드라마에 대한 몰입과 공감의 장치로 충분한 역할을 했었다.


옛 대우빌딩 앞은 서울역 고가도로가 가로질러 겹쳐 보인다. 이제 얼마 뒤면 교통이 통제되어 더 이상 고가도로의 기능을 상실할 것으로 보이는 이 고가도로는 공중 녹지 보도로 탈바꿈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고가 보도로 탈바꿈한 이후에는 좀 더 가까이에서 시야를 방해받지 않고 서울스퀘어 빌딩의 미디어 아트를 관람할 수 있을 듯 하다.



사직터널 입구를 뒤덮은 담쟁이 넝쿨.

수도 서울에는 다른 도시와는 달리 산이 둘러쌓여 있다. 주봉을 댈 만한 큰 산들 외에도 지형 상 낮은 산들이 허리를 이어 도심을 이리 저리 가로 지르고 있다.

이 때문에 강북 도심에는 아직도 차들이 북적거리는 크고 작은 터널들이 많이 있는데, 사직 터널은 그 중에서 짧은 편에 속하는 터널이지만 차들의 북적거림은 큰 터널 못지 않다.


사직터널은 운전자에게는 계절을 실감하게 하는 터널이기도 하다.

터널 입구를 가득 메운 담쟁이 넝쿨이 그 매개체인데 봄에 잎이 달려 여름 한 철을 푸르게 덮어버린 담쟁이 넝쿨을 보면 왠지 차를 몰아 아마존 밀림의 열대 우림 속으로 잠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준다.


하지만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 전야에 접어들면 누렇게 변해 버린 잎들이 듬성 듬성 빈 자리조차 내어 보이며 이제 여름이 지나가고 있음을 온 몸으로 알려주시 시작한다.

차들이 뿜어내는 매연을 견디며 고색창연한 터널의 관록을 표현하는 담쟁이 넝쿨은 왠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계절과 함께 계속 찾아올 친구들 같이 느껴진다.





익숙한 풍경을 별다른 감흥 없이 지나곤 한다.

하지만 이 모습들도 세월이 지나면 찾기 어려운 과거의 풍경들이 될 것이다.

늘 지나던 3.1 고가도로는 이미 헐려 버렸고, 청계천을 복개했던 도로들은 파헤쳐 졌으며, 약수동과 아현동을 넘다들던 고가도로는 헐려버렸다.


단성사는 흔하디 흔한 건물로 대체되었고, 대한극장과 더 멀리 광화문 사거리의 국제극장도 평범한 고층 건물로 바뀐지 오래다.

명동에는 크고 작은 호텔들이 이름을 외우지 못할 만큼 넘쳐나기 시작했고, 동대문 운동장 옆 즐비하던 체육 용품 상점들은 이제 몇개만 남았다.


늘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았던 서울의 도심 풍경은 이처럼 우리 곁에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만 남아있지 못할 숙명을 지녔다. 자본의 논리와 효율성을 쫒아 부쉬고 다시 세우고를 반복하는 동안, 늘 그 곁에 있던 우리조차 모르는 광폭한 변화는 항상 진행형이다.


도심을 지나며 사진을 남기도 여기 사족을 덧붙여 기록을 하는 의미는 바로 잊혀질 숙명의 도심 풍경을 마음 속에 박제해 두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된다. 또 그 도시 풍경에 덧입혀져 있을 크고 작은 추억을 붙들어 두고 싶은 작은 욕심도 더해 본다.


계속) 서울 도시 풍경 2편

https://brunch.co.kr/@choigodaun6q/4



#서울, #도시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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